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3학년

정해왕, 복 타러 간 총각, 보림

ddolappa72 2025. 1. 11. 15:59

 

나는 왜 이리도 운이 없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이 오직 나한테만 너무나 야박한 것 같아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나는 나쁜 짓도 안 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리 사는 게 힘들지? 왜 나한테만 억울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 나를 속상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왜 이리도 운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불운의 저주를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총각이 살았습니다. 그는 부모나 형제도 하나 없는 외톨이였습니다. 비빌 언덕도 없는 처지에 지지리도 가난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쭉정이만 열리고, 소 돼지를 기르면 며칠 못 가 시름시름 앓다 죽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총각은 세상의 모든 불운이란 불운을 다 짊어지고 태어난 듯 했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만 푹푹 내쉬던 총각이 딱해 보였는지 동네 할머니가 이런 말을 문득 던지고 지나갔습니다. "여보게, 자네가 타고난 복이 그뿐인 걸 어쩌겠나. 하늘나라 하늘님한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 " 그 순간 총각의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래, 하늘님한테 가서 복을 타 오면 되겠구나!' 그리곤 당장 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 무작정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데 만약 총각이 자신의 불운만 한탄하며 고향에 머물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날까지 세상과 자신을 원망하며 고통스럽게 살지 않았을까요? 지금껏 살아온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했으면 총각처럼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훌훌 던져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너로 인해 존재한다

여행을 떠난 길 위에서 총각은 딱한 처지의 인물들과 차례로 만나게 됩니다. 혼인만 하면 첫날 밤에 신랑이 번번히 죽고 마는 박복한 젊은 여인, 삼 십 년이나 정성스레 나무를 길렀는데 한 번도 꽃이 피지 않아 속상한 노인, 삼 천 년이나 공을 들였으나 용이 되지 못해 절망한 이무기. 자신의 처지가 그들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 나은 것도 아닌데 오지랖 넓은 총각은 그들의 고민을 찬찬히 들어주고 하늘나라에 가서 하늘님께 사연을 알아오겠노라 덮석 약속까지 합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총각의 이런 넉넉한 마음씀씀이 덕택에 그는 부자가 되고 어여뿐 여인과 혼인까지 하게 됩니다. 그가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는 빈손으로 여행을 끝마쳤을 것입니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는 속담처럼 세상에서 성처받고 외로웠던 총각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 공감하고, 그들이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문제들을 함께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의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총각이 자신의 곤궁에만 몰입해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다면 그를 집요하게 뒤쫓는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일상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불운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자신의 운 없음을 과장해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로 너른 시선을 향할 때 우리가 떠안고 고민하는 문제거리들도 해결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옛 이야기 속에 한 개인은 고립되거나 독립된 존재로 나타나지 않고 다른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총각이 아무리 부모형제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라고 하나 그 역시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나'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총각이 타인들의 질문을 소중히 여기고 해결해주려 노력한 덕택에 자신이 품고 있던 인생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너'로 인해 존재한다는 조상들의 놀라운 혜안을 담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

사람은 자신의 실패나 불행의 원인을 자신 안에서 찾으려 하는 대신 외적 환경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손쉽고 한결 마음이 홀가분하기 때문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처럼 신포도를 탓하며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총각 역시 처음에는 불행의 원인이 자신을 박복하게 만든 하늘님에게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 따지기 위해 하늘길 여행을 떠난 것이겠지요. 그러나 총각이 막상 하늘님을 만났지만 자신의 복을 더 늘릴 수는 없었습니다. 누구나 정해진 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놀라운 점은 총각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정해진 운명을 극복해 냈다는 것입니다. 총각의 노력이라 말하지만 그가 실제로 한 일은 고향을 떠나 여행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들어주고, 그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전부입니다. 실제로 그가 지신의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한 일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는 그저 성심을 다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 했고, 이웃들의 도움으로 그에게 결핍되었던 것들이 채워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하늘이 정한 운명은 없다고 선언합니다.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한들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서로 도우며 극복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총각이 아니라 총각으로 대표되는 가난한 사람들 전체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늘로 표상되는 나랏님이나 고관대작이 불쌍한 백성들의 궁핍하고 신산스런 삶을 외면할 때도 가난한 백성들은 상부상조해가며 서로의 목숨줄을 이어왔습니다. 삼 십 년이건 삼 천 년이건 계속되는 역경을 견디며 이 땅을 지켜온 것은 바로 그들입니다. 수많은 왕조가 부침을 겪으며 영욕을 반복할 때도 변함없이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생명을 간직해온 경험을 해온 사람들만이 이런 지혜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질문의 힘

총각을 세상 끝까지 추동하던 힘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지? 그는 이 물음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세상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들이 행복해져야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묻는다는 것은 행복과 지혜로 나아가는 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기자가 되어 총각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만들어 보게 합니다. 좋은 질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만든 질문만 봐도 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금방 드러납니다. 그런 다음 총각이 되어 자신이 만든 질문에 대답을 해보도록 합니다.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총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연습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메타인지를 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텍스트 바깥에서 인물에게 질문하고, 텍스트 안의 인물이 되어 질문에 대답하는 연습을 해보면서 아이들은 입체적으로 텍스트를 이해하게 됩니다.

책을 읽고 질문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닙니다. 질문을 통해서만 나와 책은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묻지 않는다면 책은 절대로 꼭꼭 숨겨준 지혜를 나에게 펼쳐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 없이 책을 읽게 되면 지식은 조금 늘어날지언정 지혜는 결코 생겨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책 자체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 책의 경우 우리에게 '복이 없다고 생각할 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 없는 총각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책이 던진 질문에 우리가 대답을 해보려 노력할 때 이야기 속 지혜가 우리 삶 속에 스며들게 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답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