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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햇살과나무꾼 번역, 멋진 여우 씨, 논장

계란은 어떻게 바위를 깰 수 있을까 하찮은 힘으로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에게 도전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속담이 있습니다. 깨지기 쉬운 연약한 껍질을 가진 계란으로 단단한 바위를 깨려고 하는 것만큼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란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적은 수효로 많은 수의 무리를 맞설 수 없다는 사자성어인 '중과부적(衆寡不敵)'도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옛 선인들은 소수가 다수에 맞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능성도 지혜로 남겨두었습니다. 물방울들이 떨어져 돌을 뚫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수적천석(水滴穿石)'이 그 예입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시도라고 끊임없이 이루어질 경우 마침내 바위를 꿰뚫게 된다는 것입니다. 약자들이 강자들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무한한 인내심과 끈기..

이청준, 옹고집 타령, 문학과지성사

옹고집은 왜 고집이 셀까 남의 말은 아무리 옳은 것이어도 도통 들으려 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고집쟁이를 흔히 옹고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답답한 벽창호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옹고집의 진짜 문제점은 단순히 그가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점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부자로 살면서도 어려운 이웃이나 가엾은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한 인정을 베푼 적이 없을 만큼 인색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부리는 일꾼들에게 몇 년씩 새경도 안 주고 공짜로 부려먹고,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도 혼수 보내기가 아까워 공짜 시집 보낼 곳만 찾다가 혼기를 놓쳐버리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살림 절약을 핑계로 이미 여든 살이 넘은데다 병까지 들어 누운 늙은 어머니에게 약다운 약 한 ..

수건 모건스턴/최윤정 번역, 엉뚱이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 비룡소

괴상한 아이 소피 소피는 이상한 아이입니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 대신 모자, 리본, 단추, 끈 같은 것들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린이 그림책보다도 패션 잡지 뒤적이는 걸 더 좋아했던 소피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비단 꽃이나 커다란 진주 장식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거나 양말과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학교에 갔습니다. 반 아이들은 그런 소피를 '괴상한' 아이라 생각했고, 급기야 담임 선생님은 학교는 사육제 장소가 아니니 소피가 그런 이상한 복장으로 등교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습니다. 소피는 대체 왜 이토록 옷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소피의 부모님이라면, 혹은 소피의 담임 선생님이라면 소피 같은 아이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아마 현실에서 소피 같은 아이를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참..

김유정/신두원 엮은이, 봄봄, 사피엔스21

첫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의 얼굴이나 몸짓은 기억의 저편으로 희미하게 바래가도 이상하게 어떤 냄새는 갑작스레 시간을 거슬러 그 사람을 또렷하게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를 맡고 불연듯 유년의 시간 속으로 빨려들었듯이 가장 모호하고 불투명한 것처럼 느껴졌던 후각이란 감각은 다른 감각들보다 강한 기억의 힘을 지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첫사랑은 어떤 향기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강신재의 소설 는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로 시작합니다. 그에게 풋풋한 첫사랑은 싱그러운 비누 내움으로 기억됩니다. 세련되고 깔끔하면서도 지적인 인물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이 발표된 1960년에 비누는 귀하고 값도 비싼 물건이어서 비누향은 '고급 향..

정해왕, 복 타러 간 총각, 보림

나는 왜 이리도 운이 없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이 오직 나한테만 너무나 야박한 것 같아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나는 나쁜 짓도 안 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리 사는 게 힘들지? 왜 나한테만 억울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 나를 속상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왜 이리도 운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불운의 저주를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총각이 살았습니다. 그는 부모나 형제도 하나 없는 외톨이였습니다. 비빌 언덕도 없는 처지에 지지리도 가난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쭉정이만 열리고, 소 돼지를 기르면 며칠 못 가 시름시름 앓다 죽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총각은 세상의 모든 불운이란 불운을 다 짊어지고 태어난 듯 했습..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다림

현실과 허구의 '일그러진' 만남 이문열의 단편 소설 은 다수의 교과서에서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시험에서도 종종 출제될 정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 책으로 학생들과 토론을 진행해 보면 결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작품이라는 사실이 새삼 절감됩니다. 일반적인 독자들은 작가의 분신이라 여겨지는 주인공 한병태에 감정이입해서 책을 읽게 될 가능성이 많은데 성인이 된 그가 절대악으로 여겨지는 엄석대를 그리워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며 당황하게 됩니다. 엄석대는 악한 인물이고 그에 대항하는 한병태는 선한 인물이라 생각했던 학생들은 병태의 갑작스런 변심에 어리둥절해 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 작품을 우리의 정치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와 작품에서..

미셸 투르니에/고봉만 번역, 방드르디, 야생의 삶, 문학과지성사

왜 '방드르디'인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허구적 인물도 아니면서 근대의 '신화적 인물'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세의 떠돌이 마술사에서 근대인의 대표가 된 '파우스트', 기사도 소설의 '팬'에서 편력기사로 거듭난 '돈키호테', 현재의 쾌락을 위해 종교나 사회규범도 무시했던 에고이스트 돈 후안, 그리고 무인도조차 경영의 대상으로 삼았던 '호모 에코노미쿠스' 로빈슨 크루소가 그런 예들입니다. 영문학자 이언 와트는 이런 인물 유형들이 '반르네상스' 또는 '반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시기에 출현한 것은 반동적 시대에 대한 저항으로 '개인주의'가 등장한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 모두 '자아 대 세상'이라는 태도에 입각해서 행동하며, 공동체적 ..

박완서, 자전거 도둑, 다림

세 가지 '자전거 도둑' 1948년 이탈리아의 감독 비토리아 데시카가 만든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빈곤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고단한 현실과 따뜻한 가족애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네오리얼리즘의 수작으로 평가를 받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쓰여진 동명의 소설이 두 편이나 있습니다. 김소진의 과 박완서의 입니다. 두 작품 모두 '아버지, 자전거, 도둑, 가난'이란 핵심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영화와 완전히 다릅니다. 김소진의 소설은 자전거를 매개로 드러난 타인의 상처를 안아주기는커녕 그로 인해 더욱 멀어지게 되는 가혹함을 비정하게 서술합니다. 박완서의 소설은 16세의 소년이 서울에서 겪게 되는 윤리적 갈등을 통해 도덕적인 각성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

조지 오웰/김욱동 번역, 동물 농장, 푸른숲주니어

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조지 오웰의 소설 이 해외에서 제일 먼저 번역된 나라는 놀랍게도 한국입니다. 1948년 공보처 관료인 김길준이 이 소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번역해 출간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미국 해외정보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란 추측이 유력합니다. 당시 수립된 남한정부는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표명하기 위해 이 책을 홍보 수단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책이 소개된 이런 시대적 한계로 인해 오웰의 이 소설은 공산주의의 극단적 파행성을 부각시키고, 상대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반공소설로 독해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는 소련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작품으로 읽혀 왔습니다. 그래서 농장 주인인 존스는 러시아 ..

손창섭, 싸우는 아이, 우리교육

주인공은 왜 싸우는 아이가 되어야 했나 4.19 혁명의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될 만큼 중요한 역사적 경험입니다. 서양의 근대적 민주정이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혁명을 통해 형성되었듯이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의 정치체가 독재자 이승만을 시민들의 손으로 내쫓고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저 역사적 경험에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으로서의 개인'을 발견하게 된 정의로운 항거는 비록 이듬해 박정희가 주도한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좌절된 듯 보였지만, 경제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운 군사정부도 4.19혁명의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