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5학년

신연호, 문화재로 배우는 근대 이야기, 주니어김영사

ddolappa72 2024. 10. 18. 15:55

 

 
 
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

"지난 주에 고조선을 배웠는데 이번 주에 고구려가 멸망했어요."
"고려는 이미 멸망했고 벌써 조선을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알고 보니 5학년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1년 가까이 저와 한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널뛰기 하듯 대충대충 배우고 넘어가는 역사 수업이 영 어처구니 없어 보였나 봅니다. 그나마 미리 역사를 공부한 아이들은 따라가기 수월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마저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학교 수업이 부실하니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설민석이나 최태성 같은 유명 역사 강사들의 수업을 들으며 역사를 배우거나 사설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유튜브로 역사를 배운 아이들은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가 역사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따로 책을 찾아보지 않아도 역사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원에서 역사를 배운 아이들한테 역사는 단순한 암기 과목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역사는 무조건 외워야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는 대상일 뿐입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도통 알아낼 재간이 없습니다.

최근 소설가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국내외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며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해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가져왔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이미 지나간 과거라 생각하고 무관심할 때 작가는 홀로 그 고통스런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잊지 않으려 몸부림친 것이 아니라 작가는 그 시간을 자신의 가녀린 몸으로 다시 살아내려고 치열하게 그 시간 속으로 들어 갔고, 죽은 자들의 눈물과 슬픔이 그녀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쓰고 또 썼을 것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의 영광에 도취되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책을 읽지 않는 우리 사회에, 역사에 무관심한 우리에게, 먹고 사는 것이 전부라 믿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존재이기도 합니다. 시인 윤동주가 평생 부여잡고 살아야 했던 그 부끄러운 감정의 중요성을 그녀는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선정 이유를 기억하고 다시 아이들의 한국사 수업을 되돌아 봅시다. 주마간산식으로밖에 역사를 배울 수 없는 아이들한테 우리 사회의 어른들 모두 부끄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글박물관에 현장체험을 가서 한글 디자인을 활용해 티셔츠를 제작하는 모습




입체적 역사 교육을 꿈꾸며

5학년 아이들은 학기초가 되면 저와 함께 전쟁기념관으로 현장체험을 나가서 병자호란에 대해 조사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직접 역사를 조사하고 느껴 보도록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조사된 결과물을 가지고 글을 쓰거나 함께 연극을 만들어서 표현해 보도록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입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와서 하는 수업도 있습니다. 영화는 당대의 상황을 생생하게 눈 앞에서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머리속에서만 생각하던 역사적 장면을 피부에 와닿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씨전' 같은 병자호란을 다룬 역사 소설을 읽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이 그 끔찍했던 전란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 중간중간에 신문에 실린 역사 관련 글을 읽으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5학년 1년 동안 한국사 관련 교재를 선정해서 함께 읽으며 테스트를 해서 체계적인 역사 지식을 갖추도록 하는 작업도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사건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반복을 통한 암기는 필수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 공부의 전부는 아닙니다. 역사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시나 소설, 수필이나 연극으로 표현해 봄으로써 역사를 아이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전후의 모습



우리는 왜 근대를 알아야 할까 

모든 역사적 시기는 깊이 들어갈수록 어렵지만 특히 아이들은 '근대'를 어려워 합니다. 수많은 사건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일어난 사건들 하나하나가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만 해도 조선을 둘러싼 당시의 국제적 정세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녀가 당시의 국내 정치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석조전, 러시아 공사관, 서울역, 탑골 공원 등 아이들이 보았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근대 문화재를 통해 역사에 접근하는 것도 근대의 역사를 배우는 좋은 방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이 책을 선정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근대는 1876년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부터 1945년 광복까지 이르는 시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개념적으로 근대는 "전통 사회의 특징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 시대"를 뜻합니다. 즉 왕에 의한 통치, 신분 제도에 의해 계층화된 사회 구조, 주된 산업으로서 농업 등으로 특징되는 전통 사회(전근대 사회)가 해체되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가 시작된 시기가 근대입니다.

그런데 서양의 경우 중세의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화된 사회 구조를 형성하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화 과정은 공교롭게도 일제 강점기 시기와 겹치고, 우리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우리는 영국인들처럼 주도적으로 산업화를 이끌지도 못했고, 프랑스인들처럼 백성들의 손으로 직접 왕을 권좌에서 끌어내리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했어야 할 일들을 일본인들이 대신했고, 그들은 우리를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게 식민지 노예로 삼았기에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하고 엇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한테 조선총독부가 철거되는 영상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을 때, 조선인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던 그 건물이 광복 후 철거되기는커녕 정부 청사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계속 사용된 사실이 놀랍고, 1995년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야 겨우 철거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현재 속에는 아직도 철거되지 않은 식민 시대의 유산이 살아 남아서 유령처럼 종종 출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청산해야 할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종로에서 3.1만세 운동을 하던 모습

 

과거에서 발견한 희망의 근거

우정총국을 보며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1884)를 떠올려 봅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박영효, 서재필 등의 급진 개화파들은 근대적 우편 제도를 담당하게 될 우정국 연회에서 개혁에 미온적인 민씨 척족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주도로 낡은 조선의 정치를 개혁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청나라 위안스카이의 개입으로 불과 3일만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처럼 되기에는 그들은 너무나 성급했고 지지기반이 빈약했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실패 후 일본으로 도피한 김옥균은 상해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당한 후 시신이 국내로 송환되어 부관참시되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고종의 사위이기도 했던 박영효는 훗날 친일파로 변모해서 조선총독부로부터 후작 작위까지 하사받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은 여러 가지 역경을 딛고 대학을 진학해 의사가 되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미국 여성과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사람은 서재필입니다. 학생들에게 만약 너희가 서재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물어 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조선은 망했으니 발전한 미국에서 의사로서 편하게 지냈을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서재필은 아내를 데리고 조선으로 들어와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등 조선 독립에 매진했습니다. 왜 그가 미국에서 의사로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귀국해서 독립 운동에 혼신을 다 했을 지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탑골공원은 3.1운동(1919)이 시작된 장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합병을 당한 후 조선인들은 일제의 육군 헌병에 의한 무단통치를 당하며 저항의 의지마저 사라진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해 1월 고종의 의심스러운 승하로 불 타오르기 시작한 반일감정은 3.1운동을 기점으로 폭발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로 시작하는 독립선언문은 이 나라의 주인이 왕이 아니라 백성들임을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이 독립 선언이 지난 10년 간 이루어진 일제의 폭정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며, 세계 평화의 관점에서 일본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짓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3.1운동으로 이해 정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각지에서 임시정부가 형성되었다가 상해에 통합 임시정부가 꾸려진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불법적인 방법으로 나라를 빼앗겼지만 이 땅의 주인인 백성들이 살아 있는 한 언제든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열망을 선언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잘 암기해서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 야만의 시대에도 양심에 따라 정의롭게 살고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의 희생이 이어져 오늘날 우리의 삶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현재를 가치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역사를 배우고 익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는 저들이 고통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간절한 꿈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