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한 아이 소피
소피는 이상한 아이입니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 대신 모자, 리본, 단추, 끈 같은 것들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린이 그림책보다도 패션 잡지 뒤적이는 걸 더 좋아했던 소피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비단 꽃이나 커다란 진주 장식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거나 양말과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학교에 갔습니다. 반 아이들은 그런 소피를 '괴상한' 아이라 생각했고, 급기야 담임 선생님은 학교는 사육제 장소가 아니니 소피가 그런 이상한 복장으로 등교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습니다. 소피는 대체 왜 이토록 옷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소피의 부모님이라면, 혹은 소피의 담임 선생님이라면 소피 같은 아이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아마 현실에서 소피 같은 아이를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참 별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교장 선생님처럼 옷에 대한 소피의 과도한 집착을 의상도착증으로 해석해서 전문의와 상담해 볼 것을 진지하게 권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소피는 옷 입는 것 하나만 뻬놓고는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예의도 바르고, 사회성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아주 괴짜 같아 보이지만 소피는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는 아이입니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소피에게 왜 그렇게 옷을 입냐고 먼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균형이나 단순함을 싫어하는 소피는 오히려 반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여깁니다. 얼마든지 다르게 모양을 낼 수 있는데도 왜 늘 똑같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오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는 다 다른 애들과 비슷하게 하고 싶지만 옷 입는 거 한 가지만 다르게 하고 싶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옷 입기는 시 쓰기와 같은 거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시를 쓰는 것처럼 옷을 입는 거예요. 내 몸은 종이고요, 두 손은 만년필, 두 눈은 영감의 장이에요. 모자는 느낌표이고, 스카프는 쉽표, 레이스는 말줄임표죠."
소피는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전선 위에서 곡예를 부리고 있는 새들, 베란다를 장식하는 쇠로 된 난간, 유모차를 타고 가는 아기 등 소피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소피에게 이 세상은 마치 거대한 연극 무대 같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소피는 모든 것들을 음미하듯 천천히 걸음을 걷습니다.
소피의 말과 행동을 종합해 보면 소피에게 옷이란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표출된 개성은 소피가 이 세상에 유일한 개별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 증명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우리 또한 소피처럼 먹고 마시는 것, 즐겨 방문하는 장소, 좋아하는 음악 등을 통해 개별적 취향과 관심을 드러냄으로써 자신만의 개체성을 표현합니다. 따라서 소피의 독특한 복장 취향을 정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매도할 근거가 부족합니다. 오히려 '별난 아이' 소피는 학연, 혈연, 지연 등을 기준 삼아 무리를 이루려는 경향이 강한 우리에게 왜 모두 똑같아지지 못해 안달이냐고 반문합니다. 소피와 같은 아이를 사회 속에 품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그 사회의 경직성과 획일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어떻게 창의력을 가르칠 것인가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별난 소피가 아니라 소피를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입니다. 소피의 부모님은 딸을 윽박질러 평범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도록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소피를 무조건적으로 감싸고 돌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딸과 대화를 해서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해 보려는 한편, 몰래 소피의 뒤를 밟아서 혹시 자신들의 모르는 자식의 모습이 있는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선생님의 지적에 우아한 언어로 딸의 입장을 옹호하면서도 심리 치료를 받아보라는 충고에 적극 응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보여주는 이런 살뜰한 균형 감각이 소피가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림에 부족함이 없게 만드는 든든한 버팀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또한 '교육'이란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교육관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개성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같음'보다는 '다름'을 너그럽게 인정하고 용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육에서도 하나의 정답을 빨리 찾아내는 수업이 지양되고 공통의 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발견해내는 수업을 지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을 이용해서 어떻게 창의적인 수업 교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우선 소피가 이상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도 좋은지를 놓고 찬반토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토론을 통해 개성의 표현과 공동체의 질서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나와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토론은 소피라는 개인을 배제하고 타자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특이한 개인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국한되어 논의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피의 입장에서 자신은 왜 그런 옷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타자인 소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옷을 디자인해보는 것도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단,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그치기보다는 왜 그런 옷을 디자인했는가에 대한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설명해 봄으로써 자신이 표현하려 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것인 무엇인지를 재인지하게 됩니다. 이런 메타인지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아이들이 입는 옷은 누가 고른 것인지, 또 어떤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는지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이 평소에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결국 책이란 생각을 확장시키는 매개체입니다. 단순히 책에서 지식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확장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자신과 세계를 둘러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고,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점에서 '확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읽기를 지식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만 생각한다면 독서 수업은 아마도 가장 따분한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생각을 확장시키는 수단으로 이해한다면 독서만큼 신나고 흥미로운 일도 드물 것입니다.
'학년별 책읽기 > 3학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앤 파인/윤재정 번역, 삐뚤빼뚤 쓰는 법, 논장 (0) | 2025.04.05 |
---|---|
방정환의 금시계 (0) | 2025.02.23 |
로알드 달/햇살과나무꾼 번역, 멋진 여우 씨, 논장 (0) | 2025.02.08 |
정해왕, 복 타러 간 총각, 보림 (0) | 2025.01.11 |
모니카 페트/김경연 번역,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행복한 청소부, 풀빛 (6) | 2024.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