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5학년

이청준, 옹고집 타령, 문학과지성사

ddolappa72 2025. 1. 26. 20:44

 
옹고집은 왜 고집이 셀까

남의 말은 아무리 옳은 것이어도 도통 들으려 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고집쟁이를 흔히 옹고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답답한 벽창호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옹고집의 진짜 문제점은 단순히 그가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점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부자로 살면서도 어려운 이웃이나 가엾은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한 인정을 베푼 적이 없을 만큼 인색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부리는 일꾼들에게 몇 년씩 새경도 안 주고 공짜로 부려먹고,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도 혼수 보내기가 아까워 공짜 시집 보낼 곳만 찾다가 혼기를 놓쳐버리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살림 절약을 핑계로 이미 여든 살이 넘은데다 병까지 들어 누운 늙은 어머니에게 약다운 약 한 첩을 구해다 권하지 않을 만큼 폐륜적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옹고집은 왜 그토록 고집이 센 것일까요? 그의 고집을 개인의 타고난 기질로 보아야 할까요? 그러기엔 그를 쏙 빼어닮은 아들 명칠이 가짜 옹고집을 아버지로 모시며 차츰 달라져서 자기 도리와 할 일을 가려 할 줄 아는 착하고 총명한 젊은이로 변한 것을 보아서는 근거가 부족해 보입니다. 개인의 성격은 타고난 기질 외에도 그가 속한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의 막무가내식 고집통의 원인을 '남을 우습게 알고 무슨 일이든지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교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신통찮은 머리를 가졌음에도 남을 믿지 못하고 모든 일을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다 보니 '고집통' 영감에서 점차 '욕심보 고집통'이 되었고, 욕심이 많다 보니 남의 일엔 늘 시샘하고 못마땅해하며 행패를 일삼는 '심술보' 영감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제멋대로 고집과 심술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름난 부자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옹고집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 집 재산을 늘리는 데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즉, 옹고집의 고집스런 기질은 대를 거쳐 축적된 부와 경제적 우월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돈만 있으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전통적 관습과 규율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옹고집은 놀부와 동일한 인물 유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조선 후기 부농의 등장으로 새롭게 탄생한 인물들로 인륜이나 효도 같은 전통적 가치보다 경제적 자유를 우선시하며 중세적 윤리에 기반한 인간관계를 파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무엇이 '내가 나'임을 보장해 주는가

옹고집은 유독 스님들에게 가혹하게 행패를 부리고 그들을 미워합니다. 그가 내세운 명목상 이유는 스님들이 원래 불도를 따르지 말라는 나랏법을 어기고 사는 죄인들이기 때문이라지만, 실상은 그들이 대개 그가 듣기 싫어하는 옳은 소리를 늘어놓는데다, 그가 몹시 아끼는 곡식이나 재물까지 공짜로 얻어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풍년이 들어 이웃들까지 잘 살게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흉년이 들어 이자 돈장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기적으로 부의 축적을 중시하는 옹고집에게 이타적 자비심과 비경제적 활동을 교칙으로 삼는 불교만큼 적대적인 대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월출산 취암사 큰 스님과 그의 제자가 옹고집을 교정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의외입니다. 그들은 도술을 이용해 볏짚 한 묶음으로 옹고집과 똑같이 닮은 분신을 만들어서 진짜 옹고집을 쫓아내기로 합니다. 그들은 왜 가짜 옹고집을 만들었을까요?

가장 손쉬운 해답은 진짜 옹고집이 가짜 옹고집을 보고 반성하도록 만들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집안 식구들과 이웃들 간의 화목에만 힘을 쓰는 가짜 옹고집을 보면서 진짜 옹고집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옹고집이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집'을 버리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진짜 옹고집  관아에서 공식적으로 '가짜'로 판결받고 쫓겨난 뒤에도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네 사람들에 의해 심한 욕설과 매질을 당하고 매몰차게 내쫓기고, 그것도 모잘라 가족들에 의해 사납게 박대당하고 내몰린 후에야 겨우 '자신이 진짜 옹고집이래도 누가 그것을 곧이듣고 믿어 줘야 옹고집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겨우 깨닫게 됩니다. 그 뒤 거지 꼴이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며 이웃들이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이나 한집 식구들 간에 화목하게 사는 모습을 본 후에야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스님들이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낸 의도는 우선 옹고집의 '고집'을 꺾기 위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만 옳다는 오만함과 교만으로 똘똘 뭉친 옹고집의 자아는 자신의 완벽한 복제품인 가짜 옹고집을 대면하게 되면서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 옹고집은 자신의 자아 정체성이 화폐에 근거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이 자신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고 굳게 신봉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옹고집의 이런 신념은 가짜 옹고집의 등장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후에야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돈이 아니라 돈을 매개로 자신이 무시하고 타자화했던 타인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것이라 믿었던 신체적 특징이나 특별한 기억조차 그가 누구인지 증명해주지 못했습니다.

진짜 옹고집이 추방당한 자리를 가짜 옹고집이 완벽하게 대체하고, 사람들은 그를 실제하는 옹고집보다 더 실재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가짜 옹고집은 일종의 '시뮬라크르'입니다. 장 보드리야르는 애초에 원본이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그것과 관계가 끊어져 있어서 '원본에서 자립한 복제', '원본 없는 복제'를 '시뮬라크르'라 불렀습니다. 옹고집이 기를 쓰고 축적하고 싶어하던 화폐 역시 실제 사용가치를 지닌 사물을 대체한 가상이자 시뮬라크르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짜 옹고집을 창조해서 진짜 옹고집에 접근시켜 그를 위기에 빠뜨린 스님들의 전략은 진짜 옹고집이 그토록 애정하고 욕망의 대상으로 삼았던 화폐의 가상성을 모방한 것입니다. 옹고집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화폐로 대체해서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렸듯이 스님들은 진짜 옹고집을 가짜 옹고집으로 대체해서 그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하고 그가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은 것입니다.


옹고집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나

집을 쫓겨난 지 삼 년쯤이 지난 후 자신이 없이도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식구들을 지켜본 옹고집은 이제 자신이 '그 집엔 아무 쓸모가 없는 위인'인 것을 깨닫고 스스로 발길을 되돌려 나와 버렸습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 처지를 깨닫고 자살하기 위해 깊은 산 속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고 있더라도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삶은 그에게 '지옥 같은 괴로움'만을 줄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 위를 떠도는 솔개을 보고 그는 문득 아무 데도 쓸모가 없게 된 귀찮은 몸뚱이를 내어주기로 결심합니다.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주어 본 일이 없는 그는 마지막으로 솔개들의 배라도 불려서 모처럼 보람스런 일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건 참으로 하늘이 내려 주신 고마운 기회구나."

옹고집이 죽음을 결심한 순간은 그가 그동안 고집스럽게 집착하던 '자아'를 내려놓은 순간이기도 합니다. 또 솔개와 같은 미물에게 자신의 몸을 보시(布施)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이타적 정신을 내보였습니다. 게다가 어떤 대가도 기대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늘에 감사를 표하는 행동은 그가 물질적 세계 저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를 인정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옹고집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그가 경멸하고 무시해 왔던 불교의 가르침을 죽음의 문턱에서 비로소 수용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옹고집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반성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가 과거의 자아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는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회개'를 뜻하는 헬라어 어원 '메타노에오(metanoeo)'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방향으로 걷던 자신을 되돌려 '하느님께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마찬가지로 옹고집은 돈을 지향하던 고집스런 삶의 태도를 버리고 생명의 순환 원리에 충실한 삶으로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에 방황을 끝마치고 가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