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샤는 왜 지식의 달콤함을 느낄 수 없었을까
트리샤는 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인 엄마는 밤마다 트리샤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늘 벽난로 옆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트리샤가 일곱 살이 되던 날에는 온가족이 모여 특별한 의식도 치뤘습니다. 할아버지는 꿀 한 국자를 퍼서 책 표지 위에 골고루 끼얹은 뒤 트리샤에게 찍어 먹도록 했습니다. 그리곤 식구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다, 지식의 맛은 달콤하단다. 하지만 지식은 그 꿀을 만드는 벌과 같은 거야. 너도 이 책장을 넘기면서 지식을 쫓아가야 할 거야!"
그러나 큰 기대를 안고 시작된 트리샤의 학교 생활은 악몽과 다름없었습니다. 트리샤에게 글자를 이해할 수 없는 암호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트리샤는 들으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글자는 읽기도 쓰기도 어려웠습니다. 트리샤는 난독증이었던 것입니다. 트리샤는 점차 자신이 벙어리가 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수학은 읽기보다 더 끔직했습니다. 더하기를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짓궂은 아이들은 트리샤를 놀려댔고 트리샤 역시 스스로를 바보라고 놀렸습니다. 트리샤는 점점 더 학교 가기가 싫었고, 끔찍했고, 지긋지긋했습니다. 과연 트리샤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뇌는 책을 읽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세계적 인지신경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그의 대표적 <프루스트와 오징어>에서 인간의 뇌가 선천적으로 독서를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4만 년 전 문맹 인간의 뇌와 오늘날 우리의 뇌는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문자가 발명된 후 뇌가 이 새로운 발명품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의 회로와 경로를 새롭게 변형시키며 '책 읽는 뇌'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뇌 안에는 독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독서 중추'같은 것은 없으므로 난독증을 단순히 독서 중추에 결함이 생겨서 나타난 질병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난독증의 원인을 찾아 내기 위해서는 독서 회로를 만드는 데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하고 작용하는 뇌의 복합적 구성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매리언 울프/이희수 번역, 프루스트와 오징어, 어크로스)
다시 말해 난독증은 뇌 조직상 독서에 적합한 회로와 연결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동이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예술이나 건축 등 다른 분야에도 미숙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독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좌뇌 대신 우뇌 사용이 더욱 활발해져서 우수한 창의력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가능하게 해서 독서 이외의 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에디슨, 다 빈치, 아인슈타인 등은 인류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다들 난독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난독증을 고치려다 난독증을 겪는 아이들이 지닌 나름의 독특한 잠재력을 헛되이 낭비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동화 속 주인공 트리샤도 책이나 숫자는 읽을 수 없지만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트리샤를 학습 부진아나 저능아로 여기고 무시했을 그 재능을 폴커 선생님은 주의깊게 관찰해서 발견해내고 칭찬했습니다. "아주 훌륭해. 넌 네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니?"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트리샤를 바라보던 친구들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더 나아가 선생님은 트리샤의 재능이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정확히 짚어 냈습니다. "하지만 트리샤, 넌 이걸 보르고 있구나. 너는 숫자나 글자를 다른 사람하고는 다르게 보고 있어."
그러나 난독증을 겪는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것도 아니며, 트리샤처럼 운 좋게 폴커 선생님과 같은 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책을 그토록 사랑하는 가정도 트리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었고, 트리샤가 폴커 선생님을 만난 것은 학교에 들어간 지 무려 5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트리샤가 독서 장애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좌절감과 절망감을 생각해 본다면 난독증은 조기에 발견해서 극복되어야 할 과제임에 분명합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실 이 책은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어린 소녀가 겪어야 하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의 행복과 즐거움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온갖 기호와 문자로 뒤덮인 세상에서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은 트리샤가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숨어들었던 '좁고 컴컴하고 숨막히는 공간'에서 사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폴커 선생님은 어두운 동굴 속에 웅크리고 앉은 트리샤를 '햇살이 환히 비치는 탁 트인 넓은 공간'으로 인도했다는 점에서 트리샤에게 영웅이자 은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리샤가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공로를 전적으로 폴커 선생님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물론 폴커 선생님이 이전의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트리샤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 그녀의 난독증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한 공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가 독서 지도 담당 선생님인 플래시 선생님과 공조해서 난독증을 극복해 나갔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곤란합니다. 난독증 치료는 단순히 열정이나 관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프로세스가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문자소와 음소 간의 대응 규칙을 자동적으로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폴커 선생님은 트리샤에게 'ㄱ'이 '기역'으로 발음된다는 사실부터 훈련시켰습니다. 그 다음 특정 단어가 특정 의미와 연결되고, 특정 단어들은 특정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연습시켰습니다. 이처럼 책을 유창하게 읽기 위해서는 음운론적, 형태론적, 통사론적 지식을 뇌 속에 저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난독증 극복은 이런 전문적 지식을 습득한 사람에 의해서 체계적 프로세스를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폴커 선생님 이전의 다른 선생님들이나 가족 구성원들이 도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트리샤의 사례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독서를 지도하는 데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반드시 소리를 내어 책을 읽도록 해야 합니다. 소리내어 읽기는 문자를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게 함으로써 여러 감각을 동원하게 되고 읽는 순간의 집중력을 높여 줍니다. 만일 읽기가 유창하게 되지 않을 경우 그 원인을 세심하게 살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학과목을 지도 선생님들 외에 별도로 독서 지도 담당 선생님을 학교에 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국어 담당 선생님이 독서 지도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와 별도로 독서 지도 전담 교사를 마련해 체계적인 독서 지도는 물론 담임 선생님과 협조해서 학습 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과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책 읽기 습관이 올바로 형성되어 있지 않거나 제대로 책을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난독증으로 인해 초등학생 시절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트리샤는 훗날 세계적인 아동 문학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즉 이 책은 작가 패트리샤 폴락코의 개인적 경험을 고백한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만약 트리샤가 5학년 때 폴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소수의 학생들에 집중하는 우리의 교육 환경에서 트리샤는 아마 열등생이나 저능아로 낙인 찍혀 지옥과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을 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내면화된 절망감과 패배의식은 평생토록 그녀를 주눅들게 만들고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 대신에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폴커 선생님 덕택에 그녀는 독서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고,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성적에 따라 등수를 메기고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낙인 찍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 각자가 지닌 남다른 재능을 키워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최대한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희망을 줄 수 있는 교육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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