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우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친구 간의 상호 선의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는 삶이 어떻게 살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마음껏 꺼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면 그런 인생만큼 비참한 삶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누리는 영광을 함께 기뻐해줄 누군가가 없다면 그 행복은 곧 빛을 바랄 것이며, 내가 겪는 고통을 더 괴로워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그 불운은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될 것입니다.(키케로/천병희 번역,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도서출판 숲) 그래서 키케로는 우정을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리아 칭송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생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 우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서로의 출신이나 성장 배경, 성격이나 취향마저 다른 두 영혼은 어떻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되는 것일까요? 비밀에 싸인 우정의 발생 조건을 탐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양극단에 위치한 두 영혼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놓고 그들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무라 유이치는 <폭풍우 치는 밤에>에서 염소 메이와 늑대 가부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조그만 오둑막으로 초대했습니다. 메이와 가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키웠습니다. 어둠은 편견과 증오로 가려진 영혼의 눈을 뜨게 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러셀 에릭슨 역시 두꺼비 워턴을 올빼미 조지의 좁은 집으로 몰아넣고 함께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곤 따뜻한 차 한 잔과 유쾌한 대화만 있다면 천적관계에 있는 두 동물들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유이치나 에릭슨 모두 대화를 우정의 조건으로 보고 있는 셈입니다. 진솔한 대화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와 친밀감을 형성해야 비로소 우정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바람이 아니라 태양이다
올빼미 조지는 "난 친구 따윈 필요 없어."라고 말할 만큼 철저하게 폐쇄적이고 고립된 존재였습니다. 다른 올빼미들이 모두 잠자는 낮에 홀로 사냥을 했기에 올빼미 친구들을 사귈 수도 없었고 낮의 동물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방문한 적이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집을 신경써서 가꾸거나 청결하게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줄 존재는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은 그를 유달리 자기애가 넘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덕에 두꺼비 워턴은 한겨울에 맛보기 힘든 별미로 곧바로 잡혀먹지 않고 조지의 생일인 다음 주 화요일까지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조지를 변화시킨 건 워턴의 다정다감하고 바지런한 성격입니다. 조지는 형 모턴이 만든 딱정벌레 과자를 굳이 한겨울의 추위를 뚫고 툴리아 고모에게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가 큰 봉변을 당할 만큼 정이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성격 탓에 잠결에 굴러 떨어져 눈에 처박힌 사슴쥐를 구해줘서 다른 사슴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극도로 낙관적인 워턴은 조지에게 사냥되어 그의 집에 감금된 후에도 희망을 전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곧 맞딱뜨리게 될 비극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우렁각시처럼 조지의 지저분한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조지와 촛불을 켜놓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일찍 돌아오는 조지를 보며 워턴은 '어쩌면 조지가 날 잡아먹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결코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워턴의 가방에서 스웨터 실로 만든 줄사다리를 발견한 조지는 그것을 휘몰아치는 바람 속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하필 조지의 생일 전날 밤이었던 이날 그들은 매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이 들어야 했습니다.
사슴쥐들의 도움으로 올빼미의 감옥을 탈출하는 순간에도 워턴은 사나운 여우한테 붙잡혀 몸부림치는 조지를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워턴은 사슴쥐들과 힘을 합쳐 조지를 구해냈습니다. 사실 조지는 워턴이 스치듯 언급했던 노간주나무 열매를 구하려 갔다가 여우에게 붙잡혔던 것이었습니다. 이미 조지는 마음속으로 워턴을 친구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지는 워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친구를 사귄다면 바로 너 같은 친구였으면 좋겠어."
이솝 우화에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매서운 북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었듯 외톨이 조지의 얼어붙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한 것은 마지막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았던 워턴의 지극한 온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과 애정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진정한 우정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사물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직조하는가
에릭슨의 <화요일의 두꺼비>는 기무라 유이치의 <폭풍우 치는 밤에>와 동일한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 이 두 동화는 차이가 있습니다. 유이치의 동화는 염소와 늑대가 서로의 존재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개되는 대화를 통해 독자에게 심리적 긴장감와 유머를 유발합니다. 독자들은 책을 덮은 후에도 서로를 동족이라 착각한 두 동물들이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궁금해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반면 에릭슨의 동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사물들입니다. 모턴이 만든 맛있는 딱정벌레 과자는 오지랖 넓은 워턴을 자극해서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떠나도록 합니다. 사슴쥐를 도와주고 받은 목도리는 워턴이 사슴쥐의 친척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겹을 껴입은 스웨터는 올빼미 조지의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줄사다리를 만들 때 사용되지만, 이 사다리 때문에 워턴과 조지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함께 마셨던 따뜻한 차로 인해 워턴과 조지는 친해지게 되는데, 이 차는 사교적이고 온화한 워턴의 성품이 투사된 매개체입니다. 워턴이 스치듯 언급했던 노간주나무 열매를 기억했던 조지는 우정의 징표로 워턴에게 선물하기 위해 열매를 구하러 갔다가 여우를 만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조지가 탁자 위에 써 놓은 쪽지를 보지 못한 워턴은 조지를 오해하고 탈출을 결행하게 됩니다. 이처럼 에릭슨의 동화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등장인물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한편, 그들이 처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그들을 추동하는 능동적 행위자처럼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책 읽기는 서로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읽거나, 책 안에 있는 다른 요소들을 중심으로 다시 읽게 되면, 우리가 처음 읽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문장과 단어가 눈에 들어 오고, 무심코 지나쳤던 의미가 새삼스레 다가올 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과 전율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매번 낯선 시선으로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모든 독서는 한 번의 읽기로 결코 종결될 수 없는,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매번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는, 무한한 읽기의 과정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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