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3

셰익스피어/박우수 번역, 햄릿, 열린책들(2)

햄릿은 마마 보이였나? 아버지 햄릿 왕의 장례식에 참석한 햄릿은 부친의 죽음에 대한 애도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더 강하게 표출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동생이지만 아버지와 딴판인 사람과, 그것도 아버지가 사망한 지 한 달도 채 못 되어,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종내 못마땅합니다. 학생들은 이미 서른 살이나 된 햄릿이 왕자로서 왕위에 관심이 없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고, 어머니의 재혼에 왜 그토록 불만스러워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왕위 승계는 조선 시대와 달리 장자 상속의 원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던 시대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목전에 둔 한 국가의 왕자가 부친의 죽음에 슬퍼하며 상복조차 벗지 않은 채 국가의 안위는 나몰라라 하고 어머니만 원망하고 있는 모습이 여간 볼썽사납지 않..

셰익스피어/박우수 번역, 햄릿, 열린책들(1)

문학 교육은 정답 찾기가 아닙니다 책 읽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우리 사회가 책에 갖고 있는 견고한 편견들과 부딪히게 될 때가 많습니다. 우선 책을 많이 읽으면 아이가 국어를 잘 하게 될 것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물론 독서량이 많은 아이가 국어 시험을 잘 보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치루는 국어 시험 유형에 익숙치 않으면 시험이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 놀랍게 아직도 수십 년 전에 유행했던 속도법 학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책을 많이 읽기만 하면 교육적으로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독서왕 선발 대회라는 것을 해서 하루에 책을 30권 이상을 읽었다는 학생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과연 그 학생이 읽은 책들..

위다/노은정 번역, 플랜더스의 개, 비룡소

아무도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어린 영혼의 죽음  파트라슈를 아시나요? 어린 시절 친구들과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인공 네로와 파트라슈의 아름다운 우정에 가슴이 뭉클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그림을 마침내 보고는 파트라슈를 꼭 끌어 안고 죽던 장면은 아마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제 영혼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가수 이승환이 '프란다스의 개'라는 노래를 발표했을 때도 옛 친구를 재회한 듯 반가웠습니다. 만화영화의 주제곡을 그대로 따라하는 첫 부분은 갑자기 시간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그 뒤 지금은 세계적 영화 감독이 된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2000)라는 영화로 장편 데뷔했을 때도 무..

헤르만 헤세/이영임 번역, 데미안, 을유문화사

새는 알은 깨고 나온다  BTS와 '데미안' 한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할 청춘의 필도서였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책은 신비한 아우라를 내뿜었고, 책에 나오는 뜻모를 구절을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친구들 사이에서 '뭔가 있어 보이는' 친구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요즘처럼 책을 읽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젊은 날의 치기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런 '데미안'을 청소년들이 다시 주목하게 된 건 전적으로 BTS의 공이 크다고 봅니다. 2016년에 발표된 BTS의 '피, 땀, 눈물'은 전세계 아미들을 열광시켰고, 앨범과 뮤직 비디오가 헤세의 '데미안'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적 역시 덩달아 판매고가 올라가기 시작했습..

댓글시인 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수오서재

시는 세상을 구원한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해 묻는다면 각양각색의 대답을 내놓을 겁니다.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살기 힘든 사회라거나, 치안수준이 높고 공공의식이 뛰어난 시민들이 많다고 평가할 수도 있고, 그밖에도 저출산 문제나 높은 주택가격 등에 대한 걱정을 들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을 일일히 만나거나 하늘 높은 곳에서 전체를 내려다 보지도 않았으면서도 어떻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다양한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다양한 기사나 정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그것을..

미하엘 엔데/한미희 번역, 모모, 비룡소(2)

낫을 든 크로노스에 맞서는 방법 '모모'라는 캐릭터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1973년에 출간된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고전으로 자리잡은 작품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철학적 우화로 어린 독자들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은 판타지의 구조를 갖고 있어서 동화처럼 보이는데다 평이한 언어로 쓰여 있지만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모모'의 경우 '경청'이나 '시간'에 대한 주제가 많이 언급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러한 주제들을 작품 속 매락이나 작품이 형성되고 소비되는 사회적 상황에서..

미하엘 엔데/한미희 번역, 모모, 비룡소(1)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하여 '나눔'과 '돌봄'의 공동체 어느 날 폐허가 된 원형경기장에 모모라는 한 소녀가 찾아와서 그곳에서 살게 됩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고아로 보이자만 이 소녀가 혼자 사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하지만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거처를 깨끗이 치워주고, 손수 가구를 만들어 주고, 남긴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모모의 삶은 부족하기는커녕 풍족했습니다. 그들 모두 '나눔'을 통해 '풍족'해지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은 흡사 '심청전'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합니다. 심봉사가 출산 직후 죽은 아내를 대신해서 갓난 심청이를 키울 수 있었던 까닭은 ..

제임스 배리/장영희 번역, 피터 팬, 비룡소

피터 팬은 정말 순수의 상징인가요? '피터 팬'을 아시나요? 흔히 '피터 팬'하면 빨간 깃털이 달린 녹색 모자를 쓰고 초록색 옷을 입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장난꾸러기 소년을 떠올립니다. 그에 맞서는 악당 후크 선장은 손에 쇠갈고리를 달고 부하들을 함부로 대하고 난폭한 인물이고, 네버랜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즐거운 놀이동산이라고 기억합니다. 줄거리 역시 피터 팬의 초대로 네버랜드로 여행을 온 웬디와 동생들이 힘을 합쳐 악당 후크 선장을 제거하고 다시 런던에 있는 집으로 복귀한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임스 배리의 원작 '피터 팬'을 읽은 아이들은 '피터 팬'이 버릇없고 막돼먹은 아이라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오히려 후크 선장이 교양이 있고 매력적인 인물 같다고 평..

한윤섭, 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

고향은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전설의 고향'을 기억하시나요? 어린 시절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눈만 빼꼼 내놓은 채 TV 브라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전설의 고향'입니다. 하얀 소복에 입가에 피를 묻힌 창백한 피부의 원귀나,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들의 간을 빼먹던 구미호의 빨간 눈은 방송이 끝난 후에도 어린 영혼의 꿈 속을 악착같이 찾아와 밤새 식은 땀을 흘리며 쫓겨 다녀야만 했습니다. 사실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모두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호러 드라마는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은 전국 각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나 이야기들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었지만 그 중에서 유독 공포스럽고 충격적인 것들만이 어린 기억 속에 각인된 탓에 무..

니콜라이 레스코프/이상훈 번역, 괴물 셀리반, 다림

사진 삭제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벤야민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경험'에 바탕을 두고 글을 쓴 레스코프를 '이야기꾼'으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이야기의 전통이 몰락하게 되면서 등장한 장르인 소설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더 이상 표현할 수 없고 또 자기 자신이 남으로부터 조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남에게도 아무런 조언을 해줄 수 없는 고독한 개인'에 의해 탄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괴물 셀리반'을 읽어 보면 벤야민이 왜 레스코프를 '이야기꾼'이라고 했는 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가 글을 길어올리는 원천이 되는 그리스 정교회의 공동체적 분위기와 보댜노이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