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중2

윌리엄 셰익스피어/권오숙 번역, 오셀로, 열린책들

ddolappa72 2024. 9. 13. 17:58

 

 

'오셀로'는 질투로 인한 비극인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흔히 인간의 질투로 인한 비극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고상한 영웅 오셀로는 사악한 모사꾼 이아고에게 속아서 자신의 아름답고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가 부정한 행동을 한다고 오해한 나머지 그녀를 살해하고 스스로의 목숨마저 끊으며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질투라는 '푸른 눈의 괴물'은 고결한 영웅마저 자신의 먹잇감으로 삼아 조롱하는 파괴적 힘을 지니고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질투라는 감정을 예리하게 통찰한 작품으로 이해한 것은 시대를 초월한 셰익스피어의 불멸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인간의 감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고, 수백 년 전의 위대한 극작가의 통찰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통용된다는 것이 이러한 해석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지요. 하지만 정작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흑인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인종차별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가 죽은 까닭도 단순히 오셀로의 질투심이 발현된 결과로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당대의 견고한 가부장 질서를 위반했고, 그로 인해 처벌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책 읽기가 마찬가지지만 특히 고전을 읽을 때는 기존 해석의 권위에 도전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전들이 하나의 심오한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지금껏 읽힌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 가능성에 열려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들임을 기억할 때 의미를 거슬러 읽어 내려는 자세는 고전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무어인' 오셀로

무어인(the Moor)은 8세기경부터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거주했던 아랍계 무슬림들을 지칭합니다. '무어Moor'는 '검다', '어둡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마우러스Maurous'에서 유래합니다. 무어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용감하며 호전적이어서 유럽에서 용병으로 많이 활동했다고 합니다.(박용남, <난생처음 도전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이와우)

'무어인' 오셀로는 베니스를 공격하는 터키군에 맞서 승리를 거두며 사회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어린 나이부터 전장터를 누볐지만 그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적인 이아고조차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나 인품과 상관없이 베니스의 사람들은 그를 '시커먼 늙은 양', '음탕한 무어인', '혐오해야 마땅한 시커먼 가슴'으로 경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에게 쏟아지는 경멸과 혐오의 감정은 오셀로가 백인 귀족의 딸 데스데모나와 비밀 결혼을 하게 되며 절정으로 치닫게 됩니다. 비록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성품에 매료되어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의사를 밝혔지만, 백인 주류층은 그 둘의 결혼을 '엄청난 반란'으로 규정합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흑인이 백인 지배층의 어린 여성을 아내로 받아들이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오셀로와 결혼한 데스데모나의 행동은 가부장적 질서를 위반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악당 이아고가 오셀로를 파멸시키려 한 것은 흑인에 대한 백인 주류층들의 질투와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흑인 오셀로의 사회적 성공을 누구보다 질투하고 못마땅해 하는 자입니다. 게다가 경력순으로 자신이 부관이 되었어야 하는데, 오셀로의 추천으로 캐시오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이만저만 부아가 치미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아고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오셀로를 파멸시키게 됩니다.


질투하는 남자들

수많은 인종차별을 겪으며 주류 백인 사회에 편입하게 된 오셀로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쟁취한 성공과 사랑을 뿌듯해 하며 만족했을까요, 아니면 주변의 시기하는 시선을 느끼며 언제든 자신이 획득한 지위를 빼앗기고 추락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을까요? 교활한 이아고는 오셀로의 마음 속에 자리한 그 불안을 파고 들어 그를 균열시키기 시작합니다. 이아고의 가스라이팅으로 질투의 노예가 된 오셀로는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의심도 그만큼 커져서 매순간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질투는 '시기심(envy)'과 '질투(jeolousy)'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기심'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한 부러움을 뜻합니다. 그래서 남이 가진 외모나 돈을 선망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질투'는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할 때 느끼는 감정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의 애인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일 때 우리는 질투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제3자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승진 기회를 오셀로가 부당하게 개입해서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이아고가 느끼는 감정 역시 질투입니다. 자신의 아내가 캐시오와 바람이 났다고 의심하는 오셀로 역시 그녀를 질투하고 있습니다. 젊은 백인 여성을 흑인 오셀로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베니스의 청년들 역시 질투심에 빠져 있습니다. 베니스의 남성들 전체가 질투심에 감염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질투하는 이유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요? 이아고는 정말 부당하게 승진할 수 없었던 것인가요? 오셀로는 왜 아내를 그토록 사랑하면서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이아고가 속삭이는 사악한 말은 믿었던 것일까요?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와 결혼한 것을 과연 자신의 소유물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젊은 백인 여성을 빼앗는 행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여성을 소유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그것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는 남성들의 질투심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발언을 합니다. "그들은 이유가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질투심이 많아서 질투하는 것이죠. 질투심은 스스로 잉태되어 태어나는 괴물이에요."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에밀리아는 아내들이 외도를 한다면 남편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남편들이 가정을 소홀히 하고 다른 여성들과 바람을 피웠거나, 아니면 엉뚱한 질투심으로 아내를 속박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내를 구타를 하거나 용돈을 악의적으로 줄여서 아내들이 곁눈질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에밀리아의 대사는 남성 중심적 가치관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부장적 질서를 옹호하는 듯이 보이는 셰익스피어의 극 전체에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편 이아고는 아내 에밀리아에게 계속해서 조용히 하라고 강요합니다. 아무리 제어를 해도 멈추지 않는 그녀를 이아고는 칼로 찔러 살해하고 맙니다. 침묵을 강요당해온 여성의 목소리는 이렇게 죽음으로 끝나버린 셈이지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으며 오셀로의 비극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침묵을 강요받아온 여성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셀로가 아내를 살해하며 내세운 동기를 살펴 보면 우리가 에밀리아의 목소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 집니다. "그래도 그녀는 죽어야 한다. 안그러면 더 많은 남자들을 배반할 테니. (....) 내키시면 명예로운 살인자라고 말씀해 주시오. 이 모든 짓을 증오심이 아니라 명예심으로 햇으니." 오셀로는 아내를 죽이지 않으면 더 많은 남자들을 배반해서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은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순결을 잃어버린 아내를 징벌해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오셀로가 아내를 죽인 것은 남성 중심적 가치관을 공고히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인 주류 사회에 편입된 오셀로는 마치 백인이라도 된 듯 그들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류 사회의 백인 '남자'였던 이아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사랑하는 '여성'인 아내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이 힘겹게 획득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흑인이었던 오셀로는 백인의 가면을 써야만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오셀로가 죽는 순간에도 자신을 백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번은 알레포에서 두건을 쓴 악독한 터키인이 베니스인을 구타하고 베니스를 비방했을 때 내가 할례를 받은 그 개의 멱살을 잡고 그놈을 이렇게 찔러 죽였다고.(자신을 찌른다)" 오셀로는 죽음을 맞이 한 순간 자신이 베니스를 위해 터키인을 죽인 사건을 자랑스럽게 떠올립니다.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자신이 베니스의 백인 남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자신을 흑인이라고 경멸한 베니스인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베니스를 사랑했는지를 끝까지 입증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셀로의 진짜 비극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백인들이 자신에게 씌워준 백인 가면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착각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경멸하고 질투했던 사람들 때문에 죽어가는데도 그들을 위해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모습이 왠지 애처롭고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인들은 어떤 가면을 쓰고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