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6학년

구드룬 파우제방/함미라 번역,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보물창고

ddolappa72 2024. 11. 24. 19:39

 
체르노빌은 지나간 사건인가

우리는 1984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불행했던 과거의 사건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HBO에서 방영한 미니시리즈 <체르노빌>(2019)을 시청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리라고 봅니다.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홍보되는 원자력이 실은 원자폭탄 개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군사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위험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위험한 물질보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부 당국자들의 거짓과 기만이 피해의 규모를 더 키웠다는 사실이 더 공포스럽게 다가옵니다. 

여기에 추가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의 목소리를 10여년에 걸친 취재를 통해 책으로 묶어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까지 읽고 나면 저 불행하고 끔찍한 사건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는 충격적 인식에 도달하게 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유출된 오염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 당국의 태도를 경험했다면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체코의 아동문학가 구드룬 파우제방이 쓴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1983)은 198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핵전쟁의 위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후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사고를 다룬 <구름 : 핵 구름 속의 아이'로 번역>(1987), 원자력 사고 41년 후의 세계를 그린 <핵폭발 그 후로도 오랫동안>(2012) 등을 발표해 원자력과 전쟁의 위협을 경고하는 청소년 도서를 지속적으로 써 왔습니다.
 

체르노빌 핵참사를 다룬 HBO TV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의 포스터



핵폭발 이후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이 소설은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아빠 클라우스, 엄마 페르바트, 누나 유디트(15세), 주인공 롤란트(12세), 동생 케르스틴(4세)은 쉐벤보른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할아버지 댁으로 가던 중 근처의 대도시 풀다에 핵폭탄이 투하된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간신히 할아버지 댁에 도착한 그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참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됩니다.

우선 학생들에게 롤란트 가족이 목격한 핵폭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관련 어휘들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섬광, 돌풍, 버섯 구름, 검은 비, 방사능 낙진 등의 단어들이 뜻하는 바를 확인하고, 핵폭탄이 어떻게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지 살펴보도록 합니다. 그런 다음 소설에서 원자병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찾아 보도록 합니다. 멈추지 않는 갈증, 구토, 설사, 고열, 다발로 빠지는 머리카락, 흔들리는 이와 각혈, 온몸에 돋는 짙은 반점과 점막을 뒤덮은 피.

그리고 핵폭발 이후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찾도록 합니다. 사방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음식과 식수가 부족해지고,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을 치료할 의사나 약도 턱없이 모자라게 됩니다. 게다가 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돌며 희생자는 더 늘어나고, 산모들은 기형아를 출산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전쟁 자체가 무섭고 공포스런 것이지만 핵으로 인한 피해는 인간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지속적인 고통을 남긴다는 점에서 더 끔찍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죽음의 재라 불리는 방사능 낙진이 모든 자연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식수나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게 되어 더 힘들었을 거라 말합니다. 그리고 생존이 우선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탈과 살인도 서슴치 않게 되어 "사람들은 점점 동물이 되어 가고" 만다고 지적합니다.
 



선생님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죠?

작가는 대체 왜 이런 소설을 쓴 것일까요? 작가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핵전쟁의 무서움을 일깨우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일까요? 그렇다면 핵전쟁을 막기 위해 학생들이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너무나 막연합니다. 게다가 소설은 어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설은 독자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익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장르입니다.

이 소설에서 전쟁으로 인해 두 다리를 잃은 어린 안드레아스는 지하실 벽 가득 '천벌 받을 부모들'이라고 써놓습니다. 학교를 열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롤란트의 아빠는 "선생님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죠?"라고 묻는 한 여학생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얼굴에 온통 상처투성이인 남자아이가 아빠 얼굴에 분필을 던지며 "당신을 살인자야!"라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습니다. 왜 이 소설에서 아이들은 부모 세대를 그토록 저주하고 혐오했을까요?

전쟁 이전에 롤란트의 아빠는 아들에게 "도대체 우리가 그 문제를 두고 뭘 할 수 있겠니?"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곤 했습니다. 또 그는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평화를 보장해 줬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다른 어른들처럼 편리함과 안락함이 가장 중요"했고, 그래서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역시 "정치는 정치가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라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양로원에서 온 리자 바르츠 할머니는 롤란트에게 부모 세대가 그저 자신만 생각하는 "정 없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라 그렇다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더 나아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세대 역시 '천벌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전쟁을 경험한 그 세대들은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일을 상기시켜주는 의무를 다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결과가 어린 세대를 죽음과 기형으로 몰아넣은 참혹한 핵전쟁입니다.

이 책은 핵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묻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정치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래서 소수의 정치가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도록 맡기지 않았더라면,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었더라면, 과연 핵전쟁과 같은 파국이 일어났을까요?
 

북한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남북 긴장이 높아지면서 국내 핵무장 지지 여론이 60%를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제재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지지율은 37%까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아빠에게 학교를 물려받은 롤란트는 쉐벤보른에 남은 최후의 아이들에게 '읽고, 쓰고,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 

"너희들은 빼앗거나, 도둑질하거나, 죽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은 다시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도움을 줄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 당장 치고 박고 싸우기보다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함께 어울려 찾아 내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너희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 세상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벌써 수 년째 전쟁 중이고,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의 전쟁,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전쟁 위협 등 수많은 국제적 분쟁과 갈등이 첨예화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수시로 무력 사용의 위협을 받고 있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요? 그리고 아이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지금 당장 '서로 대화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폭력이란 대화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꺼내게 되는 최악의 해결 수단일 뿐입니다. 그리고 갈등은 폭력으로 해결되키는커녕 더 커다란 희생과 증오로 이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인류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