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5학년 15

오가와 히토시/서슬기 번역, 자유나라 평등나라, 바다출판사

자유와 평등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두 개의 큰 기둥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이 무엇이고, 그것들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익히는 것을 철학 공부라 생각했지 정작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시민철학자인 오가와 히토시는 청소년들이 쉽게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철학동화 를 썼습니다. 이 동화에서 자유나라의 벨과 평등나라의 쿠는 우연히 만나서 사흘 간 상대의 나라에 서 살아보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뉘었던 두 나라를 합쳐서 꿈의 나라를 만들게..

한윤섭, 해리엇, 문학동네

인간은 다윈 이래로 진화해 왔을까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1835년 에콰도르 서부 연안의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하고 돌아올 때 거북이 세 마리를 비글호에 실었습니다. 이 세 마리 거북이들 중 마지막 생존자인 거북이는 2006년 6월 23일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176세로 숨졌습니다. '해리엇'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이 거북이는 세계 최장수 동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었습니다. 자신을 고향에서 떠나게 한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거북이는 그 긴 시간 동안 과연 인간들에 대해, 그리고 자신처럼 붙잡혀서 동물원에 갇힌 다른 동물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요? 그런데 막상 소설을 읽어 보면 '해리엇'이라는 제목과 달리 아기 원숭이 찰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의 시선에 따라 해리엇의 생애 ..

잭 런던/햇살과나무꾼 번역, 야성의 부름, 시공주니어

벅의 변화는 성장인가, 퇴화인가 청소년기에 읽게 되는 수많은 소설들은 성장소설의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성장소설의 주인공은 수많은 역경과 모험을 겪게 되고, 그 결과 처음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과정은 A에서 A'로의 변화로 공식화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A가 A'로 변했다고 보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이미 A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잭 런던의 은 완벽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보살핌 속에서 안온한 삶을 살던 개가 우연한 계기로 야생의 자연에 내던져지면서 점차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야생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가 늑대로 변한 것을 과연 '성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벅의..

위기철, 아홉 살 인생, 현북스

숫자 '아홉'으로서 인생 1991년에 출간된 위기철의 은 MBC의 의 코너인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소개되면서 지금까지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책입니다. 아홉 살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려진 1970년대 서울 변두리 산동네 사람들의 고달프면서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여전히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결의 소설들로 양귀자의 , 김중미의 , 황석영의 , 조세희의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대개 가난과 빈곤에 노출된 어린 주인공이 척박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힘겹게 내일에 대한 희망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위기철의 소설이 유사한 소재를 다룬 여타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어린 시절을 아련한 추억의 대상으로 회상하는 대신 저자의 인생 담론을 재구축하기 위..

송미경, 돌 씹어먹는 아이, 문학동네

부조리한 현실과 싸우는 무기고로서 환상의 세계 '혀를 사 왔지'의 주인공 시원은 일 년에 한번, 삼 일간 열리는 '무엇이든 시장'에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회색 고양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웃고 있는 눈썹이나 원숭이 꼬리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꼬리를 팔고 있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 시원이는 어린 당나귀에게서 혀를 사기로 결정합니다. 왜 하필 혀를 샀느냐고요? 그에게는 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펼쳐지는 이런 기괴하고 낯선 광경에 잠시 당황하게 됩니다. 달리나 마그리트와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나 봤을 법한 이질적이고 당황스런 상상의 세계를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에서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면 동화의 세계만큼 초현실적인 상상력이 강력하게 요청되는 곳도 없는 ..

이청준, 옹고집 타령, 문학과지성사

옹고집은 왜 고집이 셀까 남의 말은 아무리 옳은 것이어도 도통 들으려 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고집쟁이를 흔히 옹고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답답한 벽창호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옹고집의 진짜 문제점은 단순히 그가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점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부자로 살면서도 어려운 이웃이나 가엾은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한 인정을 베푼 적이 없을 만큼 인색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부리는 일꾼들에게 몇 년씩 새경도 안 주고 공짜로 부려먹고,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도 혼수 보내기가 아까워 공짜 시집 보낼 곳만 찾다가 혼기를 놓쳐버리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살림 절약을 핑계로 이미 여든 살이 넘은데다 병까지 들어 누운 늙은 어머니에게 약다운 약 한 ..

찰스 디킨스/김영진 번역, 크리스마스 캐럴, 비룡소

배경 지식을 꼭 알 필요가 있을까 구두쇠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유령들을 만나 새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는 많은 아이들이 직접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책을 수업 교재로 만들 때는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과 실제로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감상이 다르다는 것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유튜브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고 있는 것과 원작을 독서해서 얻게 되는 것이 차이가 없다면 굳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소개해서도 곤란합니다. 디킨스가 살았던 19세기는 산업혁명으로 이제 막 발흥한 초기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로 자본가들의 탐욕과 노동자들에 대한 착..

박효미, 박씨전, 웅진주니어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병자호란(1636) 이후에 씌어진 은 과 더불어 치욕스런 전쟁의 패배를 상상의 공간에서 이겨내려는 당시 민중들의 소망이 투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작자 미상의 이 작품은 고전 소설에서는 드물게 박씨라는 여성 영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박씨뿐만 아니라 그녀의 하녀 계화나, 청나라 자객 기홍대 등 뛰어난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가 여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합니다. 흔히 병자호란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황제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올린 수치스런 장면으로 기억될 뿐 5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의 여인들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 시장에 팔렸다는 사실은 드물게 언급되어 왔습니다. 목숨을 걸고 겨우 탈출한 ..

나시키 가호/김미란 번역, 서쪽 마녀가 죽었다, 비룡소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 나시키 가호의 를 읽고 난 후 문득 수 십 년 전에 돌아 가신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정확히는 할머니가 해주시던 박대찜이 떠올랐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에 물만 붓고 쪄냈는데도 윤기가 좔좔도는 빛깔이며 비린내 하나 없이 정갈하면서도 고소한 맛은 입짧은 편식쟁이 아이였던 제 입맛에도 잘 맞았습니다. 그 맛이 그리워 몇 년 전 근처 식당에서 박대찜을 사 먹었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셨던 추억 속 그 맛은 아니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이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문득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국, 손수 만든 반죽에 양송이와 파프리카, 베이컨을 넣은 키슈, 그리고 둘이 함께 만들었던 '새콤달콤한 숲의 맛'을 닮은 산딸기잼을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세상의 모든 ..

신연호, 문화재로 배우는 근대 이야기, 주니어김영사

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 "지난 주에 고조선을 배웠는데 이번 주에 고구려가 멸망했어요." "고려는 이미 멸망했고 벌써 조선을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알고 보니 5학년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1년 가까이 저와 한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널뛰기 하듯 대충대충 배우고 넘어가는 역사 수업이 영 어처구니 없어 보였나 봅니다. 그나마 미리 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따라가기 수월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마저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학교 수업이 부실하니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설민석이나 최태성 같은 유명 역사 강사들의 수업을 들으며 역사를 배우거나 사설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유튜브로 역사를 배운 아이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