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6학년

마크 트웨인/지혜연 번역, 톰 소여의 모험, 시공주니어

ddolappa72 2024. 9. 20. 16:51

 
모험하는 인간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합니다.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을 합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상황에 부딪히며 살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의 일탈을 꿈꾸는 것도 어쩌면 인류의 DNA에 각인된 역마살의 흔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고향을 떠나 사바나 초원을 건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천 가지의 신화와 전설에서 공통적인 '단일신화'(Monomyth)가 발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영웅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모험으로의 부름을 받고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조지프 캠벨/이윤기 번역, 세계의 영웅신화, 대원사) 이처럼 끊임없이 걷고 이동하고, 여행하는 존재인 인간을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행이 인간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까닭은 미지의 장소에서 낯선 이들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묘안을 짜내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해가며 생각이 더 깊어질수록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신화 속 영웅들이 여전히 영웅들로 기억되는 이유도 낯선 세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목숨을 건 모험만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행하는 인간'은 동시에 '모험하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이 톰의 성장담에 '모험'(adventure)이란 제목을 붙인 것도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험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학교에서 성실하게 수업을 받기보다는 친구 허크와 떠돌며 세상살이를 배워 나가는 톰의 모습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인쇄소 식자공이나 증기선의 견습 수로안내원 등의 일을 하며 살아야 했던 트웨인의 유년 시절이 반영된 것입니다. 본명이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인 작가가 증기선의 안전 수심인 3.6m를 뜻하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을 필명으로 삼은 것도 일찍부터 교실이 아닌 세상에서 인생을 배워나가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중히 간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인생의 성공을 위해 정해진 답이 있다고 여기는 어른들 탓에 요즘 아이들은 모험 본능을 억압당한 채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전부라 여기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저 너머에 존재하는 낯선 세상을 잠시나마 꿈꾸게 하기 위해서 '톰 소여의 모험'을 함께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지혜로운 소통전문가 톰 소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은 사람들은 천방지축 톰이 펼치는 흥미로운 이야기라고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수업에 참여합니다. 그런 아이들한테 주인공 톰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톰이 당면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지 말해보도록 합니다.

(가) 폴리 이모는 장난꾸러기 톰에게 벌로 울타리를 페인트로 칠하도록 합니다. 톰은 힘들게 직접 페인트 칠을 하는 대신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일이라고 속여 물건까지 받아가며 페인트칠을 하게 해서 이모의 과제를 해결합니다. 이모가 '과제'라고 생각한 것을 톰은 '놀이'로 해석해서 친구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것입니다.

(나) 묘지 사건 이후 톰이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자 이모는 톰에게 엉터리 진통제를 강제로 먹이게 됩니다. 톰이 아무리 먹기 싫다고 해도 고집을 굽히지 않는 이모를 설득하기 위해 톰은 고양이 피터에게 약을 먹이게 됩니다. 고양이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본 후에야 이모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어 톰에게 더 이상 진통제를 권하지 않게 됩니다. 톰은 이모에게 반항하거나 고집으로 맞서는 대신 이모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다) 잭슨 섬으로 함께 도망간 조 하퍼와 허클베리 핀이 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도 톰은 그들을 나무라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톰은 친구들한테 멋진 계획이 있다면서 자신들의 장례식에 참석하면 재미있을 거라고 설득합니다. 톰은 의견이 엇갈릴 때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다른 제안을 내놓아 그들을 설득합니다.

(라) 여자친구 베키와 서먹한 사이가 되자 톰은 일부러 베키를 무시하는 듯 딴청을 피웁니다. 하지만 베키가 실수로 도빈스 선생의 책을 찍어서 처벌 받을 위기가 닥치자 베키를 대신해서 매를 맞는 용기를 발휘합니다. 그런 톰을 베키가 좋아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톰이 보여준 몇 가지 사례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톰이 단순한 장난꾸러기가 아니라 무척이나 지혜로운 소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몇몇 아이들은 톰의 행동에 감탄하며 엄마나 친구들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 꼭 써먹어 봐야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톰의 소통방식에 나타난 주요한 특징은 그가 상대방과 의견이 다를 때 무조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고집을 피우지 않고, 자신과 상대가 만족할 만한 제3의 제안을 내놓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페인트 칠하기에서 보여지듯 그는 항상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섬 생활에 지친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장례식 참석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던 것도 그가 부모님들의 상황과 친구들의 상태를 전부 고려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따져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키와의 문제도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달려들기보다는 적당한 때를 숨죽이고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하는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지혜는 학교나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직접 다양한 상황에 처해보고 경험을 축적해야만 겨우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섬과 동굴

