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3학년

노양근, 날아다니는 사람

ddolappa72 2025. 4. 12. 23:53
(실린곳 : 강소천 외, 꿈을 찍는 사진관, 상서각)

 
일제 시대 아이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날아다니는 사람'은 작가 노양근이 1936년에 발표한 동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에 쓰여진 동화라고 하면 아이들이 깜짝 놀랍니다. 오래 전에 사용된 한국어로 쓴 책을 자신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비슷하다는 점에 신기해 합니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 한국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으면 6.25 전쟁 중이었다고 대답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일제강점기였다고 정확히 대답하는 아이들도 항상 나타납니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 치하에 살았던 아이들은 어떤 장래희망을 꿈꾸었을까요? 동화에서 교장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이 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도지사, 교장 선생님, 경찰, 군수, 비행사, 은행원, 자동차 운전수, 문학가, 음악가 등' 마음 속에 간직한 다양한 희망을 말합니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이색적인 직업도 눈에 띄지만 궁핍한 시대에도 어린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소중한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 동화가 현재의 어린이들과 접속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동화는 '대장장이'가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 명구를 내세워 꿈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명구는 왜 대장장이가 되고 싶었을까

명구의 불룩한 두 호주머니 속에는 없는 게 없습니다. 철사, 못, 고무줄, 실, 노끈, 납덩어리 등등 남들의 눈에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것들을 명구는 마치 '소중한 보화'처럼 여기고 차곡히 쟁여놓았습니다. 만들기를 좋아하고 물레방아의 구조에 관심이 많은 명구는 사실 발명가가 꿈입니다. 손재주가 좋은 명구를 제일 아끼는 공예 선생님은 그가 '한국의 에디슨'이 될 거라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명구는 발명가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요?

명구는 꿈속에서 동네 앞에 놓인 높다란 남산을 "막 기어 올라가고 밭이나 들, 그리고 길 없는 데도 막 뛰어다니는 자동차"인 말자동차를 발명합니다. 명구에게 발명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산처럼 높은 장애를 뛰어넘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꿈에서 등장한 수직적 장애물은 현실에서 건너가야 할 수평적 장벽으로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장마철만 되면 물이 불어 며칠씩 학교를 쉬어야만 했던 명구는 '저 냇물을 그냥 건너뛰는 재주는 없을까?'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비행기라면 사족을 못 쓸 만큼 좋아하던 명구는 이따금 서울에서 함흥으로 오가는 비행기를 보며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씩 비행기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한 명구는 풍선을 이용해 '날아다니는 사람'을 만듭니다.  또한 명구는 집이 가난해서 죽으로 끼니를 떼우는 금순의 딱한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금순을 위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쌀'을 발명하기로 결심합니다.
 

1934년 과학데이 포스터. ‘과학의 승리자는 모든 것의 승리자다’ ‘한 개의 시험관은 전 세계를 뒤집는다’는 구호가 적혔다.



이 동화가 탄생한 1930년대는 '발명의 시대'였습니다. 식민지 시대 과학대중화 운동의 선구자였던 김용관(1897~1967)은 1924년 발명학회 창립을 주도했고, 1933년 우리나라 최초 과학 대중지인 '과학조선' 창간과 과학지식보급회 설립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1935년 4월19일 과학데이를 맞아 자동차 54대를 동원해 화려한 카퍼레이드를 펼쳤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행렬은 소년군악대를 앞세워 김억이 작사하고 홍난파가 작곡한 ‘과학의 노래’를 부르며 시내를 일주했습니다. ‘새 못되야 저하늘 날지못노라/그옛날에 우리는 탄식했으나/프로페라 요란히 도는 오늘날/우리들은 맘대로 하늘을 나네/(후렴)과학 과학 네 힘의 높고 큼이여/간데마다 진리를 캐고야마네’(1절) 

나라를 뺏긴 이유가 서구의 과학기술에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앞다투어 과학 지식의 대중화 운동에 힘써 왔고, 그 노력의 결실이 1930대에 이르러 뚜렷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기사, [모던 경성]‘과학조선’의 개척자들②‘시험관 한개가 세계를 뒤집는다’)

당시 신문들은 ‘조선의 장래 에디슨, 24세의 손창식군’(조선일보 1930년 4월8일) ‘평양 송찬용군, 수상스키 발명’(조선일보 1932년11월30일) ‘전통적 광휘잇는 발명조선의 천재’(조선일보 1933년1월9일)처럼 발명가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연달아 싣고, 발명을 권장하는 사설까지 내보내며 발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했습니다.(기사, [모던 경성]‘과학조선’의 개척자들③유기장수 차남에서 ‘과학조선’ 선구자로)

명구라는 인물은 바로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탄생한 것입니다. 명구가 발명했던 '말자동차'와 '날아다니는 사람'은 '과학데이'에 거리에 가득찼던 자동차들과 '과학의 노래' 속 비행기가 반영된 것입니다. 명구가 발명을 통해 현실의 결핍과 장벽을 뛰어넘으려 시도한 것도 과학 기술을 통해 식민지 현실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당대 사람들의 열망이 투사된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로서 동화

이 동화에는 일제 시대 학생들이 살아가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학교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또 어떤 점에서 다른지 찾아보도록 합니다. 우선 아이들은 명구가 다녔던 학교가 '초등학교'가 아니라 '보통학교'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아이들이 현재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라는 명칭은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에 일제 시대의 잔재인 '국민학교'를 청산하고자 개정된 명칭입니다. 대한제국에서는 소학교라 불렀고, 일제 조선총독부가 생긴 뒤엔 소학교와 보통학교 등으로 불리다가 1941년부터 일제는 국민학교라고 부를 것을 명했습니다. '국민'이란 명칭은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신하가 된 백성이란 뜻이 담긴 황국신민 사상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입니다.(기사, 국민→초등학교..21년 전 3·1절, 학교가 독립하다) 학교의 이름에도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명구가 책가방 대신 책보따리를 들고 다녔다는 것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당시만 해도 가방은 보편적이지 않았고 책들을 보자기에 싸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글 운동의 선구자인 주시경 선생님도 언제나 교재들을 보자기에 넣고 학교를 두루 다니셨기 때문에 '주보따리'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놀라워 한 것은 명구와 친구들이 10리나 떨어진 학교를 걸어서 다녔다는 사실입니다. 10리는 약 4km로 어른이 평균적인 걸음으로 1시간 가량 걸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명구는 어리니까 아마도 학교를 가는데 1시간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거라 말해주면 다들 깜짝 놀라며 자신들은 학교를 못 다녔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등교하기 위해 언덕도 넘고 개울도 건너야 했을 거라 설명하면 다들 심각한 표정이 됩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동화 읽기를 통해 과거의 어린이들과 대화를 해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에 굴복하지 않고 소중한 꿈을 간직했던 것처럼 자신들도 미래를 향해 꿋꿋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