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보고로서 '삼국유사'
일연의 '삼국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고려 시대에 저술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반복해도 아이들은 이 둘을 종종 헷갈려 합니다. 우선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사마천이 '사기'에서 제시한 역사 서술 방식인 기전체에 따라 서술한 책입니다. 편년체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사건을 기술한 역사서라면, 편년체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기술합니다. 그래서 '삼국사기'의 구성을 살펴 보면 '본기'에서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순서로 각 나라의 왕들을 연대순으로 서술하고, '열전'에서는 김유신을 비롯한 삼국 시대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인종 23년(1145)에 편찬된 '삼국사기'보다 약 140~50년이나 늦게 저술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사(遺事)'라는 말은 '남겨진 일'이란 뜻으로 '삼국사기'에서 배제된 사건들이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김부식은 유학자로 유교적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괴력난신(怪力亂神)'과 같은 신기하고 괴이한 사건이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역사에서 배제했습니다. 스님 일연이 바로 그렇게 배제된 것들을 모아 '삼국'의 역사를 다시 쓴 책이 바로 '삼국유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유사'에는 인간과 동물이 사랑을 나눈다거나 사람과 귀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도깨비의 왕이 되어 활약하는 등의 설화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흔히 초등학생들이나 보는 책으로 은근히 폄하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위 우리의 민족 기원 신화인 단군 신화가 최초로 기록된 책이 '삼국유사'이고, 고려의 몽골 항쟁기에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저술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단순한 설화 모음집으로 이 책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 수록된 방대한 구비문학 자료들은 당대를 살아가던 백성들의 생각과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산업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 '삼국유사'는 현대의 창작자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문화적 보고로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왜 옛날의 왕들은 '알'에서 태어났을까?
옛날의 왕들을 보면 유독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몽, 박혁거세, 김수로, 석탈해 등이 그렇습니다. 양막을 뒤집어 쓴 책 태어난 것이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그런 예외적 출생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고대의 저술을 읽을 때는 상징이나 비유로 표현된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올바른 경우가 많습니다. 자, 잠시 연상 놀이를 해 봅시다. 알은 주로 새가 낳고, 새는 주로 하늘을 날아 다니는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네, 그들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한 나라의 시조들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식의 탄생 신화를 '난생(卵生)신화'라 하고 주로 남방 계열에서 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와 달리 하늘에서 신적 존재가 직접 내려 와서 지상의 사람들을 다스렸다고 '천손강림 신화'도 있습니다. 주로 북방 계열 신화로 분류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단군 신화가 유일합니다. 환인의 서자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비롯한 3,000명을 이끌고 지상에 내려와 곰에서 여인으로 변한 웅녀와 결혼해 낳은 자식이 바로 단군입니다. 흔히 단군 신화는 한반도에 거주하던 토착 세력인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이 대결해서 승리를 거둔 곰 부족이 북쪽에서 농사와 청동기라는 신식 문물을 갖고 내려온 이방 부족인 환웅족과 합병해서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수업에서는 아이들에게 소도에 세워졌다고 알려진 솟대 사진을 보여주고 고대인들이 '새'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또 당나라 장회태자묘의 벽화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신라 사진을 찾아 보라고도 합니다. 머리에 새 깃털을 꽂은 조우관을 쓴 모습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새를, 정확히는 '닭'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라의 발상지인 경주의 '계림'이 '닭숲'을 뜻하고, 천축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구구탁예설라'('닭을 공경한다'는 의미)라 부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알에서 탄생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목적이 왕을 신화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당시 왕들은 자신들이 백성들과는 다른 태생이라고 과시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왔거나 하늘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너희를 통치할 자격이 있다! 그런데 이런 통치 메카니즘이 과연 과거에만 존재했던 것일까요? 독재자 히틀러를 마치 신화적 인물로 꾸며맨 나치의 선전부장 요제프 괴벨스나 나치의 선전 영화를 제작한 레니 리펜슈탈은 아마 그러한 신화의 제작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화를 공부하는 이유는 신화의 제작 원리를 파악해 거짓된 신화에 비판적으로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도 포함될 것입니다.
즐거운 신화 읽기
'삼국유사'의 묘미는 무엇보다 다양한 해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 신라 경문왕 이야기입니다. 초등학생 때는 이 이야기를 거짓은 언젠가 탄로나기 마련이다는 교훈을 주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지 '삼국유사'의 원문을 주고 아이들에게 해석해 보도록 했습니다.
(가) 왕의 침전에는 매일 날이 저물면 무수한 뱀들이 몰려들었다. 궁인들이 놀라 떨며 몰아내려 했다. 왕이 말했다. “과인은 뱀 없이는 편히 잘 수가 없다. 금하지 말라.” 매번 잘 때마다 혀를 내밀면 온 가슴을 덮었다.
