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병자호란(1636) 이후에 씌어진 <박씨전>은 <임경업전>과 더불어 치욕스런 전쟁의 패배를 상상의 공간에서 이겨내려는 당시 민중들의 소망이 투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작자 미상의 이 작품은 고전 소설에서는 드물게 박씨라는 여성 영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박씨뿐만 아니라 그녀의 하녀 계화나, 청나라 자객 기홍대 등 뛰어난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가 여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합니다. 흔히 병자호란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황제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올린 수치스런 장면으로 기억될 뿐 5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의 여인들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 시장에 팔렸다는 사실은 드물게 언급되어 왔습니다. 목숨을 걸고 겨우 탈출한 조선의 여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도 환대를 받기는커녕 환향녀(還鄕女)라 불리며 손가락질 받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는 비극적 사실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한글본 소설이 조선의 여인들 사이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이유는 여성의 시선으로 전쟁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울분과 열망을 문자로 실체화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박씨전>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여성들이 왜 이 책에 열광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성의 시선으로 접근할 때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온전히 파악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 없는 결혼을 해야 하다니!
아이들이 이 책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 것은 박씨와 이시백이 아버지들 간의 거래에 의해 결혼한 장면입니다. 만난 적도 없고 사랑도 없는 남녀가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각하는 결혼 모델은 서양에서 18세기에 등장한 낭만적 사랑의 개념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서양에서도 결혼은 두 집안 간의 물질적이고 계약적인 관계로 맺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애가 없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중매인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열정적 사랑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후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생각은 개인주의가 확산되며 낭만적 사랑 개념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박씨나 이시백처럼 본인이 원하지 않은 상대와 결혼을 한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고 합니다. 아이들 모두 치를 떨며 끔찍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남자는 신부가 자기 집으로 들어와 사는 것이라 조금 낫습니다. 낯선 남자와 낯선 집에서 살아야 하는 여자는 어땠을까요?
고려의 풍속이 남아 있던 조선 전기 때만 해도 남자는 결혼을 하면 처가에 들어가서 처가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자녀가 장성하면 남자의 본가로 들어와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율곡도 어머니 신사임당의 고향 강릉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리학에 기반한 유교적 질서가 강화되며 모계사회의 전통은 단절되고,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강화되며 여성은 결혼후 친정을 떠나 남자의 집에 살며 시집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박씨가 시어머니한테 "못난 며느리가 밥만 축내고, 게으르기까지 하구나."라며 잔소리를 들었던 것은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반영한 것입니다. 남편 이시백은 박씨를 대놓고 못생겼다며 구박합니다. 그래도 박씨는 며느리와 아내로서 제역할을 묵묵히 수행합니다. 시아버지의 관복을 짓거나 천리마를 구입해서 되팔아 시대를 부유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남편을 뒷바라지 해서 장원급제하도록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당시 여성에게 기대하던 '현모양처'의 모습들입니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박씨는 신비한 도술로 뛰어넘습니다. 몇 개월이 걸릴 옷 만들기를 하룻밤만에 해치웁니다. 비루먹은 말이 값비싼 천리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냅니다. 남편에게 신비로운 연적을 선물해 과거에 급제하게 만듭니다. 박씨의 초능력은 억눌려 지내야만 했던 그 시대 여성들의 열망의 크기를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박씨의 얼굴을 덮고 있던 허물이 벗겨지자 아름다운 외모가 드러납니다. 그러자 아내를 무시하고 외면하던 남편 이시백이 무릎을 꿇고 사죄합니다. 아무도 남편의 사과를 진심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박씨가 예뻐지지 않았다면 그가 과연 아내에게 사과를 했을까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기고만장한 남편이 아내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여성들을 환호성을 지르고 짜릿한 쾌감을 느꼈을 테니까요. 사실 못생기게 보이게 했던 허물은 외모로만 여성을 평가하던 남성들의 눈에 씌워져 있던 것은 아닐까요?
