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 61

미셸 투르니에/고봉만 번역, 방드르디, 야생의 삶, 문학과지성사

왜 '방드르디'인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허구적 인물도 아니면서 근대의 '신화적 인물'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세의 떠돌이 마술사에서 근대인의 대표가 된 '파우스트', 기사도 소설의 '팬'에서 편력기사로 거듭난 '돈키호테', 현재의 쾌락을 위해 종교나 사회규범도 무시했던 에고이스트 돈 후안, 그리고 무인도조차 경영의 대상으로 삼았던 '호모 에코모니쿠스' 로빈슨 크루소가 그런 예들입니다. 영문학자 이언 와트는 이런 인물 유형들이 '반르네상스' 또는 '반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시기에 출현한 것은 반동적 시대에 대한 저항으로 '개인주의'가 등장한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 모두 '자아 대 세상'이라는 태도에 입각해서 행동하며, 공동체적 ..

박완서, 자전거 도둑, 다림

세 가지 '자전거 도둑' 1948년 이탈리아의 감독 비토리아 데시카가 만든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빈곤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고단한 현실과 따뜻한 가족애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네오리얼리즘의 수작으로 평가를 받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쓰여진 동명의 소설이 두 편이나 있습니다. 김소진의 과 박완서의 입니다. 두 작품 모두 '아버지, 자전거, 도둑, 가난'이란 핵심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영화와 완전히 다릅니다. 김소진의 소설은 자전거를 매개로 드러난 타인의 상처를 안아주기는커녕 그로 인해 더욱 멀어지게 되는 가혹함을 비정하게 서술합니다. 박완서의 소설은 16세의 소년이 서울에서 겪게 되는 윤리적 갈등을 통해 도덕적인 각성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

조지 오웰/김욱동 번역, 동물 농장, 푸른숲주니어

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조지 오웰의 소설 이 해외에서 제일 먼저 번역된 나라는 놀랍게도 한국입니다. 1948년 공보처 관료인 김길준이 이 소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번역해 출간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미국 해외정보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란 추측이 유력합니다. 당시 수립된 남한정부는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표명하기 위해 이 책을 홍보 수단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책이 소개된 이런 시대적 한계로 인해 오웰의 이 소설은 공산주의의 극단적 파행성을 부각시키고, 상대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반공소설로 독해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는 소련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작품으로 읽혀 왔습니다. 그래서 농장 주인인 존스는 러시아 ..

손창섭, 싸우는 아이, 우리교육

주인공은 왜 싸우는 아이가 되어야 했나 4.19 혁명의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될 만큼 중요한 역사적 경험입니다. 서양의 근대적 민주정이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혁명을 통해 형성되었듯이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의 정치체가 독재자 이승만을 시민들의 손으로 내쫓고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저 역사적 경험에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으로서의 개인'을 발견하게 된 정의로운 항거는 비록 이듬해 박정희가 주도한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좌절된 듯 보였지만, 경제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운 군사정부도 4.19혁명의 경험..

찰스 디킨스/김영진 번역, 크리스마스 캐럴, 비룡소

배경 지식을 꼭 알 필요가 있을까 구두쇠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유령들을 만나 새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는 많은 아이들이 직접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책을 수업 교재로 만들 때는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과 실제로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감상이 다르다는 것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유튜브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고 있는 것과 원작을 독서해서 얻게 되는 것이 차이가 없다면 굳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소개해서도 곤란합니다. 디킨스가 살았던 19세기는 산업혁명으로 이제 막 발흥한 초기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로 자본가들의 탐욕과 노동자들에 대한 착..

E.T.A. 호프만/최민숙 번역, 호두까기 인형, 비룡소

크리스마스엔 '호두까기 인형'을 해마다 연말이 되면 '호두까기 인형'의 발레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거리마다 붙어 있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12월을 알리는 전령처럼 되어 버린 그 공연을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더라도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1840∼1893)가 창조했다는 '사탕 요정의 춤', '중국인의 춤', '꽃의 왈츠' 등은 분명 어디선가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에게 영감을 준 원작이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1776~1822), 줄여서 에.테.아 호프만이 쓴 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호프만의 문학은 차이코프스키 외에도 슈만이나 오펜바흐 등 수많은 음악가들의 창작에 영감을 주었을 만큼 음악가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미샤 다미안/최권행, 아툭, 한마당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다 소중하게 생각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해외로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값비싼 만년필이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목걸이 같은 물건에서부터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조부모님이나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 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하게 되는 가슴 아픈 상실의 경험은 그 누구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상실과 결핍으로 인해 한동안 슬픔에 빠지게 되지만 결국은 그것을 이겨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아무리 상실의 아픔이 크다 해도 애도의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우리는 또 다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실의 고통을 처음으로 겪게 되는 아이들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게 될까요? 만약 그들이 물건이 사..

구드룬 파우제방/함미라 번역,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보물창고

체르노빌은 지나간 사건인가우리는 1984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불행했던 과거의 사건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HBO에서 방영한 미니시리즈 (2019)을 시청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리라고 봅니다.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홍보되는 원자력이 실은 원자폭탄 개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군사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위험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위험한 물질보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부 당국자들의 거짓과 기만이 피해의 규모를 더 키웠다는 사실이 더 공포스럽게 다가옵니다. 여기에 추가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의 목소리를 10여년에 걸친..

이상, 황소와 도깨비

'황소와 도깨비'는 누가 쓴 동화인가? 지금까지 '황소와 도깨비'는 와 로 유명한 천재 시인 이상이 쓴 유일한 동화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근대 동화 연구자인 김영순 씨는 이 동화가 이상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1937년 에 연재된 '황소와 도깨비'는 그보다 13년 전인 1924년 일본 아동문예지 「아까이토」에 처음 발표된 일본작가 토요시마 요시오(豊島與志雄)의 동화 '천하제일의 말'을 번안한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두 작품을 비교했을 때 줄거리, 구성, 전개 방식, 어휘 등이 상당히 일치한다고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김씨는 '황소와 도깨비'가 이상이 쓴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상의 글쓰기 특징인 "도시스런 매개어의 사용"과 작품의 산골이미..

레프 톨스토이/이순영 번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예출판사

톨스토이와 함께 하는 윤리 수업 톨스토이의 단편 모음 는 작가가 러시아에서 구전된 전설이나 민담을 각색해서 도덕적 교훈을 주기 위해 쓴 글입니다. , , 와 같은 그의 대표작들과 달리 소박한 언어와 평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흔히 '동화'로 분류되며 학생들에게 권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하면 '동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설교를 따분하게 늘어놓는 '재미없는 책'으로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책은 마치 기독교의 종교적 가르침을 윤리적으로 각색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가르침의 내용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하품만 나오게 합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존재라니요? 그런데 이 책에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