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6학년

조지 오웰/김욱동 번역, 동물 농장, 푸른숲주니어

ddolappa72 2024. 12. 7. 19:56

 

<동물농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이 해외에서 제일 먼저 번역된 나라는 놀랍게도 한국입니다. 1948년 공보처 관료인 김길준이 이 소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번역해 출간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미국 해외정보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란 추측이 유력합니다. 당시 수립된 남한정부는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표명하기 위해 이 책을 홍보 수단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책이 소개된 이런 시대적 한계로 인해 오웰의 이 소설은 공산주의의 극단적 파행성을 부각시키고, 상대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반공소설로 독해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는 소련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작품으로 읽혀 왔습니다. 그래서 농장 주인인 존스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돼지 메이저는 마르크스,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 나폴레옹이 내쫓아낸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독서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독서 방식은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작가가 현실로부터 소재를 취했다고 해도, 작가는 그 소재를 예술적 의도로 변형시키고 가공해서 작품을 구축합니다. 따라서 작품은 현실과 일대일의 대응 관계를 맺지 않고 항상 그것을 넘어서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작품을 외적 현실의 소박한 반영으로 이해하는 것은 예술작품이 지닌 가능성을 제약시킬 뿐만 아니라 본래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작품이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을 풍자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면 21세기에 굳이 이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독해 방식은 평생 철저한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조지 오웰의 정치적 신념을 무시하고 오해한 것이어서 그릇된 것이기도 합니다.

오웰의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데는 그것이 우리 시대에 만연한 전체주의적 경향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전체주의가 특정한 이념이나 체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그래서 정반대의 이념을 지닌 파시즘과 공산주의 체제 모두에서 탄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대중들이 트럼프 같은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아렌트의 책들이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등장하는 핵심적 요소는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개인들의 대중'이라고 분석합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책임과 권리가 주어진 '존중받는 시민'으로 느끼지 못하고 포기와 체념에 익숙해진 잉여인간으로 전락해버렸다고 판단하게 되면, 개인은 스스로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고 약속하는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고,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폭력이 정당화되면서 전체주의가 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언제든 전체주의 체제로 전락해버릴 위험에 처한 21세기의 민주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적극 권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독재 권력의 메카니즘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민주 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하는데 이 책이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재 권력에 대한 보편 서사

모세가 억압받던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는 대표적인 해방 서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미국인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전쟁을 할 때도 반복해서 읽혔고, 미국에서 흑인들이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항의할 때도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일제 시대 독립을 꿈꾸던 조선인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폭력적 억압과 불의한 착취가 행해지는 현실에 맞서 싸우며 자유와 해방을 열망하던 사람들에게 출애굽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선 이야기로 작용했습니다. 심지어 헐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수많은 영화들에서도 모세의 해방서사는 심심치 않게 등장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좋은 이야기가 지닌 힘이 무엇인지 잘 시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웰의 <동물 농장>은 독재적 통치가 일어나는 사회에 항상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서사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개인이나 특정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른 동물들을 감시하고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이야기는 어느 사회에서나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군부 독재의 경험을 가진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농장주를 내쫓고 탄생한 공화국인 '동물농장'은 메이저 영감이 꿈꾸던 세상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면 신세계가 열릴 줄 알았지만 동물에 의한 동물의 착취가 더 가혹하게 횡행하는 지옥일 뿐이었습니다. 왜 메이저 영감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을까요?

우선 권력욕이 강한 나폴레옹이 자신과 같은 지도자였던 스노볼을 내쫓고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폴레옹은 비밀스럽게 사냥개를 키워서 경쟁자를 추방하고, 다른 동물들을 감시했습니다. 독재자들이 비밀경찰이나 무장 친위대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권력을 독점한 나폴레옹은 의회를 폐지하고,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달합니다. 독재자란 원래 다른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혼자 말하는 자입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 분립은 무시되고 지켜지지 않습니다. 독재자에 빌붙어 사익을 누리는 측근 돼지들이 나폴레옹을 우상화하는 모습은 소위 전두환 정부 당시 '땡전 뉴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나폴레옹이 내린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옛 농장주가 복귀할 것이라고 동물들을 협박하는 모습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상기시키며 국민들을 겁박하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가

이 소설은 나폴레옹이 어떻게 독재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는가를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독재를 하게 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인물이 누구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놀랍게도 독재자 나폴레옹보다 다른 인물들을 거론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학생들에 따르면 나폴레옹처럼 권력을 독점하려는 인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그러한 잘못된 인물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다른 세력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학생들은 언론을 담당한 스퀼러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가 나폴레옹의 실정을 지적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전달했다면 나폴레옹이 독재 정치를 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거라 말합니다. 언론이 독재를 옹호하고 비호해주었기 때문에 독재 체제가 유지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수많은 독재 권력들이 정권 유지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언론을 장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의외로 복서입니다. 복서는 항상 "내가 더 일하겠다,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라고 말하며 묵묵히 나폴레옹을 지지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전투에서 입은 총상이 제대로 낫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다 쓰려져 폐마 도살업자에게 팔아 넘겨지고 맙니다. 학생들은 복서가 아무리 나폴레옹을 지지했더라도 그의 말을 의심해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치 지도자의 말을 무조건 수긍하고 따르는 것보다는 비판적인 태도로 나폴레옹을 견제했더라면 그렇게 비참한 최후는 맞이하지 않았을 거라고 아쉬워 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나폴레옹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보다는 대화로 의견을 조율하는 소통형 리더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독재의 가장 큰 책임이 스퀼라와 복서에 있다고 지적한 것은 언론과 시민의 역할이 민주주의 사회를 지켜가는데 중요하다는 인식을 보여준 것입니다. 언론이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이 되어 감시견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부정부패가 판치는 사회가 되고 맙니다.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특정 정당의 강령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추종할 경우 그 사회 역시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으로 통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충분히 민주적인지 따져보고, 그러지 못하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서 있는지 함께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