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4학년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유혜자, 깡통소년, 미래엔아이세움

ddolappa72 2024. 9. 28. 13:50

 

 

 

 

어느날 아이가 배송된다면

카펫을 짜면서 홀로 살고 있는 바톨로티 부인은 자유분방한 사람입니다. 특이한 옷차림과 진한 화장을 즐기며, 가끔은 복도에서 혼잣말을 하며 걸어다녀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별종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 부인에게 어느 날 커다란 깡통이 배달됩니다. 그 안에서 총명하고 잘 생긴 여덟 살짜리 아이 콘라트가 튀어나와 '엄마'라고 부릅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오스트리아의 동화 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공장에서 생산된 '인스턴트 아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교육과 양육이란 문제를 흥미롭게 풀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엄마가 대부분의 부모들이 원하는 이상적 아이를 얻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아이다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완벽한 콘라트는 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을까

공장의 교육과정을 우수하게 수료한 콘라트는 알아서 예습과 복습도 하고, 항상 어른 말씀에 순종하는 예의바른 아이입니다. 그런 콘라트가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그를 당황하게 합니다. 아이들은 왜 서로를 놀려먹는지, 왜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지, 그리고 왜 시험공부는 미리 준비하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콘라트는 밉기만한 친구입니다. 어른들은 사사건건 '콘라트를 본 받아라!'고 합니다. 농담이라곤 조금도 하지 않고 장난도 받아주지 않는 그 아이한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더우기 반장이 된 콘라트가 고지식하게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서 선생님한테 꾸중을 듣게 되자 그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하게 됩니다. 완벽하기만 콘라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른들의 입맛대로 공장에서 프로그램된 콘라트는 어디로 튈지 모를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 번도 자신이나 다른 또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개성과 주관을 만들어갑니다. 그런 과정이 생략된 채 어른들이 원하는 이상적 아이 모델이 주입된 콘라트는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어른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콘라트에게 결핍된 것은 '어린애다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님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콘라트처럼 만드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의 적성이나 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수많은 학원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강제로 주입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계신 분들을 만나뵙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신의 자녀가 항상 어른들이 원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며, 부모가 원하는 사회적 성공을 거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고 항상 그래 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콘라트에게 바톨로티 부인은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뭐라고 하는지 신경 쓰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하게 되고, 결국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다보면 자신감을 잃게 돼. 내 말 알아듣겠니?˝ 그리고 이런 말도 합니다. "너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 너도 느낄 수 있을 거야." 어린 아이의 마음을 지닌 예술가이기도 한 부인은 콘라트에게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라고 충고합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삶의 무늬를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올바른 양육이 아닐까요?



콘라트 같은 아이를 생산해도 괜찮을까?

유전자 기술의 발달로 콘라트 같은 맞춤형 아기를 생산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닙니다. 선천적 유전병의 요인을 제거해서 아이가 신체적 결함 없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공장에서 아이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여성들을 출산과 양육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출산율 저하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시대에 인공출산은 기술적 해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공장에서 콘라트와 같은 아이를 생산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당뇨나 고혈압 같은 가족력이 있는 아이는 유전 질환을 없애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고, 신체적으로나 지능적으로 뛰어난 마춤형 아이들이 평범하게 태어난 아이들을 무시하는 일도 생길 것 같다며 걱정하는 의견도 나옵니다. 부모님 없이 공장에서 길러지기 때문에 사랑이 결핍되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도 합니다. 

과학 기술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결정짓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현재의 기술적 조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상상해 보도록 하는 일은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과학 기술이 인간 사회에 가져올 잠재적 위험과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발전된 테크롤로지를 사회가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기술은 인간을 학살하는 무기로도 쓰일 수 있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은 기술에 대한 구성원들의 폭넓은 이해와 윤리적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이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올바른 가치판단과 합리적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깡통소년>과 같은 과학소설을 더 많이 읽히고 함께 토론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