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는 어떻게 '행복한' 청소부가 되었나
이 책의 주인공은 독일의 거리 표지판을 닦는 평범한 청소부입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똑같은 거리의 표지판을 닦아 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질문하는 것을 엿듣게 됩니다. 아이는 표지판에 쓰인 '글루크'란 글자를 보고 행복을 뜻하는 '글뤼크'(Glück)에서 한 부분이 지워진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의 엄마는 웃으면서 이 거리의 이름은 '행복'이 아니라 '글루크'라는 작곡가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청소부는 무엇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수 년이나 표지판을 닦아 왔지만 아이와 마찬가지로 '글루크'가 작곡가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청소부는 자신이 닦고 있는 표지판에 쓰인 음악가들과 작가들에 대해서 알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작곡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와 발음이 유사한 독일어 '글뤼크'는 '행운' 혹은 '행복'을 뜻합니다. 청소부는 어린 아이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자신이 그 동안 해오던 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만약 그가 엄마와 아이의 대화에 '주목'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가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우연한 만남이 '행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가 그 뒤에 표지판에 적힌 음악가들에 대해 알기 위해 레코드판을 사서 듣거나 연주회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우연한 '행운'이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평범한 청소부가 '행복한' 청소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직업에 진심으로 헌신했던 그의 마음가짐과 사소한 것도 지나치지 않는 호기심 때문입니다.
그는 왜 대학의 강연 부탁을 거절했을까?
청소부는 이미 그전부터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남들이 뭐라 하든 거리의 먼지와 자동차 매연을 뒤집어쓴 표지판을 깨끗이 닦는 일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행복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이다. 행복은 대상이 아니라 재능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행복은 소유하고 있는 대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에 의해 정해진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사소하고 하찮게 보이는 일에 그는 남다른 가치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음악, 미술, 소설 등 예술작품을 익히고 배우며 더 행복해졌습니다. 예술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서 그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신문을 뒤적여서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수첩에 적어놓은 공연 날짜에 맞춰 공연장을 들르고, 자신에게 선물한 레코드플레이어로 밤새 음악을 듣고, 일을 하면서 오페라의 곡들을 휘파람으로 따라 불으며 그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충만감을 만낄할 수 있었습니다. 또 틈틈히 도서관에 들려 작가들의 책을 빌려서 읽으며 교양과 양식을 쌓아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청소부는 예술작품을 감상할 만한 교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편견을 깨부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이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 했던 것은 청소부가 대학으로부터 받은 강연 제의를 거절한 결정입니다. 방송에도 출연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청소부보다 더 보수도 좋고 사회적 대우도 나아질 텐데 왜 굳이 청소 직업을 고집했는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성공을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사회에서 성장해온 아이들로서는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돈과 명성을 포기하는 그의 결정이 이해될 리 만무합니다.
아이들한테 청소부가 대학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경우 그가 해온 음악 감상과 소설 읽기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전에는 자신만의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해왔던 일이 누군가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 되는 순간 그 일은 그의 삶을 짓누르는 짐이자 과제로 변하게 됩니다. 그는 비록 전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사심없이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충만함은 영영 사라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돈은 적게 벌지만 행복한 삶'과 '돈은 많이 벌지만 행복하지 않은 삶' 중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물어 보기도 합니다. 개중에는 짧은 시간 내에 돈을 왕창 벌어 놓고 은퇴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한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알아내서 꼭 선생님한테도 알려주기 바란다고 부탁했습니다.
미래에 살아남기 위하여
아이들한테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할 지 글을 써보도록 합니다. 유튜버, 아이돌, 의사 등 아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해마다 변화합니다. 어떤 직업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을 하며 살면 네가 행복할 지 상상해 보고 글을 쓰라고 합니다. 그러면 좋아하는 게임을 실컷 하며 살겠다는 아이, 일은 하지 않고 그냥 놀러 다니며 살고 싶다는 아이도 나타납니다. 이런 아이들한테는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한다는 의미도 있으니 너희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게임을 소개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합니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잘 놀지 못하는 친구들한테 재미있게 노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일종의 진로탐사 작업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그리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삶에 도달하기 위해 정해진 궤도가 있고 아이들은 무작정 그 길을 걷도록 강요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에 의한 기술 발달과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수의 직업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업 교육 역시 '나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가'보다는 '나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로 전환해야 합니다.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또 어떤 직업이 새로 만들어지게 될 지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직업을 소개하고 그 중에서 선택하라는 식의 교육은 더 이상 무의미합니다. 그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깨닫도록 해서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교육이 필요하고,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호기심을 갖고 꾸준히 탐구하는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행복한 청소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