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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에릭슨/햇살과나무꾼 번역, 화요일의 두꺼비, 사계절

우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우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친구 간의 상호 선의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는 삶이 어떻게 살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마음껏 꺼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면 그런 인생만큼 비참한 삶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누리는 영광을 함께 기뻐해줄 누군가가 없다면 그 행복은 곧 빛을 바랄 것이며, 내가 겪는 고통을 더 괴로워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그 불운은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될 것입니다.(키케로/천병희 번역,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도서출판 숲) 그래서 키케로는 우정을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리아 칭송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생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 우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서로의 출신이..

뭉크의 <절규>를 보고 이야기 만들기(초등 6학년)

뭉크의 는 어떤 그림인가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그림 (1893)는 현대인이 일상에서 겪는 인간 존재의 원초적 불안과 공포를 절묘하게 포착해서 지금껏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심지어 영화 (1991)의 악동 주인공 케빈이 표정을 따라하기도 하고,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슬래셔 영화 (1996)에 등장하는 살인마가 착용하는 가면으로 등장할 만큼 뭉크의 는 수많은 대중 문화 속에 패러디되거나 인용되며 현대 예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뭉크가 누리는 현재의 대중적 인기와 상관없이 화가의 개인적 삶은 죽음의 공포와 우울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뭉크가 다섯 살 때 폐결핵으로 사망했고, 한 살 위 누나 소피에도 14살 때 동..

미디어 교육 2025.06.22

박석근, 수상한 화가들, 사계절(2)

아름다움의 이상은 불변하는 것인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가 프랑스의 화가 앵그르는 젊은 시절 신고전주의의 대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미술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유학을 가서 라파엘로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가 유학 기간 중 그린 그림 중 하나가 바로 (1808)입니다. 붓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매끈한 화면은 마치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선명하고 생생합니다. 등을 돌리고 침대 위에 걸터앉은 여인은 피부는 마치 대리석 조각처럼 깨끗하고 투명합니다. 절제된 구도에 담긴 인체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곡선은 단순하지만 완벽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한 점의 작품만으로도 앵그르가 생각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었는지가 분명..

박석근, 수상한 화가들, 사계절(1)

미술사 공부는 왜 필요한가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다가올 사회가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인재를 요구하게 될 거라 예측합니다. 그에 따라 전세계의 수많은 학교들은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고,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이 있는 지식과 창의적 사고를 겸비한 '다빈치형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형 인재의 모델이 되고 있는 다빈치는 흔히 오해하고 있듯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학교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고, 그래서 당시 대다수의 지식인들의 공용어인 라틴어를 읽지 못했으며 복잡한 나눗셈조차 할 줄 몰랐..

성석제,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비룡소

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 사회적 지위가 낮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남자가 아내의 내조로 사회적 성공을 거두게 될 경우 그 남성을 종종 '바보 온달'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혹은 평강공주처럼 자신을 이끌어줄 여성을 기대하는 남성의 심리를 '온달 콤플렉스'라 칭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온달 이야기는 오늘날 현대 남성들의 마음 속에 내재한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의 소망을 반영한 설화로 기억되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온달 이야기는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서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꿈꾸는 여성의 심리를 가리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남성 버전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김부식의 에 실린 '온달 열전'이나 이에 바탕을 두고 개작된 동화를 읽어 보면 우리의 상식이나 통념에서 벗어난 온달과 평강공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

데이비드 위즈너, 시간 상자, 배틀북

글 없는 그림책 데이비드 위즈너는 뉴베리 상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아동문학상인 칼데콧상을 여섯 번이나 수상할 만큼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그는 26년간 단 한 줄의 글도 쓰여있지 않은 그림책을 선보였지만 매번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독자들을 압도해 왔습니다. 비록 아무런 글자도 없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충격적일 만큼 초현실적인 그의 그림책을 넘기다 보면 머리 속에서 작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위즈너의 작품은 진정한 의미의 '그림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 없는 그림책을 읽을 때는 아동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도록 권해야 합니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벌어지..

오가와 히토시/서슬기 번역, 자유나라 평등나라, 바다출판사

자유와 평등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두 개의 큰 기둥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이 무엇이고, 그것들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익히는 것을 철학 공부라 생각했지 정작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시민철학자인 오가와 히토시는 청소년들이 쉽게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철학동화 를 썼습니다. 이 동화에서 자유나라의 벨과 평등나라의 쿠는 우연히 만나서 사흘 간 상대의 나라에 서 살아보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뉘었던 두 나라를 합쳐서 꿈의 나라를 만들게..

방정환, 만년샤쓰, 보물창고

100년 전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았나 고등보통학교(일제 강점기에 설치된 중등교육기관)에 다니는 한창남은 반에서 제일 인기 좋은 쾌활한 소년이었습니다. 우스운 말도 잘할 뿐 아니라 비행가 같이 시원스럽고 유쾌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비행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 해어진 모자나 궁둥이에 조각조각 기워진 양복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집안이 구차한 것도 같지만 그의 집안 사정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십 리 밖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가 정확히 어디에 사는 지 알지도 못할 뿐더러 창남이는 자기 집안일이나 신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살이 터지게 추운 날 체조 선생님은 양복저고리를 벗고 셔츠만 입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까지 벗었는데 창남이만 옷..

윌리엄 셰익스피어/도해자 번역, 로미오와 줄리엣, 열린책들

왜 을 읽어야 할까 셰익스피어의 은 '엇갈린 비운의 연인(star crossed lovers)'의 대명사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명성과 달리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 , , 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비교적 초기에 씌어진 이 작품은 비극적 완결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카풀렛 가문과 문테규 가문이 오랜 원수로 나오지만 그 이유는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로미오가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줄리엣의 사촌 오빠 티볼트를 죽이거나, 로렌스 신부에게 임무를 부여받은 존 신부가 갑작스럽게 발생한 전염병으로 인해 로미오에게 편지를 전달하지 못하게 되는 등 우연적 요소에 의해 사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

한윤섭, 해리엇, 문학동네

인간은 다윈 이래로 진화해 왔을까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1835년 에콰도르 서부 연안의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하고 돌아올 때 거북이 세 마리를 비글호에 실었습니다. 이 세 마리 거북이들 중 마지막 생존자인 거북이는 2006년 6월 23일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176세로 숨졌습니다. '해리엇'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이 거북이는 세계 최장수 동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었습니다. 자신을 고향에서 떠나게 한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거북이는 그 긴 시간 동안 과연 인간들에 대해, 그리고 자신처럼 붙잡혀서 동물원에 갇힌 다른 동물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요? 그런데 막상 소설을 읽어 보면 '해리엇'이라는 제목과 달리 아기 원숭이 찰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의 시선에 따라 해리엇의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