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넘어진 날
친구들과 뛰어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콰당!
사람들이 자꾸 나를 힐끔힐끔
쳐다 보는 것 같다.
손과 얼굴은 발개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쥐구멍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다.
(2학년 학생이 쓴 동시 '넘어진 날' 전문)
(나) 비
비가 온다.
오늘은 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한다.
빗방울이 우리 차를
톡톡, 친다.
사람들의 우산에는
빗방울이 송글송글
아이들이 노란색 우비를 입고
첨벙첨벙
꼭 물장구 치는 병아리 같다.
마침 비가 그쳤다.
하늘에는
알록달록 예쁜
무지개가 떴다.
(2학년 학생이 쓴 동시 '비' 전문)
아이들이 쓴 동시를 통해 평소 일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또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게 되곤 합니다. (가)는 친구들과 함께 뛰어가다 넘어졌을 때의 경험을 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넘어졌을 때의 고통과 아픔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부끄럽게 느끼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학생에게 그 때 아프지는 않았니, 하고 물으니 아픈 것보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고 대답해서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쥐구멍을 본 적도 없을 텐데 관용적 표현을 차용해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는 사실이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느껴집니다.
(나)는 비가 내리는 날 차를 타고 등교하는 풍경을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빗방울이 우리 차를 / 톡톡, 친다' 같은 문장은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감성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아도 효과적인 단어 선택을 통해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들을 스케치하듯 간략하게 제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어서 쿨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크한 본인의 성격이 시에 반영되고 있는 듯합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시로 표현해 보면 어떤 점이 좋은 것일까요? (가)의 시처럼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객관화시켜 관찰해서 그 순간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을 타자의 시점에서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경험을 시가 제공하는 셈이지요. 그리고 (나)의 시처럼 효율적인 단어 사용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몇 단어만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단어를 선별할 때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수많은 단어들 중에서 가장 적합한 표현을 골라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훈련을 계속하게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4학년 학생이 쓴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엄마의 시간
"시간이 없다."
"서두르자."
엄마는 종종 그리 말한다.
엄마의 시간을 갉아 먹는 벌레가 있는걸까?
엄마의 시간을 훔치는 도둑이 있는걸까?
엄마에게 시간을 나눠 주고 싶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모두 돈으로는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아니었다.
시간이 있었다.
(4학년 학생이 쓴 시 '돈으로 살 수 없는 엄마의 시간' 전문)
이 학생은 '서두르자'고 종종 말씀하시는 엄마의 말 습관을 관찰한 뒤 시간에 대해 성찰하고 있습니다. 항상 바쁘기만 한 엄마를 보고 학생은 '시간을 갉아 먹는 벌레'나 '시간을 훔치는 도둑'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합니다. 아이의 눈에 늘 바쁜 엄마가 안쓰러워 보였나 봅니다. '엄마에게 시간을 나눠 주고 싶다'고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학생은 '시간은 돈'이라는 세간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꾸준히 시쓰기를 해온 이 학생은 일상의 사소한 사건을 섬세하게 바라본 후 보편적인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아직 미숙한 표현도 눈에 띄지만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충분히 '시적'입니다. 이처럼 시를 쓴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한 연습이기도 합니다.
'좌충우돌 시 수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는 사물을 재탄생시키는 창조의 작업이다 (6) | 2024.11.10 |
---|---|
시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10) | 2024.11.09 |
시로 쓰는 독서감상문 (4) | 2024.10.20 |
시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다 (1) | 2024.09.08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5) | 2024.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