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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염명순, 레 미제라블, 비룡소(1)

거장이 그린 한 시대의 거대한 벽화 '레 미제라블'을 읽는다는 것은 빅토르 위고라는 위대한 작가가 그려 놓은 한 시대의 거대한 벽화를 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은 공화제로 안정화되기까지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위고가 이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6월 혁명은 그 과정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장발장을 비롯하여 미리엘 주교, 자베르, 팡틴, 코제트, 마우리스, 가브로슈, 테나르디에 등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혼란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생생한 숨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위대한 작품의 제목은 '장발장'이 아니라 '레 미제라블'입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단순히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이..

윌리엄 셰익스피어/권오숙 번역, 오셀로, 열린책들

'오셀로'는 질투로 인한 비극인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흔히 인간의 질투로 인한 비극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고상한 영웅 오셀로는 사악한 모사꾼 이아고에게 속아서 자신의 아름답고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가 부정한 행동을 한다고 오해한 나머지 그녀를 살해하고 스스로의 목숨마저 끊으며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질투라는 '푸른 눈의 괴물'은 고결한 영웅마저 자신의 먹잇감으로 삼아 조롱하는 파괴적 힘을 지니고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질투라는 감정을 예리하게 통찰한 작품으로 이해한 것은 시대를 초월한 셰익스피어의 불멸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인간의 감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고, 수백 년 ..

오비디우스/이윤기 번역, 변신이야기1, 민음사(2)

신에게 도전한 아라크네 아라크네는 자신의 베짜기 실력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신 앞에서조차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을 만큼 기개가 강한 인물입니다. 아라크네의 오만한 태도는 배짜기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팔라스 여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배짜기 최강자를 놓고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우선 팔라스 여신은 아테네 도시를 놓고 넵투누스 신과 경쟁해서 자신이 승리를 거둔 모습을 담고 있는 문양을 수놓습니다. 베의 네 귀퉁이에는 신들과 경쟁을 하다 벌을 받은 인간들의 최후를 짜 넣습니다. 팔라스 여신은 이런 문양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며 자신에게 감히 도전한 아라크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와 달리 아라크네가 짠 문양에는 유피테르, 넵투누스, 포에부스..

오비디우스/이윤기 번역, 변신이야기1, 민음사(1)

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공부해야 하나 나이키, 베르사체, 에르메스, 스타벅스의 로고 등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목성의 위성들로 알려진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네,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상표들이나 천체의 이름들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들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미네르바의 올빼미, 트로이의 목마 등 수많은 시사 용어들이나 무수히 많은 문학 작품이나 철학, 미술, 음악, 영화 등이 전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들입니다. 아니, 그리스 신화가 서구의 문명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근대 이후 서양 문명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의 정신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시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다

시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다 우리는 시인이 쓴 시를 읽으며 같은 대상을 보고서도 어쩜 이렇게 우리와 다른 시각에서 참신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가 시에서 감동을 느끼는 까닭은 '참신한 표현력'과 '다른 시각'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은 단순히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자신만의 언어와 세상을 바라보는 개성적인 시선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2학년 학생이 쓴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가) 아무것도 없다가 갑자기 하얘지더니 노란 해가 뜨고 풀이 자라난 다음에 바다가 만들어지고 밤이 된 다음 불이 피어 오르고 불과 밤이 나눠지고 세상이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수업 시간에 읽어야 할 책 외에 짬을 내서 시를 읽고 있습니다. 다섯 편의 시를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시에서 사용된 단어나 표현을 활용하거나, 시에서 제시된 소재나 주제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형시켜서 시를 써오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재미없다고 하던 아이들도 수 개월간 꾸준히 시를 읽고 시를 써 오다 보면 어느새 시의 매력에 푹 빠져 있곤 합니다. 시 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은 물론 독해력도 한층 성장하게 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시 쓰기를 일종의 재미있는 놀이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각별히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시에 나타난 재미있는 표현을 몸으로 흉내내보도록 한다거나, 아이들이..

시인은 왜 그 섬에 가고 싶어 했을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시 '섬' 전문)  시인은 왜 그 섬에 가고 싶어 했을까? 아이들에게 정현종 시인의 시 '섬'을 읽고 화자는 왜 섬에 가고 싶다고 했는지 말해 보라고 합니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화자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가고 싶다는 뜻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저 친구와 반대로 해석했는데요. 섬은 육지에서 떨어진 고립된 곳이니까 섬에 가고 싶다는 것은 화자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요." 과연 이 두 학생의 해석 중 어떤 해석이 더 그럴 듯해 보이나요? 정현종의 시 '섬'은 단 두 ..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시인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전문) '진달래꽃'은 이별 시인가요? 중학교 학생들과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읽어 봅니다. 시적 화자가 어떤 상황에 놓인 것 같냐고 물으니 이별을 한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왜 이별한 것 같냐고 다시 물어 봅니다. 아이들은 '역겹다'는 시어를 근거로 시적 화자가 상대한테 큰 잘못을 해서 구토가 날 만큼 싫어진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한때는 서로 열렬하게 사랑했던 사이처럼 보이는데 상대가 속이 메슥거릴 만큼 역겨워 할 만한 행동해서 헤어..

프란츠 카프카/장혜경 번역, 변신, 푸른숲주니어

그는 왜 벌레로 변신했을까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뒤숭숭한 꿈을 꾸다가 깨어나 흉측스런 벌레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20세기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카프카의 작품 의 첫 문장을 강렬하다 못해 충격적입니다. 뒤숭숭한 꿈을 꾸다가 깨어나 보니 흉측스런 벌레로 변한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악몽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니요. 판타지스러운 내용이 전개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후 전개되는 사건들은 건조함을 넘어서서 차가움마저 전달될 만큼 사실적이어서 주인공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합니다. 대체 주인공은 왜 벌레로 변신했던 것일까요? 소설의 첫 시작은 독자에게 대뜸 이런 질문을 던져 놓고 그 이유를 이야기 속에서 찾아보라고 권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선 그레고르가 벌..

리베카 솔닛/홍한별 번역, 해방자 신데렐라, 반비

신데렐라를 위한 변명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등 무수한 대중문화에서 가난한 여성이 부잣집 남성을 만나 신분을 상승시키는 이야기를 접하곤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 지고 여성들의 취업 성공이 험난해질수록 이런 이야기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 '시크릿 가든'(2010), '도깨비'(2016) 등에서도 신데렐라 유형의 여성 인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여성의 신분상승 욕망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게 되면 단번에 해소된다는 식의 서사 구조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제공하는 달콤한 판타지는 취업난을 겪으며 위축된 여성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 달콤한 위로를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 현실을 더욱 공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