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학생들이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은 어땠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낯선 것들, 자신이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경험을 공유하며 아이와의 관계가 돈독해질 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그 아이를 지도해야 할 지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한 학생이 해외로 여행을 다녀와서는 별들이 가득한 밤 하늘 사진을 보여 줍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선명한 별빛들로 가득한 밤 하늘이 퍽이나 아름답습니다. 아이도 그렇게 느꼈는지 멋진 풍경을 보고 문득 시를 쓰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시를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가) 별
까만 밤하늘
별사탕들이 모이는
넓은 쉼터
큰곰, 작은곰,
물고기, 양, 전갈, 게
모여모여 반짝반짝
별사탕들이
회의할 때 생기는
은하수
회의 늦은
별사탕이 넘어져
별똥별이 되네.
(2학년 학생의 시 '별' 전문)
이 아이한테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별사탕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 별사탕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큰곰자리나 작은곰자리 같은 별자리들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눈에 별들이 빛나는 밤은 물고기, 양, 전갈, 게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모여 회의를 여는 공간이 됩니다. 그런데 약속에 항상 늦는 친구가 꼭 있기 마련입니다. 회의에 늦어 성급하게 달려오던 별사탕은 넘어지는 바람에 별똥별이 되고 맙니다. 아무런 규칙도 질서도 없이 흩어져 있는 별들 사이에서 이 아이는 다양한 형상들을 찾아내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태초에 자신 앞에 펼쳐진 웅장한 자연을 노래했던 인간도 그러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놀라움을 통해서 우리는 철학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비단 철학뿐만 아니라 시나 과학 등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시작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그 놀라운 순간들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경이로운 순간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순간 아이는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세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예쁜 조가비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던 아이
(나) 선물
바다가
"심심해."하고 나에게
잔잔한 물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저벅, 저벅 모래 위에
내 발자국 친구들을
만들어 주었다.
바다가
"고마워!"라고 내게
힘찬 파도 소리로 말했다.
(4학년 학생의 시 '선물' 전문)
이 아이는 여행을 떠난 바닷가를 걷다가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모래 사장을 거닐다가 문득 바다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시는 이처럼 자연이 우리에게 건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시작됩니다. 아이는 홀로 바닷가에 남겨지자 비로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자연의 나지막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아이는 발자국 친구들을 남겨두어 바다가 외롭지 않게 해줍니다. 바다를 친구로 받아들인 아이는 자신의 발자국을 선물로 되갚아 줍니다. 자신은 이미 바다로부터 자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이 선물입니다. 자연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아이는 자연에게 선물을 되돌려 줍니다. 그리고 자연과 교감을 나누었던 순간은 아름다운 시로 남았습니다.
죽기 바로 전 뉴턴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에겐 어떻게 보였을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로 보였을 뿐이다. 인간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드넓은 진리의 바다, 그 앞에서 이따금씩 여느 것보다 더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가비를 발견하고는 즐거워하는 아이였을 뿐이다”
뉴턴이 걸었던 그 바닷가를 이 시를 쓴 아이 또한 걸었던 것입니다. 자연이 걸어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의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위로해주려 했던 그 곱고 선한 심성을 오래도록 잘 간직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먼 훗날 자신이 발견한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예쁜 조가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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