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사 공부는 왜 필요한가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다가올 사회가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인재를 요구하게 될 거라 예측합니다. 그에 따라 전세계의 수많은 학교들은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고,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이 있는 지식과 창의적 사고를 겸비한 '다빈치형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형 인재의 모델이 되고 있는 다빈치는 흔히 오해하고 있듯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학교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고, 그래서 당시 대다수의 지식인들의 공용어인 라틴어를 읽지 못했으며 복잡한 나눗셈조차 할 줄 몰랐습니다.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의학, 치과학, 해부학, 생물학, 지질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어낸 세기의 천재를 만들어낸 것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지치지 않는 관찰과 연구, 그리고 경계 없는 상상력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파고 들었고, 집요하게 관찰했고, 쉴새없이 메모를 남겼고, 친구들과 토론을 즐겼습니다.(월터 아이작슨/신봉아 번역,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르테)
다빈치를 천재로 인도했던 저 마음가짐을 배울 수는 없을까요? 아이들의 잠자는 호기심을 유발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관찰하게 하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쳐 보이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이런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모색하던 중 찾아낸 방법 중 하나는 미술의 역사를 함께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 작품들은 그 시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했는가를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작품이 탄생한 시대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술작품은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상상의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해석을 하더라도 모두 정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예술이란 분야입니다.
하지만 예술도 세계사도 낯선 아이들에게 곧바로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와 같은 이 분야의 고전들을 권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대신 "소설의 재미와 역사적 사실의 기술, 그리고 명작의 해설까지 잘 조화"된 '지식소설'인 <수상한 화가들>은 미술사에 입문하는 청소년들에게 적당한 수준의 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주인공 철우가 수상한 화가들의 안내로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며 작품과 화가에 대한 지식을 넓혀간다는 설정을 통해 작가는 예술사에 대한 지식을 흥미로운 허구 속에 잘 녹여냈습니다.




이집트 벽화와 피카소의 그림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집트 화가들은 독특한 인물상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그린 사람은 모두 옆으로 고개를 돌려 얼굴의 옆모습을 보여주지만 특이하게도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은 정면을 향하고 있어 뭔가 부자연스럽고 뻣뻣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인물을 형상화하는 이런 방식이 이집트의 모든 조각과 그림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는 것은 그들이 일정한 양식에 따라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왜 예술에 이런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시켰던 것일까요?
이집트인들은 사람의 옆얼굴이야말로 그 사람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눈은 정면에서 바라본 형태가 가장 완전한 모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 팔과 다리, 허리 등을 온전하게 다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들은 한 인물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한 평면에 모아 놓은 방식으로 그렸던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믿었던 그들은 인간의 신체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의 표현 양식을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이집트 벽화 곁에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을 나란히 세워두고 살펴보면 그들 사이에 놀라운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피카소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얼굴과 신체가 뒤틀리고 왜곡된 기괴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여러 시점에서 관찰한 형태들을 조합해 2차원의 공간 속에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화가들과 피카소는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된 사물의 모습을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파카소가 입체파(cubism)을 창시할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친 것은 이집트 화가들이 아니라 화가 세잔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사과 정물화는 과일들이 곧 쏟아져 내릴 듯 불안하게 그려졌는데, 이는 그가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한 평면 위에 옮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르네상스 이래로 서양의 미술계를 지배했던 원근법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미술은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독창적인 안목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원근법은 캔버스라는 2차원 평면에 실재하는 3차원의 현실을 재현하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원근법에 따라 그려진 그림은 진실이나 실재가 아니라 일종의 눈속임인 환영일 뿐입니다. 실재하는 현실처럼 보이는 풍경은 사실 그림 밖에 존재하는 한 명의 절대적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 관찰되고 정돈된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피카소는 그런 세잔을 '베끼는' 대신 '훔쳤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피카소는 이집트의 화가들처럼 영원불변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된 대상을 그린 것일까요? 동일한 표현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똑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원근법적 시선은 세상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이고 고정된 시점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중세인들은 그 자리를 신이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근대인들은 그 위치를 인간이 대신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 시대가 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피카소와 같은 현대의 화가들은 신의 자리를 대체한 인간의 지위를 의문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더 커지고 복잡해진 사회를 신처럼 위에서 조망한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선을 상실한 대신에 그들을 묶어놓았던 신이나 국가와 같은 권위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관점주의(perspectivism)입니다. 화가들은 과거처럼 주어진 세계를 단순히 재현하는 임무에서 해방되어 끊임없이 이동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그를 통해 얻어진 세계의 파편조각들을 조합해서 객관적인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피카소가 세잔에게서 발견해낸 위대함입니다. 세잔은 미술을 세계의 재현이란 임무에서 해방시켜 자기 목적적인 성질을 지닌 활동으로 재정의했습니다. 따라서 피카소의 관점주의는 이집트의 미술과 전혀 다른 시대적 맥락에서 나타난 것이며, 그 의도와 목적 역시 확연히 구분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황금비를 찾으려고 했을까
이집트의 화가들은 확고한 전범에 따라 예술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화가 개인의 개성은 철저히 무시됐고 천편일률적인 작품들만을 생산해냈습니다. 이집트의 영향 하에서 출발한 고대 그리스의 미술 역시 초기에는 이집트 미술의 구태의연함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청년>에 이르러 독자적인 예술 형식을 창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미술에서 관철된 기하학적 규칙성은 그리스적 비례의 원칙으로 재해석되어 '황금비'로 나타났고, 조화와 균형을 자신들의 미적 이상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황금비란 무엇인가요? 긴 부분(a)과 짧은 부분(b) 길이의 비가 전체(a+b)와 긴 부분(a) 길이의 비와 같도록 분할할 때, 짧은 선분 대 긴 선분 길이의 비는 약 1 : 1.618이 됩니다. 바로 이 근사치를 황금비라고 합니다. 이를 수식화하면 황금비는 (a+b) : a = a : b가 되도록 선을 분할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밀로의 비너스는 황금비가 적용된 예술작품일까요? 실제로 측정해 보면 밀로의 비너스는 1:1.555의 비율을 보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파르테논 신전이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황금비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을 측정한 결과 황금비에 딱 들어맞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황금비는 사이비 과학으로, 아름다움의 객관적 근거를 수학적 비율에서 찾으려는 인간의 종교적 믿음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기사,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모나리자의 '황금비'는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황금비를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건 자연과 예술 모두에 적용되는 보편 법칙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결과적으로 과학과 예술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아가 황금비의 문제는 우리를 또 다른 질문으로 인도합니다. 시대를 초월한 불변의 아름다움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름다움은 시대와 개인마다 다르게 존재하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인가?