(나) 즉위하자 왕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자랐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알지 못했다. 복두장이 한 사람만 이를 알았다. 하지만 평생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장차 죽으려 할 때, 도림사 대숲 속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를 향해 외쳐 말했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고 소리냈다. 왕이 이를 미워하여,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러자 바람이 불면 다만 “우리 임금님은 귀가 길다.”고 소리를 냈다.(<삼국유사>, ‘제48대 경문대왕’)
아이들은 경문왕이 징그러운 뱀이 없으면 잘 수도 없었다는 말에 기겁을 합니다. 게다가 잘 때 입 밖으로 나온 혀가 온 가슴을 덮었다니요? 그런데 이 경문왕이 바로 '당나귀 귀'의 주인공이라 하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런 경우 아무런 편견없이 텍스트를 꼼꼼하게 다시 읽어 보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을 잠시 접어두어야 옛 사람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뱀들이 밤에 왕을 보호하기 위해 몰려 들었다는 사실에 눈에 들어 옵니다. 또 '긴 혀'를 비유로 해석하면 ''말이 많다'는 뜻은 아닐까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조합해 보면 이 이야기가 처음과는 달리 보입니다. 즉 왕은 밤마다 '뱀'으로 상징되는 측근들을 침소로 불러놓고는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쏟아냈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문왕은 왕위 즉위 과정이 순탄치 못했고, 재위기간 동안 역병이나 홍수 등 숱한 재난을 겪어야 했고, 귀족들의 각종 반란과 모략을 진압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실제 정황을 고려하면 제법 그럴싸한 해석을 해낸 셈입니다.
그 다음 경문왕은 왜 '당나귀 귀'를 갖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야기 후반부에는 '당나귀 귀'에서 '큰 귀'로 달라지게 되었을까요? 우선 이 이야기가 만지는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미다스 왕 이야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오뉘소스의 축복(혹은 저주)를 받아 미다스 왕이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판과 아폴론의 음악 대결에서 개인적 친분 때문에 판의 편을 들어서 아폴론의 저주를 받아 당나귀를 갖게 된 것은 잘 모릅니다. 서양에서 당나귀는 흔히 '어리석은 사람'을 놀리는 말로 사용된다는 것을 떠올리며 경문왕이 '당나귀 귀'를 가졌다는 소문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문왕은 대나무 숲을 잘라 버리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게 됩니다. 김종길 시인의 시 '성탄제'에 나오는 붉은 산수유 열매는 예전에 해열제로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문왕 고사에서 산수유의 '붉은 색'은 나쁜 기운을 쫓아버리는 '벽사'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나무 숲'이 '산수유 밭'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왕에 대한 나쁜 여론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볼 경우 이 이야기는 경문왕이 자신에 대한 나쁜 여론을 잠재우고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했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 뒷부분에 경문왕이 갖게 된 '큰 귀'는 동양에서 삼국지의 '유비'나 부처에서 볼 수 있듯 '덕이 많이 지혜로운 사람'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서동이 '서동요'를 부른 까닭은?
학생들에게 서동이 '서동요'를 유포해서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만든 행위는 '지혜'인지 '사기'인지 물어 보면 재미있는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개의 남학생들은 가난한 백제 남자가 꾀를 내어 신라의 공주를 아내로 만든 것은 신분과 국경을 뛰어넘는 지혜로운 행위였다고 평가합니다. 반면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선화 공주가 서동의 사기 때문에 억울하게 궁궐에서 쫓겨난 것을 문제 삼으면서 치졸한 사기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남학생들에게는 본인들이 선화 공주였어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되묻습니다. 그리고 여학생들에게는 오늘날의 관점으로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되묻습니다. 그리고 백제의 서동와 신라의 선화 공주가 결혼한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며, 오히려 백제의 무왕이 된 서동은 40년 간의 재위 기간 동안 백제의 그 어떤 왕보다 많은 13번이나 신라와 전쟁을 벌인 왕이었다고 알려줍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동 이야기가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다는 점입니다. 왜 백제의 백성들을 이 이야기를 그토록 좋아했던 것일까요? 서동과 선화 공주의 러브 스토리가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결혼은 적대적인 두 집안 간의 '화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백제 출신 서동과 신라의 선화 공주의 결합 역시 두 나라 간의 평화와 화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백제 무왕의 계속적인 전쟁에 많은 피해와 상처를 입어야 했던 백제의 백성들은 의도적으로 그들 간의 러브 스토리를 유포시켜 평화를 희구하는 자신들의 바람을 왕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볼 경우 서동 이야기는 평화를 간절하게 원하던 당대 사람들의 소망이 표현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서동을 '영웅'으로 볼 수 있는지 또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사기꾼에 전쟁광인 사람을 어떻게 '영웅'으로 부를 수 있냐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도덕과 관습을 주시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신화 속 인물을 '트릭스터(Tricster)'라 부릅니다. 영화 '토르'에 나오는 '로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장난과 사기 등을 통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장난꾸러기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창조성, 지혜, 용기 등의 가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활동을 통해 기존 질서가 비판되고 새로운 사회로 변모하게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들 역시 '영웅'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분이나 국가의 차이를 뛰어 넘고, 갈등으로 치닫는 상황을 비판하고 평화로운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서동 역시 한 명의 '영웅'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재미있는 고전 읽기를 꿈꾸며
'삼국유사'에는 이 외에도 죽은 진지왕의 영혼과 살아 있는 도화랑 간의 결합에서 태어난 도깨비 왕 비형랑의 이야기나,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도 춤과 노래를 불러 역병을 감동시킨 처용의 이야기 등 흥미진지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수업을 진행하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무작정 읽게 했을 경우 학생들은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텍스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보도록 하고, 함께 논의를 거쳐 예상하지 못했던 해석에 도달했을 때 아이들이 더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래서 제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해놓고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해석된 내용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을 해석하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유익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습니다. 실제로 수업이 끝나고 '삼국유사'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는지 몰랐다고 학생들이 반응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전을 단순히 읽기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유사'를 읽은 후에는 학생들에게 고대의 왕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세상을 통치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담아 자신의 탄생 신화를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직접 주몽이나 박혁거세가 되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지요. 이런 식으로 해석과 창작이 맞물린 고전 읽기도 시도해 볼 만한 수업 형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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