박씨, 자기만의 방을 갖다
박씨는 남편의 구박과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해 '화를 피하는 공간'인 '피화당'(避禍堂)을 짓고 그곳에 은거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 <자기만의 방>이란 에세이에서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박씨전>의 저자는 이미 17세기 경 여성이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파악한 것입니다. 남편으로부터도 버림받고 전쟁의 포화에도 희생당한 여성들을 따뜻하게 지켜주고 보호해줄 '피화당'은 당시 여성들이 꿈꾸던 이상적 공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의 전반부에서 못생긴 외모 때문에 구박을 받던 박씨가 '화'를 피하기 위해 숨어든 공간이었던 '피화당'은 병자호란을 다룬 소설의 후반부에 피난민 여성들을 보호하는 공간으로 변화합니다. 박씨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이처럼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박씨가 남편 이시백을 장원급제시킨 것 역시 단순히 남편 뒷바라지를 잘 하는 정숙한 아내 역할에 충실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조반정의 공신이자 병자호란 때 병조참판을 지낸 실존 인물과 이름이 같은 이시백이 관리가 되어야 박씨는 그를 통해 임금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여성은 과거에 나갈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배제된 정치가 조선의 여성들을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하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1638년(인조16년) 조정에는 상반된 내용을 담은 두 개의 상소문이 올라왔습니다.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 장유(張維)와 전 승지 한이겸(韓履謙)이 올린 호소문이었습니다. 장유는 자신의 외아들과 속화되어 돌아온 며느리가 이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이겸은 자신의 딸이 속환되어 왔는데, 사위가 딸을 버리고 새 장가를 들려고하는 것이 원통하니 이를 막아달라며 호소했습니다. 여기서 속환은 정묘호란이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을 몸값을 치르고 되돌려 보내는 일을 뜻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남성들은 힘들게 속환된 부녀자들을 '오랑캐에게 실절(失節)한 여자'라고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조정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당시 상황을 기록한 사평(史評)은 이렇습니다.'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포로가 된 부녀자들은, 비록 본심은 아니었지만, 변을 만나 죽지 않았으니 결국 절개를 잃은 것이다. 그러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즉 환향녀들이 포로가 되면서 자결하지 않았던 것 자체가 이미 허물이고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기사, [병자호란 다시읽기] (103) 환향녀의 슬픔, 안추원과 안단의 비극)
조선의 여인들은 남성들의 무능 때문에 청나라 군사들로부터 수치를 당했지만, 정작 그녀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지 못한 조선의 남성들에 의해 또다시 죽음에 내몰리는 기막힌 상황. 이것이 <박씨전>이 쓰여지고 읽혔던 시대의 여성들이 경험해야 했던 현실입니다. 조선의 여성들은 이중적으로 존재가 짓밟히고 모욕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씨가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청나라 장수의 목을 베고 무찌르는 장면을 읽으며 당시 여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치유되지 못한 상처, 위로 받고 싶은 영혼들
<박씨전>을 병자호란의 패배로 상처입은 민족의 자존심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쓰여진 소설로만 평가하는 것은 당시 여성들이 받아야 했던 이중의 고통을 온전하게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비판의 칼날은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가 아니라 박씨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 조선의 남성들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시백은 박씨를 외모로만 평가해서 그녀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임금은 전쟁을 대비하라는 박씨의 충고를 무시해서 나라 전체를 화염에 휩싸이게 합니다. 이시백이나 임금 모두 여성의 혜안과 지혜를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박씨전>은 이처럼 무능한 임금에 대한 조롱과 비난을 은밀하게 숨겨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급진적입니다.
사실 박씨의 못생긴 외모 또한 당시 남성들이 여성들을 속박하던 그릇된 가치관이 덧씌운 허물일 뿐입니다. 남성이 씌워놓은 굴레를 벗어날 때 여성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다고 소설은 말합니다.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소설은 강변합니다. 여성의 눈으로 이 소설을 읽을 때만 이런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17세기 여성들의 이런 절박한 외침을 21세기를 살아갈 세대들이 결코 외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학년별 책읽기 > 5학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청준, 옹고집 타령, 문학과지성사 (0) | 2025.01.26 |
---|---|
찰스 디킨스/김영진 번역, 크리스마스 캐럴, 비룡소 (3) | 2024.12.01 |
나시키 가호/김미란 번역, 서쪽 마녀가 죽었다, 비룡소 (7) | 2024.11.02 |
신연호, 문화재로 배우는 근대 이야기, 주니어김영사 (7) | 2024.10.18 |
J.M.바스콘셀로스/박동원 번역,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동녘 (6) | 2024.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