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세상을 구원한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해 묻는다면 각양각색의 대답을 내놓을 겁니다.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살기 힘든 사회라거나, 치안수준이 높고 공공의식이 뛰어난 시민들이 많다고 평가할 수도 있고, 그밖에도 저출산 문제나 높은 주택가격 등에 대한 걱정을 들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을 일일히 만나거나 하늘 높은 곳에서 전체를 내려다 보지도 않았으면서도 어떻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다양한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다양한 기사나 정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그것을 우리를 둘러싼 환경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머리 속에 갖고 있는 '사회'라는 개념은 다양한 정보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제공되는 정보가 부정확하거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충분한 해석능력을 습득하고 있지 못할 경우, 우리는 처한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그릇된 결정을 내리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학생들의 신문 읽기 교육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은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사회적 현상을 이해해 보려 하거나 비판적으로 사안을 평가해 보면서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적 안목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문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훈련을 통해 정보의 진위 여부를 분별해서 수용하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역량을 습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詩)'라는 문을 통해 바라본 사회
하지만 막상 신문NIE(Newspaper In Education) 수업을 진행해 보면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우선 예전과 달리 신문을 구독하는 가정이 드물고, 가족이 함께 뉴스를 시청하는 경우도 매우 희귀해 지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사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또 막상 수업 시간에 신문 기사를 읽히면 간단한 한자어조차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읽기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신문 교육이 기사에서 사용된 단어를 익히고,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고, 짧은 논평을 다는 것에 주력합니다.
기존의 신문 교육 방식도 물론 좋지만 아이들이 조금 더 자발적으로 기사를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입니다. 제페토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기사에 댓글로 시를 쓰고, 이것을 시집으로 엮었습니다. 그의 시집에는 건물 외벽을 청소하던 중년 가장의 추락사, 무명 시나리오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 아이에게 먹일 체리를 훔쳤다가 체포된 가난한 엄마, 구제역 파동 속에 무참히 생매장당한 가축들의 비명 등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벽화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혼란스럽기만 일련의 사건들은 '시'라는 렌즈를 거쳐 재구성되면서 자칫 망각 속으로 떨어져 소멸된 위험으로부터 구원되고 있습니다. 그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뜨거운 용광로에 빠져 죽은 20대 청년의 죽음을 누가 기억이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제페토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보잘 것 없고 사소한 목숨들을 기억하는 행위이자, 망각과 무관심의 지옥으로부터 그것들을 구출해내는 시의 힘을 환기하는 일일 것입니다.
시와 기사는 무엇이 다른가요?
(가) 당진서 20대 철강업체 직원 용광로에 빠져 숨져
7일 새벽 2시께 충남 당진군 석문면 한 철강업체에서 이 회사 노동자 김모(29) 씨가 작업 도중 5m 높이의 용광로 속에 빠져 숨졌다. 당진경찰서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용광로에 고철을 넣어 쇳물에 녹이는 작업을 하던 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용광로에는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어 김씨의 시신을 찾지 못하 것으로 알려졌다.
(2010. 09. 07)
(나)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炎)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시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가)는 기사이고, (나)는 기사를 읽고 제페토가 쓴 시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둘을 비교하고 기사와 시가 어떤 차이가 있는 지 찾아 보라고 합니다. 기사는 20대 철강업체 직원의 비극적 죽음을 놀라울 정도로 건조하게 전달합니다. 반면에 시는 이 죽음을 우리의 머리가 아닌 가슴이 뜨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기사와 시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사는 정보의 객관적인 전달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로 인해 주관적이고 부정확한 언어 사용을 지양해야 합니다. 이와 달리 시는 정서의 표현과 전달을 목적으로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우리의 마음이 진동하게 됩니다.
또한 동일한 사건을 기자와 시인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기자는 제3자의 관점에서 익명의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전달하려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먼저 피해자의 어머니의 시점에서 사건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고를 당한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사건이 나와 무관한 사람이 당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 겪은 일이라면 어떨까요? 사고를 당한 젊은이의 모친의 마음을 헤아린 시인은 기자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합니다. 그 결과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외침이 저절로 가슴에서 솟아 납니다. 20여 년간 길러온 내 새끼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그 쇳물로 물건을 만들어 팔려 나간다는 사실을 시인도 어머니도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20대 청년의 애꿎은 죽음을 애도하는 시이자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시이도 하고, 인간의 생명을 돈이나 물질로 환원시켜 생각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시를 기사로 옮겨본다면
제페토의 시 '부활'은 한파 속에 한 노인이 수집한 폐지를 수집소로 가고 있는 뒷모습을 담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쓴 시입니다.
