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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9)별똥별(심혜나)

별똥별 심혜나 별이 떨어졌다. 할머니가 그러시길, 별똥별이 떨어진 날엔 그 별똥별이 한 목숨을 앗아가는 날이라고. 별똥별은 다시 찾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란 걸, 한때 모두 소중한 목숨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내 별똥별도 숨어 버렸다. 내 별똥별은 날 데리고 가버렸다. 세상에서 잊혀진 나는 어둡고 침침한 밤하늘을 빛내는 별이 되었다. 또 다시 별이 떨어졌다. 내 별도 따라 떨어졌다. 그 사이엔 난, 여전히 반짝인다. 시인의 말) 이 주인공도 별똥별을 따라 숨어 버렸나 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잊혀져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되진 않습니다. 어둡고 침침한 밤 하늘을 빛내는 별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 세상엔 쓸모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모두 필요한 구석이 있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5.03.14

이청준,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 문학과지성사

심청은 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조차 귀동냥으로 전해 듣고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듭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식이 목숨을 내놓는 것이 과연 효인가요? 자식의 목숨값으로 생명을 연장한 부모는 과연 마음 편히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요?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일컬어 '참척(慘慽)'이라고 합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사랑하던 외아들을 먼저 보낸 참척의 고통을 절절한 글로 풀어낸 바 있습니다.(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세계사) 그러므로 오늘날 학생들에게 효도가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 심청전을 읽게..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7)나는 좋다(김세아)

나는 좋다 김세아 나는 빗소리가 좋다. 조용한 길에서 아무도 모르게 공연을 하고 있는 빗소리가 좋다. 나는 웃음소리가 좋다. 한 명이 웃으면 다 따라 웃게 되는 하루를 장식해주는 웃음소리가 좋다. 나는 내가 좋다. 잘난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시인의 말) 1연에서 늦은 저녁 시간에 아무도 걸어다니지 않는 길에서 혼자 소리를 내며 비 내리는 것을 공연한다라고 표현했다. 이 시는 마지막 연처럼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좋아한다라고 표현한 시이다.

위기철, 아홉 살 인생, 현북스

숫자 '아홉'으로서 인생 1991년에 출간된 위기철의 은 MBC의 의 코너인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소개되면서 지금까지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책입니다. 아홉 살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려진 1970년대 서울 변두리 산동네 사람들의 고달프면서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여전히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결의 소설들로 양귀자의 , 김중미의 , 황석영의 , 조세희의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대개 가난과 빈곤에 노출된 어린 주인공이 척박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힘겹게 내일에 대한 희망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위기철의 소설이 유사한 소재를 다룬 여타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어린 시절을 아련한 추억의 대상으로 회상하는 대신 저자의 인생 담론을 재구축하기 위..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6) 벽(심혜나)

벽 심혜나 한적했던 마을에 큰 벽이 생겼다. 어느 날은 큰 기차가 그 벽을 넘어 마을로 들어섰다. 기차에선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모두들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울어대며 서로를 껴 안았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다. 바로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액자 속 주인공 그 사진엔 우리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또 그 벽은 굳게 닫혀 버렸다. 시인의 말) 이 시의 주인공은 이산가족인가 봅니다. 비무장지대라는 벽을 뚫고 가족을 다시 만났지만, 그 벽은 또 굳게 닫혀 버립니다. 지금도 남과 북은 가운데에 벽을 두고 서로를 외면합니다. 그 중엔 떨어진 가족들이 수도 없이 보입니다. 서로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결국 우리는 그 상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 시의 주인공도 자신의 ..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5) 아이와 새싹(심혜나)

아이와 새싹 심혜나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에도나는 책상에서 뒤척이다가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학교 마당 앞돋아나는 새싹을 바라보다가 하루 이틀 사흘 나흘지나가버리고 새싹은 큰 나무가 되어저 높은 하늘로 조금씩조금씩 올라갑니다. 나는 큰 어른이 되어담 넘어 보이는 나무를 지긋이 바라보다가헐레벌떡 일자로 떠납니다. 시인의 말) 시의 주인공이 학창시절 늘 바라보았던 한 새싹이 있습니다. 무언가 끌렸는지 그 새싹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학생이던 주인공은 회사원으로, 그 조그마한 새싹은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주인공에겐 이 나무가 친근한 친구로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늘 시선은 그 나무에게로 갑니다. 어릴 때 바라보던 나무. 어쩌면 그 나무에 주인공의 과거가 담겨 있지 않을..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4) 포스트잇(김희정)

포스트잇 김희정 너에 대한 마음을 꾹꾹 눌러 쓴 포스트잇 나는 항상 너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 너 한때는 소중했던 그 마음을 기억할게 이젠 기분 좋게 이별할게 시인의 말) 포스트잇이 떨어질 때를 그리움과 너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적어도 잘 안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를 마음으로 표현한 시입니다. 그리고 메모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태 켈러/강나은 번역,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돌베개

새로운 옛 이야기 전래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떡과 아낙을 집어삼키고도 채워지지 않아 그녀의 자식들마저 잡아먹으려 했던 호랑이의 근원적 결핍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리고 호랑이에게서 도망친 오누이는 왜 하필 해와 달이 되었을까요? 그후 오빠와 누이 동생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또 만약 오누이가 아니라 형제나 자매가 주인공이었더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이 전래 동화에는 이처럼 대답되지 않은 수많은 빈틈과 질문이 남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여백을 듣는 이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 읽으며 옛 이야기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게 되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야기들이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오래된 민간 설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