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5학년

오가와 히토시/서슬기 번역, 자유나라 평등나라, 바다출판사

ddolappa72 2025. 6. 7. 20:17

 
자유와 평등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두 개의 큰 기둥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이 무엇이고, 그것들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익히는 것을 철학 공부라 생각했지 정작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시민철학자인 오가와 히토시는 청소년들이 쉽게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철학동화 <자유나라 평등나라>를 썼습니다. 이 동화에서 자유나라의 벨과 평등나라의 쿠는 우연히 만나서 사흘 간 상대의 나라에 서 살아보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뉘었던 두 나라를 합쳐서 꿈의 나라를 만들게 됩니다.  

이 책은 '자유'와 '평등'을 설명하기 위해 또다시 추상적인 용어를 나열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유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화려한 패션'을 입는 것이고, 평등이란 '모두 같은 색의 국민복'을 입는 것이란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열거되는 구체적 사례들을 읽으며 아이들은 스스로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교사가 할 일은 아이들이 그 모호한 안개와 같은 인상들을 걷어 내고 스스로 개념을 정교화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것뿐입니다.

무한한 자유는 왜 부자유를 초래할까

자유나라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국가의 간섭도 거의 없거나 최소한에 그쳐서 자유나라의 국가 조직은 군대, 경찰, 법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게 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이 나라에선 개인들 간의 자유가 서로 충돌할 경우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경쟁이 심해지고 불평등과 차별이 만연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화려한 옷을 뽐내며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만 허름한 옷을 입고 구걸하는 거지들도 많았습니다.  

경쟁에 지치고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다 보니 '사랑 가게'라는 것도 생겨났습니다. 결혼을 하면 자유를 빼앗긴다는 생각에 결혼도 거의 하지 않고, 아기는 '상업적 정자은행'이나 '대리모 출산 사업'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그나마 이런 서비스는 돈이 있는 사람들만 누릴 뿐입니다. 심지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값비싼 극장에 갈 수도 없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이 책에서 서술되고 있는 자유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권리로서 개인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서 '자유'도 있고,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언론과 집회의 자유 같은 정치적 '자유'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자유시장 경쟁의 원리에 기초해 경제적 활동을 하고 그를 통해 획득한 부를 소유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도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자유'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이기심에 따라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할 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제적 자유주의가 자유 방임주의로 실현되었을 때 공동체의 이익이 증대되기는커녕 가진 자들의 자유만 증대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경제에서 무한한 자유의 보장이 오히려 자유의 위축을 가져오는 이 역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요?
 



자유와 평등은 어떤 관계일까

자유나라에서 사람들은 돈을 벌어 성공하는 것을 유일한 꿈으로 여깁니다. 그들은 자유를 돈을 벌 자유,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고 멸시할 자유로만 이해합니다. 그들이 누리게 될 자유의 총량은 그들이 가진 돈의 크기에 비례하므로 경제적 성공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하지만 돈 자체가 목적이 된 그들의 자유는 그외 다른 목표가 없다는 점에서 공허합니다. 

이와 달리 평등나라에는 빈부 격차도 없고 길거리에 거지도 없습니다. 모두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분배를 받기 때문에 굳이 애써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가 시간이 많기 때문에 문화가 발달했고, 공영극장에서 마음껏 연극과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등나라에서는 누구나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학생들의 직업은 학교에서 제출한 서류를 바탕으로 나라에서 적성을 판단해서 결정됩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고, 자신이 선택한 일이 아니므로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조금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탓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운영 계획을 세우는 간부들이 끊임없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모두 평등한 것 같지만 학생들의 직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나 국가의 운영 계획을 세우는 간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한 것처럼 보인다는 역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마치 서로 대립하는 원리처럼 보입니다. 자유만을 강조하게 되면 배타적 자유가 되어 평등을 침해하게 되고, 개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결과가 같아야 한다는 식의 평등은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등이 무시된 자유나 자유가 금지된 평등 역시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등 없는 자유는 자유를 억압하게 되고, 자유 없는 평등은 불평등을 허용하는 역설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은 배타적인 원리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시일반으로 이룬 꿈의 나라

자유와 평등은 개인이 공동체 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리입니다. 우리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구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충분히 자유로우면서 평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가와 히토시는 십시일반을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그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유롭지만 남에게 줌으로써 평등해진다면 그 사람도 자유를 누리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10명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학급에서 1명이 가난해서 점심을 싸오지 못했다고 합시다. 도시락을 가져온 9명이 한 숟가락씩만 도와준다면 10명 모두 똑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아홉 명이 한 숟가락을 내놓는 행위가 어떤 의무감이나 규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힘든 친구를 돕겠다는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자유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아이디어를 채용한 십시일반의 원리가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유와 평등을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한 가지 힌트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갈등도 따지고 보면 자유와 평등 간의 배분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복지를 줄이고 경쟁을 선호하는 정책을 내놓습니다. 이와 달리 복지론자들은 우리 사회는 경쟁으로 인한 피로도가 지나치게 높은 사회이므로 경쟁을 줄이고 사회 안전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장애인에게 포용 정책을 펼치면 역차별이라고 논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모든 현상들은 우리 사회가 자유와 평등을 어떤 식으로 배분해야 할 지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철학은 현실 저 너머에 있는 어떤 고상한 영역에 속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에도 철학은 숨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평범한 일상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반성적으로 성찰해보도록 하고, 그 안에서 어떤 철학적 단초를 끄집어내서 대화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철학 수업도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