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2학년

이미애, 반쪽이, 보림

ddolappa72 2024. 10. 4. 17:09



왜 '반쪽이'일까?

반쪽이는 한국 전래 동화에서 매우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눈도 하나, 귀도 하나, 다리도 하나, 입도 반쪽, 코도 반쪽인 독특한 외형은 조금은 기괴하기도 하고 뭔가 짠한 감정이 들게도 합니다. 늙도록 자식이 없던 여인이 백 일이나 신령님한테 빌고 또 빌어 어렵게 태어난 아이가 그러했으니 그 어미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쪽이를 흐뭇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그가 자신의 타고난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밝고 씩씩한 성격으로 그것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반쪽이의 이러한 불완전성은 '장애'의 징표도 읽을 수 있지만, 어린 아이의 '미숙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반쪽이가 형제들 중 막내인 것도 그런 불완전성을 상기시킵니다. 현실에서 막내는 다른 형제들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하지만 결국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워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성경에서 쌍둥이형 에사오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이나, 방앗간과 당나귀를 상속받은 형들과 달리 달랑 고양이 한 마리를 물려받은 막내가 큰 성공을 거두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주인공처럼 유독 옛이야기 속에는 유독 막내가 승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형제들 중 가장 연약하고 미약한 존재에 대한 옛사람들의 배려일 것입니다.  


독서는 쓰여 있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것이다

흔히 책에 쓰여진 내용을 잘 기억하면 독서를 잘 한다고 칭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력이 좋은 것일 뿐 진정한 독서는 책에 쓰여 있지 않은 것을 읽어낼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동화 '백설공주'에서 여왕은 왜 날마다 거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을까요? 그리고 백설공주는 왜 난장이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변장한 여왕에게 속아서 문을 열어 주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텍스트에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고 상상과 추리를 통해 유추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텍스트에 대한 이해 수준이 달라집니다. 

동화 '반쪽이'에서 반쪽이가 과거 시험을 길을 떠나는 형들을 졸졸 따라오자 형들은 그를 커다란 바위와 커다란 바위에 꽁공 묶어 놓습니다. 힘이 장사인 반쪽이는 바위와 나무를 쑥 뽑아서 집 마당에 내려놓고 어머니가 그늘에서 쉬시라고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반쪽이는 왜 어머니한테 사실 그대로 털어놓지 않고 거짓말을 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어머니를 속상하지 않게 하려는 반쪽이의 넉넉한 마음씀씀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부잣집 영감은 반쪽이가 가진 호랑이 가죽이 탐나서 자신의 딸을 걸고 내기를 합니다. 영감은 내기에 졌지만 예상했던 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반쪽이는 꾀를 써서 영감의 딸을 집에서 데리고 나와 혼인을 합니다. 반쪽이야 영감과의 계약에 따라 행동한 것이지만,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지에 반쪽이에게 납치된 영감의 딸은 무슨 봉변이란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감의 딸은 왜 반쪽이와 혼인을 한 것일까요? 아이들은 이 질문에 대해 아버지가 약속한 것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딸도 반쪽이가 지혜롭고 용감한 사람이라 마음에 든 것이다, 반쪽이가 이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구해줘서 딸도 마음에 든 것이다 등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책 읽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더 좋은 대답만 있을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기

수업 시작 전에 아이들에게 장애인들을 본 적이 있는지, 그 때 무슨 생각이 드는 지 등을 물어 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불쌍하다, 도와주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다들 선량하고 고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만약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안됐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처다보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도록 합니다. 아이들은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뿐더러 기분이 나쁠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분들도 몸이 불편할 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니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일러줍니다.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돕겠다는 마음은 간직한 채 말이지요.

판본에 따라 반쪽이가 재주를 넘은 뒤 온전한 신체를 갖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판본의 이야기에서는 그런 장면은 생략되어 있고 대신 부잣집 영감의 딸과 반쪽이 혼인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맺음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왜 이런 결말을 선택한 것일까요? 

동화가 종종 '결혼'으로 끝나는 것은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수단입니다. 반쪽이는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완전한 존재로 거듭났고, 결혼은 그러한 사실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가 온전한 상태로 변한 장면이 생략된 것은 반쪽이는 이미 그 자체로 한 명의 온전한 인격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눈에만 부족해 보였던 것이지 반쪽이 자체는 타고난 몸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경멸하는 어떤 시선에도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이고 그래서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항상 씩씩하고 즐겁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은 반쪽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던 넉넉한 마음씨의 지혜로운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