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6학년

후루타 다루히/윤정주 번역, 숙제 주식회사, 우리교육

ddolappa72 2025. 4. 5. 17:48

 
아이들은 왜 숙제 주식회사를 만들었을까?

다케시네 집에 모여 숙제를 하던 아이들은 이웃집 데루 형이 천만 엔을 받고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미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언니가 한 달에 2만5천 엔을 받는다며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냐며 한숨을 쉽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 말에 동조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2천 5천 엔을 받고 야구만 하고 천만 엔을 번다면 공부하는 게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다케시가 친구들에게 10엔만 내면 숙제를 대신 해 주는 회사를 제안하고 친구들과 함께 '숙제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1966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이 책은 무려 50여년 전에 쓰여졌지만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그 당시 일본의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치열한 입시경쟁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치루는 시험만 조금 줄었을 뿐 각종 학원이 늘어나면서 그때보다 오히려 해야 할 공부와 숙제의 양은 더 늘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상황을 문제 삼으며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며, 또 공부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묻고 있습니다.

'숙제 주식회사'를 세운 아이들처럼 공부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프로야구 선수가 된 데루처럼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큰 돈을 버는 경우를 목격하게 되면서 이 주장은 힘을 잃고 맙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미래에 돈벌이가 되지 못한다면 굳이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부에 소질이 없는 요시다처럼 '공부보다 주산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집이 가난한 요시다는 뛰어난 주산 실력으로 전기회사에 취직한 아키코네 큰오빠를 모델로 삼고 주산 공부에 매진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회사에 전자계산기가 들어오며 주산을 잘해서 월급 계산을 도맡았던 아키코네 큰오빠가 해고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공부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사부로는 공부는 저축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열심히 모아 두면 나중에 편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옥과 같은 공부를 취직할 때까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사부로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취직해도 해고를 당하면 어쩌지? 결국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또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했던 사부로는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진짜 공부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처럼 이 소설은 아이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숙제에서 출발해 공부에 대한 여러 갈래의 생각들을 펼쳐놓고 있습니다. 공부를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우리의 교육 풍토에서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의사라는 직업이 과연 앞으로 50년 후에도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으로 남아 있을까요? 특정 분야에 사회적 인재가 쏠리는 현상이 과연 우리 사회 전체에 바람직한 것일까요?
 



꽃 닌자 사헤이는 왜 죽어야 했나

니노미야 긴지로는 산에서 나무 땔감을 지고 다니면서도 책을 읽은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교문 옆에 동상이 세워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산노미야 선생님은 그런 긴지로를 싫어한다고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합니다. 그는 단순히 출세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했을 뿐 세상을 위해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 세상에 이름을 알리거나, 많은 돈을 벌어 편안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할 수는 있지만,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엶심히 공부를 해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과연 공동체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육 시스템이 현재 길러내고 있는 인재상이 긴지로와 완전히 다르다고 과연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꽃 닌자 사헤이에 관한 것입니다. 기리와쿠 마을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곳에 있어 농사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첩자 노릇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했고,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첩자의 기본을 익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사헤이는 닌자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꽃을 더 좋아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르고 어머니가 달래도 사헤이는 닌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마을 아이들은 10살이 되면 닌자가 되는 시험을 무조건 치뤄야 했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죽어야 했습니다. 부모가 영주를 찾아가 사헤이는 시험을 면제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도 영주는 마을의 규칙이라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결국 사헤이는 닌자가 되는 시험을 치르던 중 발을 잘못 디뎌 계곡에 떨어져 죽고 맙니다. 

사헤이는 반드시 닌자가 되어야 했을까요? 사헤이는 왜 꽃을 키우며 살 수는 없었을까요? 오늘날에는 사헤이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획일화된 시험이 확실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에리히 캐스트너는 <에밀과 탐정들>에서 '광속보다 빠른 비행기가 나와도 사계절과 숙제는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과 연결된 공부를 꿈꾸며

작가 후루타 다루히는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교육은 야만과 다르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동시에 그는 인간에게는 야만을 극복하려는 힘이 있으며,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미래는 지금의 연속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공부란 무엇일까요?

"공부는 그냥 학교 공부만이 아니다. 회사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는 단순히 시험을 잘 치기 위한 공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학교 밖 세상과 다양한 연결을 매개하는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는 교육이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고, 그에 따라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에서 귀 기우릴 만한 가치가 있는 충고라 생각됩니다. 

아이들을 기존 지식의 수동적 수용자로 고착시키는 현재의 교육 방식에서 탈피해서 아이들 스스로 능동적인 지식 생산자로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세상과 다양한 연결망을 구축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학교에서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제공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선생님이 묻고 아이들이 답하는 수업 모델이 아니라 창조적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목적인 수업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하나의 정답을 찾는데서 벗어나 다양한 해답을 찾기 위한 도전과 모색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