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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6) 벽(심혜나)

벽 심혜나 한적했던 마을에 큰 벽이 생겼다. 어느 날은 큰 기차가 그 벽을 넘어 마을로 들어섰다. 기차에선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모두들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울어대며 서로를 껴 안았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다. 바로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액자 속 주인공 그 사진엔 우리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또 그 벽은 굳게 닫혀 버렸다. 시인의 말) 이 시의 주인공은 이산가족인가 봅니다. 비무장지대라는 벽을 뚫고 가족을 다시 만났지만, 그 벽은 또 굳게 닫혀 버립니다. 지금도 남과 북은 가운데에 벽을 두고 서로를 외면합니다. 그 중엔 떨어진 가족들이 수도 없이 보입니다. 서로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결국 우리는 그 상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 시의 주인공도 자신의 ..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5) 아이와 새싹(심혜나)

아이와 새싹 심혜나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에도나는 책상에서 뒤척이다가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학교 마당 앞돋아나는 새싹을 바라보다가 하루 이틀 사흘 나흘지나가버리고 새싹은 큰 나무가 되어저 높은 하늘로 조금씩조금씩 올라갑니다. 나는 큰 어른이 되어담 넘어 보이는 나무를 지긋이 바라보다가헐레벌떡 일자로 떠납니다. 시인의 말) 시의 주인공이 학창시절 늘 바라보았던 한 새싹이 있습니다. 무언가 끌렸는지 그 새싹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학생이던 주인공은 회사원으로, 그 조그마한 새싹은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주인공에겐 이 나무가 친근한 친구로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늘 시선은 그 나무에게로 갑니다. 어릴 때 바라보던 나무. 어쩌면 그 나무에 주인공의 과거가 담겨 있지 않을..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4) 포스트잇(김희정)

포스트잇 김희정 너에 대한 마음을 꾹꾹 눌러 쓴 포스트잇 나는 항상 너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 너 한때는 소중했던 그 마음을 기억할게 이젠 기분 좋게 이별할게 시인의 말) 포스트잇이 떨어질 때를 그리움과 너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적어도 잘 안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를 마음으로 표현한 시입니다. 그리고 메모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태 켈러/강나은 번역,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돌베개

새로운 옛 이야기 전래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떡과 아낙을 집어삼키고도 채워지지 않아 그녀의 자식들마저 잡아먹으려 했던 호랑이의 근원적 결핍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리고 호랑이에게서 도망친 오누이는 왜 하필 해와 달이 되었을까요? 그후 오빠와 누이 동생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또 만약 오누이가 아니라 형제나 자매가 주인공이었더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이 전래 동화에는 이처럼 대답되지 않은 수많은 빈틈과 질문이 남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여백을 듣는 이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 읽으며 옛 이야기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게 되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야기들이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오래된 민간 설화는..

방정환의 금시계

옛날 동화는 요즘 동화와 무엇이 다른가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조어했고,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의 인권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을 모르는 초등학생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수많은 외국 동화들을 번역하고, 직접 동화를 창작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는 읽을거리가 변변치 않던 시절 어린이 잡지 월간 를 창간해서 이원수나 마해송 등 아동문학가들을 발굴해 척박한 한국 아동문학계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왕자와 제비'나 '잠자는 왕녀' 같은 외국 동화를 번안한 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기별 삼형제' 등의 동요를 직접 짓기도 하고, 추리소설인 '칠칠단의 비밀' 등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방정환의..

송미경, 돌 씹어먹는 아이, 문학동네

부조리한 현실과 싸우는 무기고로서 환상의 세계 '혀를 사 왔지'의 주인공 시원은 일 년에 한번, 삼 일간 열리는 '무엇이든 시장'에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회색 고양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웃고 있는 눈썹이나 원숭이 꼬리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꼬리를 팔고 있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 시원이는 어린 당나귀에게서 혀를 사기로 결정합니다. 왜 하필 혀를 샀느냐고요? 그에게는 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펼쳐지는 이런 기괴하고 낯선 광경에 잠시 당황하게 됩니다. 달리나 마그리트와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나 봤을 법한 이질적이고 당황스런 상상의 세계를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에서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면 동화의 세계만큼 초현실적인 상상력이 강력하게 요청되는 곳도 없는 ..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3) 잿빛하늘의 무지개

잿빛하늘의 무지개 심혜나 강가에 동그란 원이 드리웠다. 원은 점점 커져갔고, 점점 흐릿해져갔다. 조금 뒤 그 옆에 또 동그란 원이 생겨났다. 원은 또다시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울려다본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졌다. 고요한 강가 속, 물방울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하늘이 뭐 그리 슬픈지 울어댔다. 한적했던 강가는 비바람에 휩쓸렸다. 곧이어 맑게 갠 하늘엔 .... 구름들 사이에 형형색색의 무지개가 두리둥실 잿빛이었던 하늘에 무지개가 드리웠다.시인의 말) 강가에 그려진 동그란 원은 빗방울이 떨어져 만든 것입니다. 잠잠한 강가에 돌을 던진 것처럼 생긴 원은 커지다 커지다 없어졌습니다. 올려다본 하늘은 이미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온 것입니다. 하늘이 운 것은 비가 내렸다는 것이죠. 곧..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2) 새싹의 성장일지

새싹의 성장일지 심혜나 산들산들 부는 바람, 그때 그 조그맣던 새싹이 햇빛이 쨍쨍한 날, 그때 그 예쁘게 피어났던 꽃으로. 나뭇잎이 찬 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틱틱 떨어졌던 그날, 그때 그 열매가 되었고. 눈보라가 매섭게 내리꽂던 날, 그땐 눈에 덮힌 나였지. 다시 산들산들 부는 바람, 이제 다시 푸릇푸릇 자라나는 나.시인의 말) 이 시의 주인공 새싹은 꽃으로 피기도 하고 열매를 맺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바뀌는 날씨는 계절을 뜻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새싹의 성장과정을 나타낸 것이지요. 봄에 조그맣던 새싹, 여름에 예쁘게 피어난 꽃. 그리고 가을엔 열매를 맺고, 결국 겨울엔 눈에 덮힌 채 시들어버리지만, 다시 찾아온 봄엔 반갑기라도 한 듯 새싹이 고개를 들어요. 그게 시간 속 새싹의 성장과정이예요.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1) 태양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시 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6학년 이상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쓴 시에 대해 해설도 함께 써 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의도로 시를 썼고,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설명하면서 시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를 곱씹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쓴 시와 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생각 사이에 놓인 빈틈과 간극을 성찰하면서 아이들은 차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등을 사색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 교육은 단순히 예쁘고 멋진 글을 쓰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인식하도록 만드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항상 예외없이 제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

어니스트 시튼/햇살과나무꾼 번역, 시튼 동물기1, 논장

동화의 세계에서 사실의 세계로 로 알려진 어니스트 톰프슨 시튼의 작품은 사실 (1898)을 비롯해 그가 동물들에 관해 발표한 수많은 글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제목입니다. 이솝 우화나 그림 동화 같은 옛이야기에서 등장한 동물들은 겉모습만 동물일 뿐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의인화된 동물들이었던데 반해, 시튼은 동물학자로서 오랫동안 동물을 직접 관찰하고 연구해서 글을 썼다는 점에서 '사실적 동물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튼 역시 의 머리말에서 자신이 쓴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동물 이야기들이 모두 비극적인 것은 실화이기 때문이다. 야생 동물은 언제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법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전세계 어린이들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