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로 쓴 동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로 유명한 시인 백석(1912~1996)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시'를 남겼습니다. '동화'와 '시'가 결합된 '동화시'는 러시아 아동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러시아 시인 사무일 마르샤크(1887~1964)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석은 1955년 마르샤크의 <동화시집>을 번역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957년 백석은 창작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출간했는데, 이곳에 실린 작품들은 마르샤크의 작품과 많은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태어와 의성어의 쓰임, 각운과 압운의 적절한 사용, 반복과 병렬의 구조 등이 그렇습니다.(기사, 60년만에 처음 만나는 백석 시의 고향)
아이들에게 실제로 작품을 읽혀 보면 독특한 시적 장치들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 하나 살았네.
(나)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봇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도랑으로 가 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네'로 끝나는 각운은 독특한 리듬감을 형성하고, '덥적덥적', '뉭큼', '엉엉' 같은 의태어나 의성어의 사용은 읽는 재미를 줍니다. 여기에 시조에서 차용한 듯 보이는 3,4조의 음보 역시 읽는 맛을 실어 줍니다. 아이들에게 이 동화를 소리 내어 읽게 할 때 반드시 이런 형식적 요소를 주의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덥적덥적'이나 '뉭큼'과 같은 의태어를 실제로 몸으로 표현해 보게 하는 활동을 해서 단어가 지닌 늬앙스를 직접 체험해 보도록 하는 것도 좋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단번에 빨리'라는 뜻을 지닌 '냉큼'의 큰 말인 '닁큼'은 단순히 뜻만 설명해서 아이들이 그 차이를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두 단어들 간의 미세한 차이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어야 개구리가 그만큼 신속하고 다급하게 곤궁에 처한 소시랑게를 도우러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개구리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인물을 기꺼이 도우려는 선량한 성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 곤충들은 어떤 모습일까
이 동화에는 개구리를 비롯해서 소시랑게, 방아깨비, 쇠똥구리, 하늘소, 개똥벌레 등이 등장합니다. 예전에는 산과 들에 너무나 흔했던 곤충들이지만 이제는 애써 찾아봐도 만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실제 곤충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이 어떤 모습이며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해주곤 합니다.
소시랑게는 민물에 사는 게의 한 종류로 위협적으로 생긴 앞발이 쇠스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방아깨비는 뒷다리가 매우 길어 손으로 잡으면 디딜방아처럼 위아래로 끄덕거려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파브르 곤충기에도 등장하는 쇠똥구리는 소의 똥을 경단처럼 굴려서 은신처로 가져가 먹이로 삼거나 그곳에 알을 낳아 기릅니다. 하늘소는 긴 더듬이가 하늘을 향한 모습이 마치 황소의 뿔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나무의 껍질을 먹으며 생활하며 무척이나 힘이 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똥벌레는 '반딧불이'라고도 불리며 밤에 꼬리 부분에서 발광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각 곤충들이 지닌 독특한 특징들은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알아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간신히 벼를 얻어온 개구리는 방아가 없어서 쌀로 찧지 못해 곤란해 합니다. 이때 방아깨비가 나타나 벼를 쌀로 찧어주는데 이것은 방아깨비의 특징을 활용한 것입니다. 또 개구리가 불을 땔 장작이 없어 밥을 짓지 못하자 소시랑게가 다가와 거품을 내어 밥을 짓게 도와줍니다. 이것 역시 아가미로 숨을 쉬며 거품을 만들어내는 게의 모습이 마치 밥을 지을 때 끓어오르는 광경과 유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입니다.


한솥밥을 먹는 사이는 어떤 사이인가
이 동화의 서사 구조는 크게 출발서사와 귀환서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착하지만 가난한 개구리는 쌀 한 말을 얻으러 벌을 건너 형네 집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이때 갈 길이 바쁜 개구리 앞에 어려움에 처한 소시랑게, 방아깨비, 쇠똥구리, 하늘소, 개똥벌레가 차례로 나타납니다. 개구리는 그 때마다 "가엾기도 가엾어"라고 안타까워 하며 그들을 돕습니다. 개구리의 입장에서 다른 곤충들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해자'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형에게 쌀 대신 벼 한 말을 얻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후반부에 '방해자' 역할을 하던 곤충들은 개구리가 무사히 귀가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도움을 받았던 정확한 역순으로 개구리를 돕습니다. 그리고 개구리와 모든 곤충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밥을 지어 먹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출발서사와 귀환서사는 마치 데칼코미나처럼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은혜를 베풀었던 개구리는 후반부에서 은혜를 보답받게 됩니다. '방해자' 역할을 하던 곤충들은 '조력자'가 되어 개구리를 돕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선행은 언젠가 보답받기 마련'이며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으며 협동하는 존재'라는 주제가 전달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개구리와 곤충들이 함께 밥을 지어 먹는 장면은 그들이 함께 하는 식사를 통해 공동체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족(家族)'이란 말이 혈연을 통해 맺어진 관계를 뜻한다면, '함께 밥을 먹는 사이'를 의미하는 '식구(食口)'는 밥을 먹기 위해 함께 노동을 하고 함께 고난을 이겨낸 우정의 공동체를 뜻합니다. 개구리와 곤충들은 각자 개성이나 특기가 다르지만 도움을 주고 받음으로써 함께 밥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식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개구리가 처음에 얻었던 '벼'가 '쌀'로 변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겨로 둘러싸인 '벼'는 도정 과정을 거쳐 껍질을 벗겨 내야 먹을 수 있는 '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품이 많이 드는 벼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이웃들의 품앗이를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동화시를 희곡으로
이 작품은 동화답게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거의 없고 인물들의 감정 상태는 의태어나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으면 각 장면들이 마치 연극 무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동화를 연극 대본으로 고쳐 쓰게 한 뒤 아이들에게 직접 연극을 해보도록 하는 것도 유익합니다.
(가)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봇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도랑으로 가 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소시랑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소시랑게야,너 왜 우니?"
소시랑게 울다 말고 대답하였네.
"발을 다쳐 아파서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입어버리고
소시랑게 다친 발 고쳐 주었네.
(백석의 '개구리네 한솥밥'의 한 장면)
(나) 길가 봇도랑에서 소시랑게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개구리 :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우는 소리가 나는 거지?
(울고 있는 소시랑게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소시랑게야, 너 왜 울고 있니?
소시랑게 : (울면서 다리를 문지르며) 발을 다쳐 아파서 울고 있어.
개구리 : (무릎을 꿇고 소시랑게의 다리를 고쳐준다.) 이제 괜찮니?
소시랑게 : (울음을 그치고 방긋 웃으면서) 응, 이제 괜찮아. 고마워, 개구리야.
(백석의 '개구리네 한솥밥'을 희곡으로 고쳐 쓴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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