톰은 전통과 규율을 끔찍이도 싫어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편견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주정뱅이의 아들이자 어린 부랑자로 통하는 허크와도 허물없는 친구가 됩니다. 톰이 학교와 교회를 거부한 것은 그가 단순히 공부하기를 싫다거나 교회의 엄숙한 분위기가 따분해서가 압니다. 규칙과 예법, 친절과 배려로 무장한 문화 제도가 인간의 자유 정신을 속박하고 있다는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 말미에 여러 가지 모험을 겪은 후 "모든 게 너무나 규칙적이야.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허크에게 톰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 허크." 규칙과 질서를 맹목적으로 싫어하던 톰은 그것들이 인간의 삶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만큼 성숙하게 됩니다. 톰이 이렇게 성장하게 된 계기 중에서 특히 잭슨 섬에서의 경험, 포터 사건, 맥두걸 동굴 경험이 중요합니다.

톰은 자신이 이모나 여자친구 베키한테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잭슨 섬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들이 자유를 누리고 모험을 즐기던 잭슨 섬은 '피터 팬'에서 네버랜드과 같은 상상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잭슨 섬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염탐을 통해 자신들이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톰은 자신들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방식을 통해 사회로 복귀합니다. 네버랜드에 머물기로 결정한 피터 팬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면, 잰슨 섬을 떠나기로 결정한 톰은 성숙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우연히 포터 사건을 목격하게 된 톰과 허크는 두려움 때문에 영원히 침묵하자고 약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죄 없는 포터가 인디언 조 대신 누명을 쓰고 벌을 받게 되자 그들은 약속을 깨고 법정에서 포터의 증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의 결정은 법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톰에게는 법 이전에 양심의 자유가 더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톰과 허크가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허크에게는 주정뱅이 아버지가 있긴 하지만 늘 떠돌아다녀서 허크를 돌보지 않기 때문에 없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그 까닭은 이들 '아버지 없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미국의 성장 과정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유럽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은 세습된 왕권이나 전통적 지배 세력 없이 탄생한 국가입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자신들이 떠나온 국가들의 문화적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점차 미국만의 전통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헤밍웨이가 "현대의 미국 문학은 모두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한 것도 마크 트웨인 대에 이르러 독자적인 미국 문학의 전통이 수립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아비뇽 프티팔레 미술관


현대판 테세우스의 모험

맥두걸 동굴에서의 모험은 소설 전체를 압축한 모형이자 톰이 성인으로 거듭나는 통과의례기도 합니다. 베키와 함께 소풍을 떠난 톰은 길을 잃고 동굴 안에 갖히고 맙니다. 설상가상 그 동굴 안에는 마을의 보물을 훔쳐 달아난 인디언 조가 숨어 있었습니다. 톰은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베키를 달래는 한편 조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심하면서 출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때 그가 탈출 수단으로 삼은 것은 그의 호주머니 안에 있던 연줄이었습니다.

톰의 동굴 모험은 그리스 신화 속 테세우스의 모험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신화와 다른 점은 아리아드네가 미궁 밖에서 붉은 실을 테세우스에게 건냈다면, 소설에서는 베키가 톰과 함께 동굴 안에 있고 톰이 자신의 호주머니 안에서 연줄을 꺼냈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미궁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어두운 충동을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로 억누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붉은 실은 이성의 힘이나 진정한 사랑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반면 톰 소여가 동굴을 빠져 나오게 되는 계기는 자신 안에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연줄을 이용해 두려움에 맞서 싸우며 동굴 곳곳을 탐험을 해서 마침내 베키와 함께 그곳을 빠져 나오게 됩니다. 톰은 실패할까봐 두려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맞서 싸워 그것을 극복해 냈기 때문에 용기 있는 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즉 톰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스스로의 힘으로 두려움을 극복해 냈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