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 40

박홍순, 거꾸로 보는 이솝 우화, 마로니에북스

읽기는 곧 쓰기다 '토끼와 거북이', '여우와 신포도', '북풍과 해님', '양치기 소년과 늑대' 등은 어린 시절부터 흔히 들어온 이솝의 우화입니다. 우화가 '삶의 지혜와 교훈을 재미있는 동물 이야기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보니 어린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많이 읽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솝의 '우화집'을 직접 읽어보면 조금은 당황스런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교훈적 이야기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이거나 냉소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른생활'용 우화들은 대개 이솝이 지은 것이 아니라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에 도덕주의자들이 이솝 우화를 번역 출판하면서 기준에 맞지 않는 ..

신연호, 문화재로 배우는 근대 이야기, 주니어김영사

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 "지난 주에 고조선을 배웠는데 이번 주에 고구려가 멸망했어요." "고려는 이미 멸망했고 벌써 조선을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알고 보니 5학년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1년 가까이 저와 한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널뛰기 하듯 대충대충 배우고 넘어가는 역사 수업이 영 어처구니 없어 보였나 봅니다. 그나마 미리 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따라가기 수월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마저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학교 수업이 부실하니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설민석이나 최태성 같은 유명 역사 강사들의 수업을 들으며 역사를 배우거나 사설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유튜브로 역사를 배운 아이들은 ..

이규희,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보림

호랑이는 무엇이었을까? 을 쓴 한국계 여성 작가 태 켈러는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호랑이가 등장하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한국의 전래 동화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어 창작한 이 책으로 그녀는 2021년 미국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그녀의 문화적 정체성이자 해방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습니다. 태 켈러의 사례는 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전래동화를 반복해서 읽혀야 하는가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마음에 간직된 이야기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함께 자라나 그 아이의 영혼을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뿌리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황현산 번역, 어린 왕자, 열린책들

보아뱀은 왜 코끼리를 삼켰을까? 생텍쥐페리의 (1931)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이 등장합니다. 마치 모자처럼 보인다고 그대로 대답을 했다간 '트럼프 이야기, 골프 이야기, 정치 이야기, 넥타이 이야기'나 좋아하는 어른이라는 핀잔을 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답을 외워서 '코끼리를 삼칸 보아뱀'이라고 대답을 해도 상상력이 풍부한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는 평가를 듣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암기한 지식을 반복하는 일은 창의성과는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창의력과 순수성을 측정하는 시험지가 된 듯한 생텍쥐페리의 그 그림은 사실상 어른들을 아포리아(aporia)에 빠뜨리는 함정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들이 이런 곤경을 회피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책을 ..

모니카 페트/김경연 번역,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행복한 청소부, 풀빛

청소부는 어떻게 '행복한' 청소부가 되었나 이 책의 주인공은 독일의 거리 표지판을 닦는 평범한 청소부입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똑같은 거리의 표지판을 닦아 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질문하는 것을 엿듣게 됩니다. 아이는 표지판에 쓰인 '글루크'란 글자를 보고 행복을 뜻하는 '글뤼크'(Glück)에서 한 부분이 지워진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의 엄마는 웃으면서 이 거리의 이름은 '행복'이 아니라 '글루크'라는 작곡가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청소부는 무엇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수 년이나 표지판을 닦아 왔지만 아이와 마찬가지로 '글루크'가 작곡가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

J.M.바스콘셀로스/박동원 번역,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동녘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책을 처음 일고 대성통곡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교 후 아무도 없던 집 마루에 엎드려 무심코 집어든 책을 펼치기 전까지 저는 활자가 날카롭고 뾰족한 무엇이 되어 제 가슴을 그리 후벼파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 눈물을 훔치고 다시 책을 펼치고 또 다시 울다가 다시 책을 펼치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책읽기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 광경을 누군가 지켜보았더라면 인상 깊은 추억으로 간직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훗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책을 다시 읽으며 제가 그 당시 왜 그토록 대성통곡을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제처럼 조금은 조숙했던 저..

이미애, 반쪽이, 보림

왜 '반쪽이'일까? 반쪽이는 한국 전래 동화에서 매우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눈도 하나, 귀도 하나, 다리도 하나, 입도 반쪽, 코도 반쪽인 독특한 외형은 조금은 기괴하기도 하고 뭔가 짠한 감정이 들게도 합니다. 늙도록 자식이 없던 여인이 백 일이나 신령님한테 빌고 또 빌어 어렵게 태어난 아이가 그러했으니 그 어미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쪽이를 흐뭇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그가 자신의 타고난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밝고 씩씩한 성격으로 그것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반쪽이의 이러한 불완전성은 '장애'의 징표도 읽을 수 있지만, 어린 아이의 '미숙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반쪽이가 형제들 중 막내인 것도 그런 불완전성을 상기시킵니다. 현실에서 막내는 다른 형제들보다..

아이작 아시모프/김옥수 번역, 아이, 로봇, 우리교육

로봇공학의 3원칙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공상과학 소설의 3대 대가로 불립니다. 그가 제안한 '로봇의 3원칙'은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예전보다 더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1942년 '술래잡기 로봇'에서 처음으로 '로봇공학 3원칙'을 등장시킨 뒤 훗날 1원칙에서 '인간'을 '인류'로 수정한 0원칙을 추가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0원칙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류를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로봇은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로봇은 제..

프란치스카 비어만/김경연 번역, 책 먹는 여우, 주니어김영사

여우의 책 먹기 이 책에 등장하는 여우 아저씨는 책을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는 책에 소금과 후추까지 뿌려가며 집어 삼킵니다. 그에게 책은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킁킁 냄새도 맡고, 쪽쪽 핥아도 보고, 번개처럼 빠르게 소금과 후추 병을 꺼내 톡톡 양념을 치고, 덮석 책을 베어 물고 꼭꼭 씹어 먹습니다.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은 '마음의 양식'인 책을 축어적으로 해석해서 독서에 대한 유머러스한 동화를 창작해 냈습니다. 즉, 주인공 여우에게 책 읽기는 책 먹기로 이해되는 활동입니다. 독서를 육체적 활동으로 표현하자 오히려 독서가 우리에게 지닌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육체를 지탱하기..

메리 셸리/오숙은 번역, 프랑켄슈타인, 열린책들

은 어떻게 탄생했나 1816년은 유럽의 역사에서 '여름이 없었던 해(Year without a summer)'라고 불립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이상 저온, 폭풍우, 장마, 홍수 등을 겪었습니다. 연초부터 계속된 저온현상으로 농작물은 극심한 타격을 입었고 대규모 기근으로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야 했습니다. 그 원인은 탐보라 화산 폭발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며 분출한 가스와 먼지가 햇빛을 차단해서 그 당시 지구는 약 3년 가량 이상저온 현상에 시달려야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19살의 메리는 여동생 클레어,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함께 스위스로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클레어의 제안으로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을 방문하게 됩니다. 바이런의 친구이자 의사이자 작가 지망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