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2학년

엮은이 임어진, 설문대 할망, 해와나무

ddolappa72 2024. 8. 23. 15:18

 

 

 

한국의 거인 신화

 

세계의 신화에는 다양한 거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나 사이클롭스, 중국의 반고, 그리고 성경 속 골리앗 등이 대표적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거인'하면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속 거인들이나 하야오의 '월령공주' 속 데이다라봇치 등을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나라의 신화와 전설 속에는 거인이 없을까 고민하다 찾아낸 것이 마고 할미와 설문대 할망입니다. 마고 할미는 카오스 상태에서 해와 달도 만들고, 산과 강도 빚어낸다는 점에서 태초의 창조신에 가깝습니다. 설문대 할망은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거인형 여신입니다. 설문대 할망은 제주라는 섬을 창조하고, 비나 바람 같은 온갖 자연현상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제주의 자연이 의인화된 존재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또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로서 단어 익히기

 

책을 잘 읽는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굳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지 않더라도 문맥 속에서 척척 유추해 내곤 합니다. 작가들이 보통 글을 쓸 때 같은 표현을 피하기 위해 동일한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눈치가 빠른 아이라면 글의 분위기상 모르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마다 문맥 속에서 단어의 뜻을 유추해 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어의 뜻을 곧바로 알려주는 것보다 교육적으로 더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어의 뜻을 안다고 해서 아이가 꼭 그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운 단어를 이용해 글짓기를 해보도록 해서 뜻을 정확히 이해했는지, 그리고 문법에 맞게 단어을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배운 단어를 이용해서 문장을 만들 수 있어야 비로소 그 단어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단어를 활용한 문장 만들기는 아이들이 제일 즐거워 하는 활동 중 하나입니다. 단어를 이용해 서로를 놀리는데 종종 써먹거든요. 그런데 이때 정말 중요한 것은 완벽한 문장을 만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호응관계가 어울리지 않거나 단어에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문장은 고쳐서 다시 써야만 합니다.

 

이번에는 '해지다', '뭍', '메우다' 등의 단어를 배웠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매번 단어를 익히는 작업을 하는 것은 단순히 어휘력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하나의 단어를 제것으로 만드는 일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를 넓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슬프다'와 '기쁘다' 등의 기초적 단어로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와 '서글프다', '서럽다', '섧다', '구슬프다', '환희롭다', '설레다', '흐뭇하다', '뿌듯하다' 등 다양한 어휘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넓이와 깊이가 전혀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말을 익히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열쇠를 아이에게 건내는 활동입니다.

 

 

설문대 할망은 어떻게 제주도를 만들었을까?

 

설문대 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 한라산을 만드는 광경을 담은 그림을 보여주고 무엇을 하는 것인지 설명해 보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책에서 읽은 내용과 단어를 활용해서 그림을 설명하는 활동입니다. 설문대 할망이 제주도의 자연을 만드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처럼 문자를 그림으로, 그림을 다시 문자로 전환하는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공감각을 함께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오름이나 한라산 정상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설문대 할망이 어떻게 만든 것인지 설명해 보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실제 풍경과 책의 내용을 연결지어 사고하도록 기획된 과제입니다. 아이들이 실제로 제주도에 방문하게 되면 제주의 자연 풍경을 보고 설문대 할망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방문하는 지역의 신화나 전설을 알고 있다면 마주치게 될 풍경을 조금 더 주의해서 보게 되지는 않을까요?

 

아이들과 돌하르방, 톳돼지, 해녀, 감귤, 유채꽃, 정방폭포 같은 다양한 제주도의 풍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제주도가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이라는 것도 알려 줍니다. 아이들은 바다에 어떻게 화산이 있을 수 있냐며 신기해 합니다. 그 증거로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인 현무암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용암이 차가운 바닷물에 급히 식다 보니 빠져 나간 공기층 때문에 구멍이 그렇게 많게 된 것이라고. 한 아이가 자기는 지금껏 그 돌이 화강암인 줄 알았다고 쑥스러워 합니다. 다들 깔깔거리는 와중에 저는 착각할 수 있다고, 화강암이라는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위로합니다. 그리고 화강암과 현무암의 차이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간혹 이런 식으로 수업이 곁가지로 빠지곤 하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을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준다면 낯선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마다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설문대 할망은 얼마나 컸을까?

 

아이들한테 설문대 할망이 얼마나 컸는지 표현해 보도록 합니다. 깊은 바다로 들어가도 무릎밖에 안 잠길 정도로 키가 컸다고 합니다. 한라산에 걸터 앉아 빨래를 할 만큼 컸다고도 합니다. 정확히 키가 몇 미터였다고 말하는 것이 과학적 말하기 방식이라면 신화는 부정확한 대신 그 광경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도록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주 사람들이 자연 현상을 보고 설문대 할망이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상상했는지 말해보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천둥소리는 할망이 방귀 뀌는 소리고, 내리는 눈은 할망이 팥빙수를 만들어 먹는 것이고, 바람은 할망이 기분 좋아 휘파람을 부는 것이라는 식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은 할망이 제주의 자연이 사람처럼 표현된 것이라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또 자연스럽게 의인법에 대해서도 익히게 됩니다. 굳이 의인법이라는 어려운 용어를 설명해줄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과 정보를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설문대 할망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섬사람들은 할망에게 뭍으로 연결된 다리를 부탁하고 할망에게 치마를 약속했지만, 넉넉치 못한 살림에 모자란 치마를 줄 수밖에 없어서 섬은 육지로 연결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 후에도 할망은 섬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타나 반드시 돕곤 했습니다. 아이들한테 할망이 그렇게 행동한 까닭을 물으면 종종 '사람들이 불쌍해서'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여기서 '불쌍하다'는 표현은 '안타깝거나 안됐거나 슬프거나 한 모든 일들'을 뭉뚱그려서 아이들이 흔히 사용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두루뭉술한 표현보다는 정확한 사실을 적시할 수 있는 표현을 쓰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답은 할망과 섬 사람들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치미 뚝 떼고 아이한테 질문합니다. '너의 어머니께서는 네가 불쌍해서 밥도 해주시고 빨래도 해주는 것일까? 왜 어머니께서 그런 일들을 너한테 해주시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똥거리던 아이는 한참 생각한 후에 겨우 '사랑해서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할망이 짧은 치마 때문에 섬 사람들한테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들을 자식이나 손자처럼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 역시 때로는 척박하고 넉넉치 못한 환경 때문에 원망도 했겠지만, 언제나 자신을 기르고 돌보아준 섬의 자연 환경에서 따스한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고 감사해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낳고 키우고 자라게 한 자연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고 일어났는데 거인이 되어 있다면?

 

수업은 항상 그날 배운 것을 이용한 글쓰기로 마무리합니다. 이번에는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설문대 할망만큼 커져 있었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도록 했습니다. 이 주제는 카프카의 '변신'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나니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워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역시 자신의 몸이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는 낯선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아이들이 글쓰기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재미있는 주제를 선정하는 편입니다. 글쓰기 주제만 듣고서 벌써 신이 나서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이들의 몸이 실제로 거인처럼 커지지는 않겠지만 마음만큼은 다들 거인이 되어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