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다
우리는 시인이 쓴 시를 읽으며 같은 대상을 보고서도 어쩜 이렇게 우리와 다른 시각에서 참신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가 시에서 감동을 느끼는 까닭은 '참신한 표현력'과 '다른 시각'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은 단순히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자신만의 언어와 세상을 바라보는 개성적인 시선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2학년 학생이 쓴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가)
아무것도 없다가
갑자기 하얘지더니
노란 해가 뜨고
풀이 자라난 다음에
바다가 만들어지고
밤이 된 다음
불이 피어 오르고
불과 밤이 나눠지고
세상이 검게 물든다.
(시 '태권도 띠' 전문)
이 학생은 대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답은 태권도 띠의 색깔 변화입니다. 태권도를 유난히 좋아하는 이 학생은 급수에 따라 띠의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이렇게 시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채지 못한 이유는 익숙한 것을 다른 시선에서 관찰해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시 쓰기에 도통 관심이 없던 아이인데 차츰 재미를 붙이더니 이런 시를 써 가지고 왔습니다. 이 학생이 쓴 또다른 글을 하나 더 읽어 보겠습니다.
(나)
구름은 해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해의 신하 중 하나 같다. 왜냐하면 해가 밝게 웃으면 구름도 하얘지고 해가 숨바꼭질하면 구름이 가려주고, 해가 자면 구름이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해가 슬퍼 얼굴을 가리면 구름도 같이 울어 주니까 구름은 해의 신하이다.
구름에 대해 수업을 한 뒤 자유롭게 글을 써 보라고 했더니 이런 글을 써 냈습니다. 단순히 구름에 대해 쓰지 않고 구름과 해의 관계까지 생각해서 쓴 글입니다. 먼저 독창적인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그에 걸맞는 표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은 4학년 학생이 쓴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다)
지구는 나를 끌어 당긴다.
지구가 나를 긴 손으로 꼭
껴안는 것 같다.
엄마도 나를 꼭 껴안는다.
엄마랑 지구랑 모두 나를
껴안는다.
엄마 같은 지구
(시 '엄마 같은 지구' 전문)
(라)
물이 강 또는 바다에서
날개를 갖고 하늘에 있는
구름으로 날아간다
물 손님이 너무 많으면
구름의 신이 물 손님들을
발로 차서 쫓아내고
비가 온다.
이게 물의 여행
(시 '물의 여행' 전문)
이 4학년 학생은 유달리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평소에도 논리적인 성격에 명확한 사실에 기반한 글을 써 냅니다. 그러다 보니 시 쓰기를 유달리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꾸준히 시 쓰기를 해오더니 언젠가부터 이런 시를 써 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에서는 지구의 인력을 엄마가 자신을 안아주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라)에서는 물의 순환 과정을 물의 여행으로 표현했습니다. 과학적 사실을 건조하게 기술하지 않고, 그것과 유사한 사태를 주변에서 찾아본 후 그것들을 엮어서 시로 표현해 냈습니다. 이 학생은 시가 서로 다른 두 사물 간에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어렴풋이 깨달은 셈입니다.
이처럼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을 독창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개성이 담겨 있지 않은 시는 시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만의 개성을 갖춰 나가기 위해 연습을 하는 것이도 합니다. 비록 표현이 서툴고 어설퍼도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훈련을 꾸준히 하다 보면, 아이들 모두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며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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