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는 여전히 기억될까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구름 위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어디선가 들어봤을 유행어입니다. '수한무'는 수명이 끝이 없다는 뜻입니다. '거북이와 두루미'는 십장생(十長生)의 일원으로 불로장생을 뜻합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은 한무제 때 사람으로 삼천갑자(三千甲子) 즉 18만 년을 살았다는 전설 속 인물입니다.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고 설정된 가상의 인물이고, '워리워리 세르리깡'은 그가 복용했다는 약초입니다. '무두셀라'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고 알려진 인물로 무려 969세까지 장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구름, 허리케인, 담벼락, 서생원, 고양이' 등은 '쥐의 사위 삼기' 설화에 나오는 강력한 사위 후보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돌돌이'는 그 동네에서 제일 힘센 개의 이름입니다.(나무의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항목 참조) 한 마디로 이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장수에 대한 강렬한 희원을 담고 있습니다.
오래 전 유행한 코미디 콩트를 각색한 이 동화에서는 '삼천갑자 동방삭'까지만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이 유행어가 수 십 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로 이어지는 유행어는 서로 다른 사물들 간의 유사성에 의해 연결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숭이에서 출발해서 백두산이라는 의외의 단어로 끝맺음되는데서 묘한 즐거움을 줍니다. 이와 달리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는 '장수'라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관련 어휘들이 모여있는 형태입니다.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처럼 거짓으로 꾸며낸 이름이나 '돌돌이' 같은 개 이름조차 귀한 아들의 이름 속에 어거지로 끼워 넣었다는 게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유발합니다. 두 유행어 모두 독특한 운율에 따라 발화된다는 사실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기억되기 위해서는 특이한 리듬 위에 가사가 얹혀야만 합니다.
서사적 내용 역시 한국인의 오랜 남아선호 사상을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부자 영감님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자식을 환갑이 되던 해에 겨우 얻었으니 아들 사랑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장수와 관련된 온갖 단어들을 덧붙이다 보니 저런 우스꽝스런 이름이 탄생하게 된 것 입니다. 하지만 사랑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하던가요. 부자 영감이 귀한 아들의 이름을 줄여서 불러도 안 되고 대충 불러도 안 된다고 고집할수록 아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묘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유행어가 시대를 뛰어넘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까닭은 기억하기 쉬운 운율에 담긴 유머러스한 가사와, 부모의 과도한 욕심을 풍자하며 지나친 자식 사랑을 경계하는 지혜를 담은 스토리가 여전히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도한 자식 사랑이 오히려 자식을 망친다는 주제는 오늘날 여전히 음미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좋은 이름이란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힐 때 크게 신경 써야 할 점은 왜 영감이 아들에게 그토록 긴 이름을 지어주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구성하는 각각의 단어들이 뜻하는 바를 이해해야 이름 전체가 '장수'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수업을 진행해 보면 아이들은 거북이와 두루미의 실제 수명이나 '삼천갑자'에 담긴 의미를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그린란드 상어나 대양백합조개처럼 오래 사는 동물들을 알아보기도 했고, '삼천갑자'가 3,000 곱하기 60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부자 영감이 아들의 긴 이름을 글자 하나 빼놓지 않고 부르게 한 행동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해당 장면을 연극 대본으로 만들어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표현해 보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긴 이름을 대사로 읊어보면서 숨이 찰 정도로 발음하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길게 지은 것이나 긴 이름을 그대로 발음하도록 고집한 것은 부자 영감의 욕심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아이들과 좋은 이름이란 어떤 이름일지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르기 쉽고 의미와 느낌이 좋으면 좋은 이름이라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자신의 이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설명해 보라고 했을 때 제대로 할 줄 아는 아이가 드물었습니다. 대부분 한자어로 지어진 이름인데 아이들이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게다가 아이들의 이름이 대개 비슷비슷해진 것도 최근의 특징입니다. 왜 굳이 아이들도 모르는 한자어를 사용해 이름을 짓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 이름이란 각 개인을 구분짓는 특별한 개성과 특성이 묻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몰개성적인 이름은 아이들의 이름마저 유행을 쫓는 추세를 반영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어려운 한자어 대신 발음하기 쉽고 아름다운 뜻을 담은 순우리말로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게 유행이 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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