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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 다미안/최권행, 아툭, 한마당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다 소중하게 생각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해외로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값비싼 만년필이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목걸이 같은 물건에서부터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조부모님이나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 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하게 되는 가슴 아픈 상실의 경험은 그 누구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상실과 결핍으로 인해 한동안 슬픔에 빠지게 되지만 결국은 그것을 이겨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아무리 상실의 아픔이 크다 해도 애도의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우리는 또 다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실의 고통을 처음으로 겪게 되는 아이들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게 될까요? 만약 그들이 물건이 사..

구드룬 파우제방/함미라 번역,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보물창고

체르노빌은 지나간 사건인가우리는 1984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불행했던 과거의 사건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HBO에서 방영한 미니시리즈 (2019)을 시청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리라고 봅니다.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홍보되는 원자력이 실은 원자폭탄 개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군사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위험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위험한 물질보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부 당국자들의 거짓과 기만이 피해의 규모를 더 키웠다는 사실이 더 공포스럽게 다가옵니다. 여기에 추가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의 목소리를 10여년에 걸친..

이상, 황소와 도깨비

'황소와 도깨비'는 누가 쓴 동화인가? 지금까지 '황소와 도깨비'는 와 로 유명한 천재 시인 이상이 쓴 유일한 동화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근대 동화 연구자인 김영순 씨는 이 동화가 이상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1937년 에 연재된 '황소와 도깨비'는 그보다 13년 전인 1924년 일본 아동문예지 「아까이토」에 처음 발표된 일본작가 토요시마 요시오(豊島與志雄)의 동화 '천하제일의 말'을 번안한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두 작품을 비교했을 때 줄거리, 구성, 전개 방식, 어휘 등이 상당히 일치한다고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김씨는 '황소와 도깨비'가 이상이 쓴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상의 글쓰기 특징인 "도시스런 매개어의 사용"과 작품의 산골이미..

레프 톨스토이/이순영 번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예출판사

톨스토이와 함께 하는 윤리 수업 톨스토이의 단편 모음 는 작가가 러시아에서 구전된 전설이나 민담을 각색해서 도덕적 교훈을 주기 위해 쓴 글입니다. , , 와 같은 그의 대표작들과 달리 소박한 언어와 평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흔히 '동화'로 분류되며 학생들에게 권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하면 '동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설교를 따분하게 늘어놓는 '재미없는 책'으로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책은 마치 기독교의 종교적 가르침을 윤리적으로 각색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가르침의 내용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하품만 나오게 합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존재라니요? 그런데 이 책에 실..

이청준, 흥부가_놀부는 선생이 많다, 문학과지성사

이청준의 는 왜 특별한가 놀부와 흥부의 이야기는 형제간의 우애와 권선징악을 다룬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읽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린이 책으로 꾸며진 '흥부와 놀부'는 대부분 경판본 소설 '흥부전'에서 화소를 끌어와 임의로 각색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흥부전', '홍보전', '박타령', '박홍보가', '연의 각'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는 '흥부가'의 이본이 약 37종이 넘지만 신재효의 판소리 창본 '박타령'의 멋과 맛을 살린 책은 거의 드믑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가 이청준이 신재효의 판본에 바탕을 두고 판소리의 세계관과 미학을 제대로 살린 동화를 각색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가) 비단옷 가게에 물총을 쏘아 대면 어찌 되나..

차오원쉬엔/신순항 번역, 우로마, 책읽는곰

부모의 기대가 어린 영혼을 잠식하다 누구나 어릴 적에는 멋지게 성장한 미래의 자신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자신 앞에 아무 것도 그려넣지 않은 순백의 캔버스가 펼쳐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캔버스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 보면 어린 시절 꿈꾸던 자신과 얼마나 닮아 있던가요? 동화 속 주인공인 우로의 아빠도 어린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에선 포목점 주인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우로의 아빠는 포목점 주인이란 자화상에 만족했을까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빠는 미술에 소질있는 딸 우로가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로에게 이름난 화가 선생님을 붙여 가르치고, 최고급 캔버스를 마련해 줍니다. 마치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우로를 통해 대신 이루려 하는 듯이. 그..

박효미, 박씨전, 웅진주니어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병자호란(1636) 이후에 씌어진 은 과 더불어 치욕스런 전쟁의 패배를 상상의 공간에서 이겨내려는 당시 민중들의 소망이 투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작자 미상의 이 작품은 고전 소설에서는 드물게 박씨라는 여성 영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박씨뿐만 아니라 그녀의 하녀 계화나, 청나라 자객 기홍대 등 뛰어난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가 여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합니다. 흔히 병자호란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황제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올린 수치스런 장면으로 기억될 뿐 5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의 여인들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 시장에 팔렸다는 사실은 드물게 언급되어 왔습니다. 목숨을 걸고 겨우 탈출한 ..

시는 사물을 재탄생시키는 창조의 작업이다

시는 왜 어려운가 많은 사람들이 시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익숙한 사물을 다루더라도 낯설게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 낯섦을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그 낯섦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시인은 이미 알려진 사물들을 새로운 시점에서 관찰하고, 일상의 언어와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를 통해 사물들은 새로운 의미로 충전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익숙한 사물들이 낯설어지고, 그것에 대해 새롭게 생각을 해야 한다는 필요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문학이란 원래가 자동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중단시키고 낯설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동화된 사고는 실은 생각이 멈춘 상태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가 낯설고 어려운 ..

소중애,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비룡소

왜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는 여전히 기억될까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구름 위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어디선가 들어봤을 유행어입니다. '수한무'는 수명이 끝이 없다는 뜻입니다. '거북이와 두루미'는 십장생(十長生)의 일원으로 불로장생을 뜻합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은 한무제 때 사람으로 삼천갑자(三千甲子) 즉 18만 년을 살았다는 전설 속 인물입니다.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고 설정된 가상의 인물이고, '워리워리 세르리깡'은 그가 복용했다는 약초입니다. '무두셀라'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고 알려진 인물로 무려 969세까지 장..

시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시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학생들이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은 어땠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낯선 것들, 자신이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경험을 공유하며 아이와의 관계가 돈독해질 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그 아이를 지도해야 할 지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한 학생이 해외로 여행을 다녀와서는 별들이 가득한 밤 하늘 사진을 보여 줍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선명한 별빛들로 가득한 밤 하늘이 퍽이나 아름답습니다. 아이도 그렇게 느꼈는지 멋진 풍경을 보고 문득 시를 쓰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시를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