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3학년

앤 파인/윤재정 번역, 삐뚤빼뚤 쓰는 법, 논장

ddolappa72 2025. 4. 5. 11:34

 

'삐딱이'와 '열등생'의 기묘한 우정

제목만 보면 이 책은 아이들한테 '삐뚤빼뚤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상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지렁이 글씨의 일인자' 조 가드너가 등장합니다. 어떤 글자도 두 번 다시 똑같이 쓰는 법이 없는 조는 지독한 악필에 수학이나 체육에도 젬병인 열등생입니다. 선생님조차 포기한 듯한 조에게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서 전학온 '삐딱이' 친구 체스터 하워드가 나타납니다. 엄마의 직장 때문에 "세서미스트리트를 보는 것보다 더 자주 학교를 옮겨" 다녀야했던 체스터는 무엇이든 삐딱하고 시니컬한 태도로 대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서로 상극일 것만 같은 그 둘이 짝꿍이 되면서 서로의 장점을 이끌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충분히 예측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를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게 만드는 힘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체스터 하워드의 캐릭터 때문입니다. 시종일관 냉소적이고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비꼬는 말투로 무심코 내뱉는 말들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영국에서 다니게 된 월버틀 매너 초등학교를 처음 보았을 때 체스터는 "전학 온 학교 빨리 싫어하기 신기록이라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의 눈에 학교 건물은 "영안실이나 도살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잠시 짬을 내서 설계한 듯"했고, 교실 곳곳에 걸린 그림은 "돼지가 침을 질질 흘려 놓은 것처럼" 볼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쌀쌀맞고 매정할 것 같은 말투와 달리 체스터는 속이 깊고 상냥한 내면을 가진 '츤데레' 유형의 인물입니다. 그는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조를 무시하지도 않고, '깊고 어두운 구덩이 같은 조의 책상'을 정리해줄 만큼 친절합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조의 재능을 간파해 냅니다. 사실 조는 마카로니로 삼 미터짜리 에펠 탑 모형을 만들 만큼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학이나 철자법 등 정해진 수업 과목으로만 평가할 때 조는 영원한 낙재생에 불과할 뿐입니다.

체스터는 '열등생'이라는 낙인이 찍힌 조를 역설적인 방법으로 구해냅니다. 조의 엉망진창인 글쓰기를 나무라는 대신 오히려 그만이 '삐뚤빼뚤 쓰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용기를 북돋습니다. 소위 '우등생'만 받는 상장을 조작해 모형 만들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조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조를 도우며 체스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반에서 도움을 가장 많이 준 학생 상'을 받게 됩니다.

 

정조가 원손시절 외숙모에게 보낸 편지



왜 체스터는 조를 도왔을까?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왜 체스터는 조를 도와주었는지 질문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조가 불쌍해서라고 답합니다. 조가 왜 불쌍한지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조가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게 없어서 불쌍하다고 답합니다. 저도 학생들한테 지지 않고 다시 묻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게 불쌍한 일이야? 그리고 조는 모형 만들기를 잘하잖아!

이미 어린 학생들조차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불쌍한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런 동정심을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업에서 요구하는 대답하기 때문에 앵무새처럼 '불쌍하다'고 말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그런 편견을 심어 놓은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학생들 개개인의 장단점을 살펴 교육하는 대신 획일화된 교과목의 성취도에 따라 점수로 평가하는 학교나, 아이들의 적성과 상관없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명목으로 무작정 이름난 학원에 등록시키는 부모님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요?

아이들에게 책을 잘 들여다 보라고 말합니다. 체스터가 조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도와준다고 말한 장면이 있는지 다시 살펴 보라고 합니다. 체스터는 새로 전학온 학교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조에게 친절을 되돌려 주었을 뿐입니다. 함께 '나만의 비법 노트' 쓰기 과제를 잘 하기 위해 짝꿍을 잘 관찰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조를 편견없이 관찰하고, 그가 가진 재능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체스터는 조와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았을 뿐입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공부는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나아가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고 힘내라 용기를 주면서 함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체스터는 어휘력이 약한 조를 돕기 위해 아빠에게 사전 찾는 법을 배웁니다. 친구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신도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친구들이 질문을 하면 친절하게 지식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하면 좋겠지요. 하지만 조처럼 한 가지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것저것을 조금씩 잘하는 것보다 오히려 확실한 자기만의 독보적 영역을 가진 아이가 앞으로 더 빛을 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보이는 부족한 모습으로 그 아이의 미래를 미리 재단하고 판단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서 아이들 각자가 지닌 재능과 개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종일 마음껏 네가 잘하는 것을 하렴!

프랑스의 작가 다니엘 페낙은 26년간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까보 까보슈>나 <늑대의 눈>처럼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훌륭한 작품들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년 시절 알파벳 'a'를 익히는데 1년이 걸렸을 만큼 지독한 열등생이었습니다. 반에선 꼴찌가 아니면 꼴찌의 바로 앞에 있었고, 공책엔 항상 선생님들의 꾸지람이 적혀 있기 일쑤였습니다. 학창시절 페낙은 '해야 할 일을 결코 해내지 못하는 수치심과 혼자만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책 없는 열등생에다 집안의 금고까지 턴 못말리는 문제아였던 페낙에게 학교는 즐거움이 아니라 슬픔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가 느낀 슬픔은 배움을 가로막는 벽이 되어 그를 더 깊은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다니엘 페나크/윤정임 번역, 학교의 슬픔, 문학동네)

그런 페낙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할 거 없어. 어쨌거나 26년 뒤면 알파벳은 완벽하게 알게 되겠지." "너는 늦게 꽃 히는 것 뿐이야."라고 격려해주던 친구. 무엇보다 그가 '슬픔의 학교'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열정적이고 호의적인 선생님들 덕택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내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잊게 하는 데는 단 한 분의 선생님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조개'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 살던 아이를 변화시킨 것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열등생 조는 체스터의 뜨거운 관심과 열정 덕택에 조금씩 변화합니다. 삐뚤빼뚤 하던 글씨도 조금씩 나아지고, 공부에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합니다. 그런 조를 격려하기 위해 체스터는 준비된 상장을 조작해서 그가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학교에서 정해진 글짓기상, 암기상, 수학왕상 등을 조가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었지만 학교 성적에 따라 상을 주는 것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많은 학생들이 상은 공부를 잘해서 받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상을 주는 이유가 학업 성취에 대한 인정에 있다면 굳이 그런 상을 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 학생들은 이미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사실 상을 수여하는 본래의 목적은 그간 열심히 해왔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의도가 더 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상을 받아야 할 대상은 우등생이 아니라 조와 같은 열등생이 아닐까요? 학교 성적에 따라 상을 주지 말고 각자가 가진 재능에 따라 다양한 상을 주는 것이 오히려 교육의 목적에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요?

체스터는 조를 위해 마련한 노트에 이렇게 적어 놓습니다. "온종일 마음껏 네가 잘하는 것을 하렴!" 아이들 각자가 잘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더 이상 '슬픈 학교'도 없고 단 한 명의 열등생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각자의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