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시 수업 21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3) 잿빛하늘의 무지개(심혜나)

잿빛하늘의 무지개 심혜나 강가에 동그란 원이 드리웠다. 원은 점점 커져갔고, 점점 흐릿해져갔다. 조금 뒤 그 옆에 또 동그란 원이 생겨났다. 원은 또다시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울려다본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졌다. 고요한 강가 속, 물방울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하늘이 뭐 그리 슬픈지 울어댔다. 한적했던 강가는 비바람에 휩쓸렸다. 곧이어 맑게 갠 하늘엔 .... 구름들 사이에 형형색색의 무지개가 두리둥실 잿빛이었던 하늘에 무지개가 드리웠다.시인의 말) 강가에 그려진 동그란 원은 빗방울이 떨어져 만든 것입니다. 잠잠한 강가에 돌을 던진 것처럼 생긴 원은 커지다 커지다 없어졌습니다. 올려다본 하늘은 이미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온 것입니다. 하늘이 운 것은 비가 내렸다는 것이죠. 곧..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2) 새싹의 성장일지(심혜나)

새싹의 성장일지 심혜나 산들산들 부는 바람, 그때 그 조그맣던 새싹이 햇빛이 쨍쨍한 날, 그때 그 예쁘게 피어났던 꽃으로. 나뭇잎이 찬 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틱틱 떨어졌던 그날, 그때 그 열매가 되었고. 눈보라가 매섭게 내리꽂던 날, 그땐 눈에 덮힌 나였지. 다시 산들산들 부는 바람, 이제 다시 푸릇푸릇 자라나는 나.시인의 말) 이 시의 주인공 새싹은 꽃으로 피기도 하고 열매를 맺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바뀌는 날씨는 계절을 뜻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새싹의 성장과정을 나타낸 것이지요. 봄에 조그맣던 새싹, 여름에 예쁘게 피어난 꽃. 그리고 가을엔 열매를 맺고, 결국 겨울엔 눈에 덮힌 채 시들어버리지만, 다시 찾아온 봄엔 반갑기라도 한 듯 새싹이 고개를 들어요. 그게 시간 속 새싹의 성장과정이예요.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1) 태양(심혜나)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시 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6학년 이상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쓴 시에 대해 해설도 함께 써 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의도로 시를 썼고,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설명하면서 시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를 곱씹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쓴 시와 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생각 사이에 놓인 빈틈과 간극을 성찰하면서 아이들은 차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등을 사색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 교육은 단순히 예쁘고 멋진 글을 쓰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인식하도록 만드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항상 예외없이 제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

시는 사물을 재탄생시키는 창조의 작업이다

시는 왜 어려운가 많은 사람들이 시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익숙한 사물을 다루더라도 낯설게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 낯섦을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그 낯섦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시인은 이미 알려진 사물들을 새로운 시점에서 관찰하고, 일상의 언어와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를 통해 사물들은 새로운 의미로 충전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익숙한 사물들이 낯설어지고, 그것에 대해 새롭게 생각을 해야 한다는 필요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문학이란 원래가 자동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중단시키고 낯설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동화된 사고는 실은 생각이 멈춘 상태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가 낯설고 어려운 ..

시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시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학생들이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은 어땠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낯선 것들, 자신이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경험을 공유하며 아이와의 관계가 돈독해질 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그 아이를 지도해야 할 지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한 학생이 해외로 여행을 다녀와서는 별들이 가득한 밤 하늘 사진을 보여 줍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선명한 별빛들로 가득한 밤 하늘이 퍽이나 아름답습니다. 아이도 그렇게 느꼈는지 멋진 풍경을 보고 문득 시를 쓰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시를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가..

일상을 노래하는 시쓰기

(가) 넘어진 날 친구들과 뛰어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콰당! 사람들이 자꾸 나를 힐끔힐끔 쳐다 보는 것 같다. 손과 얼굴은 발개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쥐구멍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다. (2학년 학생이 쓴 동시 '넘어진 날' 전문) (나) 비 비가 온다. 오늘은 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한다. 빗방울이 우리 차를 톡톡, 친다. 사람들의 우산에는 빗방울이 송글송글 아이들이 노란색 우비를 입고 첨벙첨벙 꼭 물장구 치는 병아리 같다. 마침 비가 그쳤다. 하늘에는 알록달록 예쁜 무지개가 떴다. (2학년 학생이 쓴 동시 '비' 전문) 아이들이 쓴 동시를 통해 평소 일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또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게 되곤 합니다. (가)는 친구들과 함께 뛰어가다 넘어졌을 ..

시로 쓰는 독서감상문

팔방미인 반짝이 반쪽반쪽 반쪽이 다른 사람보다 무엇이든 반쪽이네 하지만.... 커다란 나무와 바위를 들고 혼자서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지 많은 사람들이 지키는 부잣집에 들어가 딸을 업고 나오고 영감에게는 장기 3연승! 형들의 잘못을 3번이나 덮어 줄 만큼 착하기도 하지. 몸은 남들보다 반쪽이지만 능력은 남들보다 한수 위 그래서 반쪽이는 반짝반짝 팔방미인 반짝이 (2학년 학생의 시 '팔방미인 반짝이' 전문) 수업에서 동화 '반쪽이'를 함께 읽은 뒤에 한 학생이 그 책을 주제로 동시를 써 왔습니다. 그 전 수업에서 책을 읽고도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해줬더니 용케 그걸 기억했다가 써 온 시였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시를 써 오면 수업 시간에 함께 읽고 시에 관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넌 왜 이렇게 표현했니..

시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다

시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다 우리는 시인이 쓴 시를 읽으며 같은 대상을 보고서도 어쩜 이렇게 우리와 다른 시각에서 참신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가 시에서 감동을 느끼는 까닭은 '참신한 표현력'과 '다른 시각'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은 단순히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자신만의 언어와 세상을 바라보는 개성적인 시선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2학년 학생이 쓴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가) 아무것도 없다가 갑자기 하얘지더니 노란 해가 뜨고 풀이 자라난 다음에 바다가 만들어지고 밤이 된 다음 불이 피어 오르고 불과 밤이 나눠지고 세상이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수업 시간에 읽어야 할 책 외에 짬을 내서 시를 읽고 있습니다. 다섯 편의 시를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시에서 사용된 단어나 표현을 활용하거나, 시에서 제시된 소재나 주제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형시켜서 시를 써오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재미없다고 하던 아이들도 수 개월간 꾸준히 시를 읽고 시를 써 오다 보면 어느새 시의 매력에 푹 빠져 있곤 합니다. 시 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은 물론 독해력도 한층 성장하게 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시 쓰기를 일종의 재미있는 놀이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각별히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시에 나타난 재미있는 표현을 몸으로 흉내내보도록 한다거나, 아이들이..

시인은 왜 그 섬에 가고 싶어 했을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시 '섬' 전문)  시인은 왜 그 섬에 가고 싶어 했을까? 아이들에게 정현종 시인의 시 '섬'을 읽고 화자는 왜 섬에 가고 싶다고 했는지 말해 보라고 합니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화자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가고 싶다는 뜻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저 친구와 반대로 해석했는데요. 섬은 육지에서 떨어진 고립된 곳이니까 섬에 가고 싶다는 것은 화자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요." 과연 이 두 학생의 해석 중 어떤 해석이 더 그럴 듯해 보이나요? 정현종의 시 '섬'은 단 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