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상과학 소설을 많이 읽자
1869년 출간된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는 네모 선장이 이끄는 노틸러스 호라는 최첨단 잠수함이 등장합니다. 훗날 이 책이 모티브가 되어 미 해군이 실제로 잠수함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가 1914년에 발표한 '해방된 세계'는 원자폭탄의 연쇄 핵반응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떤 물리학자들도 핵폭탄이 가능할 것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1945년이 되어서야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최초의 원폭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1950년에 발표한 <아이 로봇>도 최근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 등장하며 더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상과학(SF) 소설이 미래를 정확히 예견했기 때문에 그 장르의 책들을 찾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기술은 현재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심급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입니다. SF소설은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 입구로 안내할 수 있는 좋은 마중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상과학 소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테크놀로지가 현재화된 미래 사회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유전공학이 상용화된 세상이나 인간의 노동을 로봇이 완전히 대체한 세계를 상상해 보면서 다가올 기술적 충격에 미리 대비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미래의 불행을 막기 위해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필립 K 딕, 로버트 A 하인라인과 같은 공상과학 소설의 고전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읽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영화화된 류츠신의 <삼체>나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코맥 매카시의 <로드>, 그렉 이건의 <쿼런틴>, 김초월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도 적극 추천하는 작품들입니다. 물론 수업에서 함께 읽은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는 공상과학 소설 입문용으로 청소년들이 읽기에 매우 적합한 작품입니다.

당신이 조너스의 마을에 방문한 기자라면
학생들이 시청한 영화나 읽은 책에 대해 반드시 줄거리 요약을 시키고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도와줄 수 없고 학생들 스스로 반복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수 백 페이지가 되는 책을 몇 줄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은 공부를 해나가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줄거리 요약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책의 내용을 잘 기억할 수 있고, 또 책 전체의 주제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어떤 학생들은 줄거리 요약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 학생들의 특징은 읽은 책에서 중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요약은 핵심이 되는 뼈대를 간추려 재배열하는 작업인데,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지 않고 대충 읽으니 줄거리가 무엇인지 기억을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줄거리 요약은 작가가 미학적 의도로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배열한 플롯을 읽고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짜맞추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플롯을 읽는 것이고, 스토리는 그러한 플롯에서 독자가 재구성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굳이 어려운 플롯이나 스토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책을 많이 읽어온 학생들은 이 두 가지 층위가 서로 구분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줄거리를 파악하도록 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인물 관계도를 그려서 인물들 간의 관계를 설명하다 보면 저절로 이야기의 줄기가 정리되기도 합니다. 또 인물들이 이동하는 공간을 지도로 만들어 보게 하면 이야기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글로 쓰기 어려워 하는 경우 책의 줄거리를 직접 말로 표현해 보도록 합니다. 말로는 요령있게 정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학생이 한 말을 글로 옮겨 적게 합니다.
이 책의 경우 학생들에게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을 방문한 기자가 되어 이 곳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과 이 마을만의 독특한 특징을 정리해 보도록 합니다. 그러면 낯선 세계의 특징이 손쉽게 파악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을 마을을 안내하는 기사를 작성하도록 해서 학생들이 비판적인 시선으로 소설 속 공간을 바라보도록 합니다.
먼저, 조너스의 커뮤니티를 방문했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입니다. 1) 눈동자 색이나 피부색 등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차이를 드러내면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2) 거울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거울은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식시키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3)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곳에서 그 단어는 너무 무의미해서 거의 쓰이지 않으며, 그 대신 가족들 간에도 "어머니, 아버지는 저와 즐거우세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4)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고, 이 마을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정확히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난감은 '위안물'로, 전쟁은 '내 편 네 편 놀이', 직업은 '직위'로 불러야 합니다.
