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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햇살과나무꾼 번역, 첼로 켜는 고슈

고슈는 어떻게 훌륭한 첼로 연주자가 되었나 고슈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샛별 음악단'에 소속된 첼로 연주자입니다. 그런데 실력이 동료 연주자들 가운데 가장 형편없었기 때문에 늘 지휘자한테 꾸지람을 듣기 일쑤입니다. 다들 곧 있을 마을 음악회에서 연주할 베토벤 교향곡 6번 연습에 한창입니다. 지휘자는 사사건건 고슈의 연주에 트집을 잡습니다. 고슈의 첼로 연주는 박자와 음정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다 못한 지휘자는 마침내 그에게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고슈, 자넨 정말 문제야! 표정이 아예 없어. 분노고 기쁨이고 하나도 표현하지 못하잖아! 게다가 다른 악기와 호흡이 전혀 안 맞는단 말일세. 항상 자네 혼자 신발끈을 질질 끌며 뒤꽁무니를 따라오는 것 같다구." 고슈는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잭 런던/햇살과나무꾼 번역, 야성의 부름, 시공주니어

벅의 변화는 성장인가, 퇴화인가 청소년기에 읽게 되는 수많은 소설들은 성장소설의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성장소설의 주인공은 수많은 역경과 모험을 겪게 되고, 그 결과 처음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과정은 A에서 A'로의 변화로 공식화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A가 A'로 변했다고 보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이미 A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잭 런던의 은 완벽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보살핌 속에서 안온한 삶을 살던 개가 우연한 계기로 야생의 자연에 내던져지면서 점차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야생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가 늑대로 변한 것을 과연 '성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벅의..

박운규, 버리데기, 시공주니어

버리데기의 이름은 왜 버리데기인가? 자신의 재산과 벼슬을 물려줄 아들을 간절히 원하던 아버지는 내리 딸 여섯을 낳고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온갖 정성을 들인 끝에 부인은 청룡과 황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막힌 태몽까지 꾸고 일곱 번째 아이를 잉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태어난 그 일곱 번째 아이마저 딸이었습니다. 몹시 화가 난 아버지는 갓 태어난 핏덩이를 밖에 내다 버리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은 '버리데기'가 되었습니다. 버리데기는 엄밀히 말해 이름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부엌데기, 새침데기, 푼수데기 등과 같은 단어를 만드는데 사용된 접미사 '-데기'는 '그와 관련한 성질이나 속성을 갖춘 사람'을 얕잡는 뜻을 더하는 보통명사를 형성할 뿐 홍길동과 같은 고유명사..

찰스 디킨스/왕은철 번역, 위대한 유산, 푸른숲주니어

인물 관계를 알면 소설이 한눈에 보인다 찰스 디킨스의 처럼 분량이 제법 많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단순히 줄거리를 요약한다고 해서 소설을 이해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요 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파악하게 되면 소설의 주제나 작가의 의도에 접근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배열한 줄거리와 달리 인물들의 관계망은 소설의 전체 얼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핍은 부모님을 일찍 여읜 탓에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갖고 있지 못한 고아 소년입니다. 그는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누나와 그녀의 남편인 대장장이 조의 보살핌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주목할 점은 누나는 핍을 모질게 대하는 반면, 매부 조는 ..

허균, 홍길동전

의 저자는 누가인가 '홍길동'은 공문서의 견본용 이름으로 널리 사용될 만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이름입니다. 이 이름의 주인공은 조선 광해군 때 활동했던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소설'인 에서 유래한다고 배웠습니다. '홍길동'이란 이름이 이토록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를 딛고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원한 '의적'이었다는 사실도 포함될 것입니다. 영국의 '로빈 후드'나 중국의 '수호지' 같이 부패한 정치 권력과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도둑' 이야기는 백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서 언제나 큰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홍길동전'의 주인공은 허구의 창작물이 아니라 역사적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그는 1500년(연산군 6년) 무..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사피엔스21

김첨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1924)은 일제 강점기 하층민의 비극적 삶을 탁월한 기법으로 묘사해서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한국의 대표적 단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인력거꾼 김첨지라고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는 '나이 많은 남자를 낮춰 부르는 호칭'인 첨지라 불릴 뿐 그의 실명이 알려진 바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김첨지는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조선의 민초들을 대표하는 인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아야 했던 그 인물에게 정당한 이름과 구체적 얼굴을 되찾아주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김첨지는 동소문(현재의 혜화문..

노양근, 날아다니는 사람

일제 시대 아이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날아다니는 사람'은 작가 노양근이 1936년에 발표한 동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에 쓰여진 동화라고 하면 아이들이 깜짝 놀랍니다. 오래 전에 사용된 한국어로 쓴 책을 자신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비슷하다는 점에 신기해 합니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 한국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으면 6.25 전쟁 중이었다고 대답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일제강점기였다고 정확히 대답하는 아이들도 항상 나타납니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 치하에 살았던 아이들은 어떤 장래희망을 꿈꾸었을까요? 동화에서 교장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이 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도지사, 교장 선생님, 경찰, 군수..

동시 잘 쓰는 법

왜 동시를 쓰는가 앤 파인의 책 을 읽고 진행된 3학년 수업에서 흥미로운 글을 쓴 학생이 있었습니다. '나만의 비법'을 소개하라는 글을 쓰라고 했을 때, 그 학생은 '동시 잘 쓰는 법'에 대해 썼습니다. 그 글이 흥미로운 건 저학년 학생들이 동시나 동시 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학생은 이미 2학년 때 동시 쓰기 수업을 통해 다양한 시를 써 왔습니다. 동시 쓰기는 학년 별로 일시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이 학생은 3학년이 되어 더 이상 동시 쓰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이 쓴 글은 평소에 동시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 쓰기 수업에서 동시를 어떻게 쓰라고 지시하거나 동시를 쓰면 무엇이 좋아진다고 가르친 적이 없..

후루타 다루히/윤정주 번역, 숙제 주식회사, 우리교육

아이들은 왜 숙제 주식회사를 만들었을까? 다케시네 집에 모여 숙제를 하던 아이들은 이웃집 데루 형이 천만 엔을 받고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미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언니가 한 달에 2만5천 엔을 받는다며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냐며 한숨을 쉽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 말에 동조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2천 5천 엔을 받고 야구만 하고 천만 엔을 번다면 공부하는 게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다케시가 친구들에게 10엔만 내면 숙제를 대신 해 주는 회사를 제안하고 친구들과 함께 '숙제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1966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이 책은 무려 50여년 전에 쓰여졌지만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그 당시 일본의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치..

앤 파인/윤재정 번역, 삐뚤빼뚤 쓰는 법, 논장

'삐딱이'와 '열등생'의 기묘한 우정 제목만 보면 이 책은 아이들한테 '삐뚤빼뚤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상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지렁이 글씨의 일인자' 조 가드너가 등장합니다. 어떤 글자도 두 번 다시 똑같이 쓰는 법이 없는 조는 지독한 악필에 수학이나 체육에도 젬병인 열등생입니다. 선생님조차 포기한 듯한 조에게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서 전학온 '삐딱이' 친구 체스터 하워드가 나타납니다. 엄마의 직장 때문에 "세서미스트리트를 보는 것보다 더 자주 학교를 옮겨" 다녀야했던 체스터는 무엇이든 삐딱하고 시니컬한 태도로 대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서로 상극일 것만 같은 그 둘이 짝꿍이 되면서 서로의 장점을 이끌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충분히 예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