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시 수업

시로 쓰는 독서감상문

ddolappa72 2024. 10. 20. 14:09

팔방미인 반짝이

반쪽반쪽 반쪽이
다른 사람보다 무엇이든 반쪽이네

하지만....

커다란 나무와 바위를 들고
혼자서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지

많은 사람들이 지키는 부잣집에
들어가 딸을 업고 나오고
영감에게는 장기 3연승!

형들의 잘못을 3번이나 덮어 줄 만큼
착하기도 하지.

몸은 남들보다 반쪽이지만
능력은 남들보다 한수 위

그래서 반쪽이는 반짝반짝
팔방미인 반짝이

(2학년 학생의 시 '팔방미인 반짝이' 전문)


수업에서 동화 '반쪽이'를 함께 읽은 뒤에 한 학생이 그 책을 주제로 동시를 써 왔습니다. 그 전 수업에서 책을 읽고도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해줬더니 용케 그걸 기억했다가 써 온 시였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시를 써 오면 수업 시간에 함께 읽고 시에 관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넌 왜 이렇게 표현했니, 너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던 거니 등의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이 자신이 쓴 시를 설명할 기회를 줍니다. 아이들은 관심과 사랑으로 성장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위 시를 써 온 학생한테는 왜 제목을 '팔방미인 반짝이'라고 붙였는지 물었습니다. 학생은 반쪽이의 재능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이 느껴져서 그렇게 붙였다고 대답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팔방미인'이란 단어를 선택한 것도 특별했지만, 무엇보다 '반쪽이'를 '반짝이'로 대체하는 재치가 빛났습니다. 이런 단어 선택에서부터 이 학생의 창의성이 도드라져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학생은 매우 논리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시의 구조를 보면 처음에는 반쪽이는 겉모습을 묘사하고 '하지만'이란 부사가 사용된 이후부터는 반쪽이의 특별한 능력을 부각시키는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마지막 2연에서는 반쪽이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몸은 남들보다 반쪽이지만 / 능력은 남들보다 한 수 위'라는 구절로 자신이 쓴 글을 요약한 뒤 '그래서 반쪽이는 반짝반짝 / 팔방미인 반짝이'로 살짝 비튼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도 논리적입니다.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논리 구조로 전개되는 이 시는 동화 '반쪽이'에 대한 독서 감상문으로도 읽힙니다. 감상문을 꼭 산문으로 쓸 필요가 있나요. 시든 산문이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해 자유롭게 사유를 펼쳐 보이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독서 감상문을 시로 써 보는 수업을 만들어 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저한테 제공한 시라서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