이 마을에서는 1) 가정은 엄마, 아빠, 남자아이, 여자아이 4명으로 구성되며, 아이는 대리모에 의해 출산되어 가정에 배정됩니다. 2) 산모로 지정된 여성은 평생 3명의 아이를 낳고, 그 후에는 평생 육체노동자로 살아 갑니다. 3) 신생아는 매년 50명으로 제한되며, 쌍둥이의 경우 둘 중 하나는 '임무해제'를 당합니다. 4) 구성원들은 아침마다 전날에 꾸웠던 꿈의 내용을 공유해야 하며, 저녁에도 하루 중 느낌 감정을 가족들 앞에서 철저하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5) 결혼이나 직업 선택 역시 마을 원로회의 철저한 심사를 거쳐 개인에게 지정됩니다.
조너스의 커뮤니티는 왜 저런 규칙들을 만든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그런 공간에 살게 된다면 무엇이 편하고, 또 무엇을 불편하게 생각할까요? 저러한 공동체를 상상해낸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요? 마을의 특징을 정리하게 되면 뒤따라 나오게 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학생들은 비판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커뮤니티는 유토피아인가
만약 우리가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을 방문하게 되면 우선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햇볕을 포기하고 차이를 없애면서 색깔 역시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상의 소음 외에 어떤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된다면, 그들이 예의바르고 친절할 지 모르지만 슬픔, 고통, 기쁨, 사랑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제거된 차가운 기계처럼 느껴지게 될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늘 질서정연하고 예측 가능하지만 우리가 '인간다움'이라 부르는 것은 전혀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늘 같은 상태'(sameness) 때문에 제거해버린 색깔, 음악, 다양한 감정이야말로 우리를 생동감 넘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2014)에서 기억 전달자의 후계자로 지목된 주인공이 스승으로부터 기억을 전달받자 무채색으로 보였던 모든 사물들이 다채로운 색깔로 보이는 놀라운 장면이 연출됩니다. 차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그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구와도 공유할 필요가 없는 자신만의 기억을 갖게 된 주인공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만 홀로 세상을 풍요롭게 지각하고, 매순간 쏟아지는 다양한 감정들을 시시각각 느끼게 되지만, 다른 누구와도 그러한 느낌과 생각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외롭게 만듭니다. 마치 동굴 밖에 밝게 빛나는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동굴 안 사람들에게 전하지만, 태양 때문에 생겨난 그림자를 현실이라 믿는 사람들은 오히려 진실을 전한 그를 무시하고 따돌리게 된다는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차이는 차별을 낳고, 차별은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지며, 갈등고 대립은 결국 전쟁과 같은 파국을 유발하기 때문에 '늘 같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커뮤니티의 논리는 이미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도 등장합니다. 그 소설에서 라파엘은 돈이 있는 한 모든 사람이 정의롭고 행복하게 살 수 없기 때문에 화폐와 사유재산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진정한 유토피아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조너스 마을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평등을 강조하는 유토피아가 전체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 역시 공유하고 있습니다.
신생아를 매년 50명으로 제한한다는 발상은 맬서스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맬서스는 <인구론>(1797)에서 인구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훗날 식량 부족 때문에 사회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빈곤을 줄이려는 자선단체나 정부의 시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녀를 더 많이 낳게 만들어 사회 생산 능력에 더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비생산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커뮤니티가 성욕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하게 하고, 대리모를 통해 일정 수의 아기만 낳도록 하는 것은 맬서스의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 소설에는 다양한 유토피아 담론들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러한 유토피아를 꿈꿔왔는지 생각해 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봅니다.
성장소설로서 <기억 전달자>
조너스는 스승이 마지막까지 혼자 간직하고 싶었던 음악에 대한 기억을 전수해주려 하자 단호한 태도로 거부합니다.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은 그런 기억들이 한 개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조너스는 스승이 소중하게 지켜온 기억을 존중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이 소설이 일종의 성장소설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억 전달자와 기억 전수자는 일방적으로 기억을 전해주고 전달받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스승의 기억을 전달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제자가 그것을 거부한 것은 조너스가 더 이상 기억을 전달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한 개인의 개성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인 기억의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 이 소설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어떤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 추억에 잠기게 합니다. 지금의 여러분을 만든 잊지 못할 기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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