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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노래하는 시쓰기

(가) 넘어진 날 친구들과 뛰어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콰당! 사람들이 자꾸 나를 힐끔힐끔 쳐다 보는 것 같다. 손과 얼굴은 발개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쥐구멍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다. (2학년 학생이 쓴 동시 '넘어진 날' 전문) (나) 비 비가 온다. 오늘은 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한다. 빗방울이 우리 차를 톡톡, 친다. 사람들의 우산에는 빗방울이 송글송글 아이들이 노란색 우비를 입고 첨벙첨벙 꼭 물장구 치는 병아리 같다. 마침 비가 그쳤다. 하늘에는 알록달록 예쁜 무지개가 떴다. (2학년 학생이 쓴 동시 '비' 전문) 아이들이 쓴 동시를 통해 평소 일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또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게 되곤 합니다. (가)는 친구들과 함께 뛰어가다 넘어졌을 ..

시로 쓰는 독서감상문

팔방미인 반짝이 반쪽반쪽 반쪽이 다른 사람보다 무엇이든 반쪽이네 하지만.... 커다란 나무와 바위를 들고 혼자서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지 많은 사람들이 지키는 부잣집에 들어가 딸을 업고 나오고 영감에게는 장기 3연승! 형들의 잘못을 3번이나 덮어 줄 만큼 착하기도 하지. 몸은 남들보다 반쪽이지만 능력은 남들보다 한수 위 그래서 반쪽이는 반짝반짝 팔방미인 반짝이 (2학년 학생의 시 '팔방미인 반짝이' 전문) 수업에서 동화 '반쪽이'를 함께 읽은 뒤에 한 학생이 그 책을 주제로 동시를 써 왔습니다. 그 전 수업에서 책을 읽고도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해줬더니 용케 그걸 기억했다가 써 온 시였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시를 써 오면 수업 시간에 함께 읽고 시에 관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넌 왜 이렇게 표현했니..

박홍순, 거꾸로 보는 이솝 우화, 마로니에북스

읽기는 곧 쓰기다 '토끼와 거북이', '여우와 신포도', '북풍과 해님', '양치기 소년과 늑대' 등은 어린 시절부터 흔히 들어온 이솝의 우화입니다. 우화가 '삶의 지혜와 교훈을 재미있는 동물 이야기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보니 어린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많이 읽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솝의 '우화집'을 직접 읽어보면 조금은 당황스런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교훈적 이야기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이거나 냉소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른생활'용 우화들은 대개 이솝이 지은 것이 아니라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에 도덕주의자들이 이솝 우화를 번역 출판하면서 기준에 맞지 않는 ..

신연호, 문화재로 배우는 근대 이야기, 주니어김영사

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 "지난 주에 고조선을 배웠는데 이번 주에 고구려가 멸망했어요." "고려는 이미 멸망했고 벌써 조선을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알고 보니 5학년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1년 가까이 저와 한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널뛰기 하듯 대충대충 배우고 넘어가는 역사 수업이 영 어처구니 없어 보였나 봅니다. 그나마 미리 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따라가기 수월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마저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학교 수업이 부실하니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설민석이나 최태성 같은 유명 역사 강사들의 수업을 들으며 역사를 배우거나 사설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유튜브로 역사를 배운 아이들은 ..

이규희,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보림

호랑이는 무엇이었을까? 을 쓴 한국계 여성 작가 태 켈러는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호랑이가 등장하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한국의 전래 동화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어 창작한 이 책으로 그녀는 2021년 미국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그녀의 문화적 정체성이자 해방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습니다. 태 켈러의 사례는 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전래동화를 반복해서 읽혀야 하는가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마음에 간직된 이야기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함께 자라나 그 아이의 영혼을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뿌리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

(융합수업)기차는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 반 고흐의 그림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1890)에서 마차는 화면 중앙에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화면 저 멀리 곧게 뻗은 철로 위로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기차는 마치 미래를 향해 가듯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려가고, 마차는 그에 역행하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마차와 기차라는 이동수단은 각각 전통과 근대를 상징합니다. 고흐는 기차에 의해 익숙한 풍경의 모습이 변화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던 듯합니다. 동일한 풍경이라도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위치에서 바라본 모습과 저 멀리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모습이 결코 동일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윌리엄 터너의 그림 '비, 증기..

미디어 교육 2024.10.13

(융합수업)거울아, 거울아

수학을 잘 하면 이과이고, 국어를 잘 하면 문과인가? 한국 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고, 각 분야에 재능있는 학생을 길러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1959년 영국의 과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찰스 P. 스노우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리드 강연에서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과학적 문화와 인문적인 문화 간의 단절은 문화의 발전은 물론이고 사회 발전에도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C.P.스노우/오영환 번역, 두 문화, 사이언스북스) 이후 이 두 분야를 연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했고, 한때 융합이나 통섭과 같은 단어들이 우리 사회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수학과 ..

미디어 교육 2024.10.12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황현산 번역, 어린 왕자, 열린책들

보아뱀은 왜 코끼리를 삼켰을까? 생텍쥐페리의 (1931)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이 등장합니다. 마치 모자처럼 보인다고 그대로 대답을 했다간 '트럼프 이야기, 골프 이야기, 정치 이야기, 넥타이 이야기'나 좋아하는 어른이라는 핀잔을 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답을 외워서 '코끼리를 삼칸 보아뱀'이라고 대답을 해도 상상력이 풍부한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는 평가를 듣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암기한 지식을 반복하는 일은 창의성과는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창의력과 순수성을 측정하는 시험지가 된 듯한 생텍쥐페리의 그 그림은 사실상 어른들을 아포리아(aporia)에 빠뜨리는 함정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들이 이런 곤경을 회피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책을 ..

모니카 페트/김경연 번역,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행복한 청소부, 풀빛

청소부는 어떻게 '행복한' 청소부가 되었나 이 책의 주인공은 독일의 거리 표지판을 닦는 평범한 청소부입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똑같은 거리의 표지판을 닦아 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질문하는 것을 엿듣게 됩니다. 아이는 표지판에 쓰인 '글루크'란 글자를 보고 행복을 뜻하는 '글뤼크'(Glück)에서 한 부분이 지워진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의 엄마는 웃으면서 이 거리의 이름은 '행복'이 아니라 '글루크'라는 작곡가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청소부는 무엇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수 년이나 표지판을 닦아 왔지만 아이와 마찬가지로 '글루크'가 작곡가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

J.M.바스콘셀로스/박동원 번역,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동녘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책을 처음 일고 대성통곡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교 후 아무도 없던 집 마루에 엎드려 무심코 집어든 책을 펼치기 전까지 저는 활자가 날카롭고 뾰족한 무엇이 되어 제 가슴을 그리 후벼파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 눈물을 훔치고 다시 책을 펼치고 또 다시 울다가 다시 책을 펼치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책읽기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 광경을 누군가 지켜보았더라면 인상 깊은 추억으로 간직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훗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책을 다시 읽으며 제가 그 당시 왜 그토록 대성통곡을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제처럼 조금은 조숙했던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