<부활>
어찌 됐건
생을 마친 종이를 부활의 초입까지 나르는 일은
늙은이들의 몫이 되었다
언덕을 오르던 정오
말보로 상자는 납작해진 주동이로
브라질 숲에서 왔노라 자랑을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작에 고향을 잊은 노인은
의심스러운 저울에 무거운 시선을 보태느라
눈이 시렸다
영락없는 푼돈이지만
당분간 목숨은 그럭저럭 붙은 셈이다
장차 자신의 장례비를 외투에 넣고 돌아선 그는
곤궁한 처지를 푸념하는 대신
그깟 외로움 하나 견디지 못한
아들놈의 죽음을 나무랐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어째서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가, 하고
(시 '부활' 전문)
시인은 한 장의 사진 속 인물의 사연을 상상해서 시로 옮겨 놓고 있습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듯한 아들을 그리워 하며 노인은 '어째서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가' 한탄합니다. 폐지를 '생을 마친 종이'로, 폐지 수집을 '부활의 초입까지 나르는 일'로 치환시켜 놓음으로써 시인은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런데 한 장의 사진을 한 편의 시로 옮겨 놓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사진 속 인물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사회학적 상상력,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언어로 적절하게 구성할 수 있는 능력 등일 것입니다. 이처럼 시를 쓰는 것은 종합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시를 읽고 드러난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신문 기사를 작성해 보도록 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나 부사는 가능한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 사실만 건조하게 써보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시의 언어와 기사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게 되니까요.
어조는 왜 중요한가
기사를 읽고 시로 댓글을 다는 제페토의 시선은 세상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시가 다 그렇지는 않고,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가 분명하게 나타난 시도 있습니다.
<체리와 장군>
아버지 때처럼
오늘도 더웠습니다
물려주신 가난은 넉넉했고요
체리를 훔쳤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을 읍소해보고도 싶지만
나라님은 알 바 아닐 테고
가난에 관해서는
얘기 끝났다 하실 테죠
나라를 훔친 분들이
압수수색과 상관없이
비밀창고에서 예술을 논하는 동안에도
그깟 작은 열매나 탐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돌아가 아이들에게
벼슬 같은 가난을
세습해주어야겠습니다.
(시 '체리와 장군' 전문)
시적 대상에 대한 시적 화자의 특유한 말투나 리듬감을 '어조(語調)'라고 합니다. '체리와 장군'은 확실히 앞의 시들과는 다른 어조로 씌여 있습니다. 아이들도 이 시는 무엇인지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진다고 평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느낀 원인을 시에서 찾아 보라고 했습니다. 시를 감상하는 일은 자신에게 유발된 감정의 원인을 시어에서 찾고, 시어가 어떤 감정과 상상을 유발하고 있는지 음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가난은 넉넉했고요'와 '벼슬 같은 가난을 세습해주어야겠습니다'와 같이 반어적으로 표현된 시어를 지적했습니다. 또 '나라님은 알 바 아닐 테고'나 '나라를 훔친 분들이 (....) 비밀창고에서 예술을 논하는 동안' 같은 시어에서 냉소적인 태도가 느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체리를 훔친 가난한 엄마'와 '개인의 부를 위해 비리를 저지른 부유한 장군'이 서로 대비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는 가난의 굴레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저소득 계층의 삶과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더 부자가 되려는 지배층을 대비시켜서 우리 사회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서글픈 사실은 자식들에게 먹이기 위해 체리를 훔친 그녀가 물려받은 '넉넉한 가난'을 아이들에게 '세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만약 시인이 체리를 훔진 엄마에게 초점을 맞춰 시를 썼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녀의 동기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범죄까지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체리 엄마'와 '비리 장군'을 대비시키고,냉소적인 어조로 쓴 시는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진 보고 시 쓰기
제페토의 시 중에는 기사에 실린 풍경 사진을 보고 쓴 시들도 상당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동일한 사진을 보여주고 시로 표현해 보도록 했습니다. 신문NIE 수업이 꼭 기사 읽기에 중점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시로 옮기고, 또 시를 다시 기사로 전환시켜 보기도 하고, 사진 이미지를 시로 표현해 보면서 아이들은 매체들 간의 차이를 저절로 습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학생이 쓴 시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하늘, 구름 그리고 새들>
어제 밤에
침울했던 어둠이 가셨네
오늘 아침
밝게 웃는 파란 하늘이
하얀 흰구름이
새들이
친구 대하듯
내게 밝게 웃어주네
<눈이 오네>
온세상이 하얗게 하얗게
뒤덮혔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던 일
눈사람을 만들어 주는 아버지의 모습
그 모습 사라지고
학원 가서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
직장 일에 지친 아버지의 모습
그 모습이 생생하네
이제 그곳에 있는 건
눈과 한 여인뿐이네
아직 미숙한 점도 많이 보이는 시이지만 이 학생은 사진 속 풍경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는 전날의 어둠과 대비시켜 오늘의 청명한 날씨를 반가운 친구들의 방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시로 표현하지 않고 서사적 사건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입니다. 두 번째 시는 눈이 내려서 즐겁게 뛰놀던 아이들과 아버지의 모습과,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홀로 걷고 있는 여인과 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학생은 눈 내리는 풍경에서 학업과 노동에 시달리는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읽어낸 것이지요.
끝으로 제페토의 시 '그 쇳물 쓰지 마라'에 하림이 곡을 붙인 노래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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