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벌레로 변신했을까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뒤숭숭한 꿈을 꾸다가 깨어나 흉측스런 벌레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20세기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카프카의 작품 <변신>의 첫 문장을 강렬하다 못해 충격적입니다. 뒤숭숭한 꿈을 꾸다가 깨어나 보니 흉측스런 벌레로 변한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악몽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니요. 판타지스러운 내용이 전개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후 전개되는 사건들은 건조함을 넘어서서 차가움마저 전달될 만큼 사실적이어서 주인공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합니다. 대체 주인공은 왜 벌레로 변신했던 것일까요? 소설의 첫 시작은 독자에게 대뜸 이런 질문을 던져 놓고 그 이유를 이야기 속에서 찾아보라고 권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선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기 이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범한 집안의 맏이인 그는 아버지의 부도로 가족이 경제적 위기에 처하자 외판원이 되어 가족들을 부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은 그가 감내해야 했던 노동의 조건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나 원 참, 아무래도 너무 고된 직업을 고른 모양이야. 허구한날 출장이라니! 시내에 있는 매장에 가만히 앉아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데다 여행의 고단함까지 짋어져야 하니…….. 기차를 놓칠까 봐 매번 노심초사하는 것은 어떻고, 끼니때마다 불규칙적이고 질 나쁜 식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나는 사람이 계속 바뀌다 보니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기도 힘들어. 정말이지 빌어먹을 놈의 직업이야!’
끊임없는 출장과 불규칙적이고 질 나쁜 식사, 게다가 피상적인 인간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직업은 그의 영혼을 바닥까지 갉아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레로 변신한 후에도 계속해서 자명종을 건너다보며 출근 기차를 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그는 대체 왜 벌레로 변해서도 그토록 회사에 출근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학생들은 이 장면에서 그레고르가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신들도 간혹 휴일인데도 등교를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 침대에서 허둥지둥 일어난 경험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처럼 주인공도 회사에 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하기 이전부터 '일벌레'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를 구속하는 비인간적이고 강압적인 노동 조건이 그를 '벌레'로 만들어 왔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출근을 하지 않자 회사에서 나온 지배인은 그의 안부를 걱정하기는커녕 끊임없이 그를 윽박지르고 출근을 강요합니다. 이때 주인공은 언젠가 지배인에게도 오늘 자신에게 일어난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상상을 합니다. 상관인 지배인 역시 자신처럼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는 '버러지'의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들은 인간을 벌레로 만드는 삶의 조건에 구속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가정은 어떤 곳인가
그레고르가 변신한 원인은 사회 구조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경제적 곤란에 빠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고, 그들에게 멋진 집과 훌륭한 생활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벌레로 변해 더 이상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올 수 없게 되자 가족들의 태도는 점차 싸늘하게 변해 갔습니다. 어머니는 여동생에게 그의 방문을 가리키며 닫아버리라고 명령하기도 하고, 그레고르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여동생은 그를 '그것'이라고 부르며 당장 내쫓아야 한다고 아버지께 울부짖습니다. 누이동생이 그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까닭은 벌레로 변한 그 때문에 하숙인들을 내쫓아 더 이상 하숙비를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너무하다고 비난하곤 합니다. 가족들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는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벌레로 변했다고 그렇게 매정하게 대하는 가족들이 야속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만약 너희들이 벌레로 변했다면 가족들이 어떻게 대할 것인지, 혹은 가족 중 한 명이 벌레로 변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상상해 보라고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잘 치료되지도 않고 계속해서 몸이 나빠지기만 하면서 오랫동안 목숨을 유지하게 되는 중풍을 앓고 있는 환자가 가족 중에 있거나 나 자신이 그러하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만약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못한데 가족 중에 그런 환자가 있다면 그레고르의 가족들처럼 행동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가정을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라고 했습니다. 가족 내에서는 그 사람의 외모나 성격, 재능이나 재산 때문에 인정받는 장소가 아니라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카프카는 그런 순수한 인간관계인 가족조차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역설합니다.
카프카의 통찰을 한국식으로 변형시켜 아이들한테 다시 질문합니다. 혹시 부모님께서 학교 성적에 따라 자녀들을 차별을 두고 대하는 경험을 한 적은 없는지.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그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간주해서 그가 벌레라는 비인간적 상태에 놓인 것 같은 불행이 성적만능주의가 횡행하는 한국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변신은 탈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학생이 그토록 힘든 일을 매일 하는 것보다 차라리 벌레로 변해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 그한테는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었겠냐고 반문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매일 고통을 견디며 매정한 가족들을 위해 죽도록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쓸모없는 벌레로 변해 집에서 편히 쉬는 편이 그레고르에게 더 나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벌레로 변신한 것은 그에게 탈출구인 셈이지요.
이런 해석은 벌레로의 변신을 부정적 현실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레고르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벌레로 변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 소리에 감동한 그레고르는 이렇게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는 자신이 어떻게 벌레일 수 있냐고 항변합니다. 그리고 "그토록 갈망하던 미지의 음식을 찾으러 가는 길이 드디어 그레고르의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는 문장이 이어집니다. 이전 장면에서 그레고르는 여동생이 가져다 주는 인간의 음식을 역하게 느끼고 거부합니다. 그 이후 여동생의 연주 소리를 듣고 자신이 찾던 '미지의 음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즉 그 전까지 그레고르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물질적 만족과 풍요를 좇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 강요된 삶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에게 만족감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정신적 만족을 주는 '미지의 음식'을 섭취하는 삶, 즉 예술가로 사는 삶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비로소 깨달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작가 카프가는 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완고한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법학을 전공했고,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가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업무가 오후 2시에 끝나서 글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예술가로 활동하는 카프카의 친구를 '벌레 같은 녀석'이라고 경멸하기도 했고, 문학 따위의 예술을 하등 쓸모없는 일로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것은 카프카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소설을 썼던 것을 은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예술을 하면 벌레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는 벌레가 되어서 예술 활동을 할래요. 아버지의 말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아버지의 명령을 어긋나게 하는 전략이 카프카의 글쓰기 전략은 아니었을까요? 다시 말해 벌레로의 변신은 인간 소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소외시키는 현실을 다시 소외시킴으로써 어떻게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카프카의 처절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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