고딕 성당은 왜 뾰족할까
서양의 중세는 흔히 '암흑 시대'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는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가 이전 시기인 중세를 상대화하고, 자신의 시대를 '빛의 시대'로 특권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사일 뿐입니다. 실제로 천여 년 가량 지속된 서양의 중세는 신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과학 등 많은 분야에서 혁신적 발전이 이루어져 다가오는 근대적 유럽이란 시대의 태동을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선택했습니다. 즉 노트르담 성당은 중세 시대의 건축, 조각, 회화, 스테인드글라스, 금속 세공술 등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이 모여 예술로 승화된 종합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최후의 심판'이 새겨져 있는 노트르담 성당의 정문 앞에 서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엄숙한 표정으로 늘어서 있는 고색창연한 성인들과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들이 자신을 내려다 보는 위압적 모습에 압도되어 옷깃을 잔뜩 여미게 되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입구 저 너머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사뭇 기대와 걱정이 동반되어 가슴이 요동치지는 않을까요?
숨죽이며 들어간 성당 내부에 줄지어 선 높은 돌기둥들은 마치 빼곡히 우뚝 솟은 나무들에 가려 빛조차 새어들어오지 않은 숲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합니다. 너무나 장엄하고 너무나 엄숙해서 옮기는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워 집니다. 그리고 높다란 천정을 뚫고 내려온 빛으로 은은히 빛나는 재단 앞으로 저절로 이끌리게 됩니다. 빨간색과 녹색, 노란색과 청색 들으로 화려하게 배치된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은 마치 신의 손길처럼 포근하게 나의 영혼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제야 비로소 중세인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축조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성당은 지상의 인간들이 하늘의 신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구축된 3D 체험관이었던 것입니다.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높게 건설된 천정,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첨두아치, 깊은 숲을 연상시키는 내부의 주랑들, 화려한 스테인들글라스를 투과해 쏟아지는 빛 모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존재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아름다움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르네상스 시대는 서양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해당합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를 벗어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재발견되면서 자유로운 인문정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로 미켈란젠로, 다빈치 그리고 라파엘로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술을 통해 기독교 정신과 고대 그리스 정신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벽에 그린 웅장한 <최후의 심판>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의 본령은 피렌체 시민들을 위한 제작된 <다비드> 상과 같은 조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평생에 걸쳐 세 차례나 제작한 <피에타> 상은 여전히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줍니다. 그가 스물네 살에 완성한 바티칸 피에타는 축 늘어진 예수의 육체와 성모의 굴곡진 옷주름까지 완벽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젊은 천재 예술가의 패기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일흔다섯에 만든 반디니 피에타에서는 무력하게 무너진 예수의 육체에서 노년의 비애감과 울부짖는 마리아의 몸짓과 표정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절절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죽기 사흘 전까지 작업 한 것으로 알려진 론다니니 피에타는 헐벗고 가느다란 신체들이 겨우 서로를 의지한 채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서로 명확히 구분되던 육체적 경계를 상실한 채 죽은 아들의 몸 속으로 살아 있는 어머니가 침투하고, 산 어미의 몸 속으로 죽은 아들이 흘러드는 형국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화려한 바티칸 피에타가 눈길을 잡아끌 법도 한데 특히 이 세 번째 론다니니 피에타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재 예술가가 죽는 순간까지 찾고자 했던 삶의 진실이 마지막 작품에 응축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한 까닭이겠지요. 그가 반복해서 피에타 상을 제작하며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평생 육신을 감옥이라 여기며 예술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노력했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발견한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삶의 구원은 죽음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 내재한 죽음 속에 죽음에 내재한 삶 속에 이미 놓여 있었다는 것은 혹시 아니었을까요?
'학년별 책읽기 > 중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석근, 수상한 화가들, 사계절(2) (4) | 2025.06.22 |
---|---|
윌리엄 셰익스피어/도해자 번역, 로미오와 줄리엣, 열린책들 (1) | 2025.05.24 |
찰스 디킨스/왕은철 번역, 위대한 유산, 푸른숲주니어 (1) | 2025.05.03 |
허균, 홍길동전 (0) | 2025.04.20 |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사피엔스21 (0) | 202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