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를 위한 변명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등 무수한 대중문화에서 가난한 여성이 부잣집 남성을 만나 신분을 상승시키는 이야기를 접하곤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 지고 여성들의 취업 성공이 험난해질수록 이런 이야기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 '시크릿 가든'(2010), '도깨비'(2016) 등에서도 신데렐라 유형의 여성 인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여성의 신분상승 욕망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게 되면 단번에 해소된다는 식의 서사 구조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제공하는 달콤한 판타지는 취업난을 겪으며 위축된 여성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 달콤한 위로를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 현실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들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치환시키고, 여성들에게 너를 구원해줄 유능한 남성의 선택을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미모를 가꾸어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짓된 판타지의 원흉으로 지목받는 것이 바로 신데렐라 동화입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신데렐라 동화를 읽혀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요?
이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신데렐라 동화를 다시 쓴 작품이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입니다. 리베카 솔닛은 '남자가 여자에게 의기양양하게 설명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용어 '맨스플레인(mansplain)'으로 유명한 미국의 여권운동가입니다. 솔닛은 신데렐라를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도록 돕는 사람'인 '해방자'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솔닛의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을 해서 궁궐로 들어가는 대신 그와 친구로 지내며 집을 나와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아이들이 혹할 만한 신기한 마법은 없지만 두고두고 생각할 만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재해석했습니다.
우선 솔닛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데렐라 동화에 대해 변명을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전세계에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들은 300여 종이 넘습니다.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는 9세기 경 중국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도 이 유형에 속합니다. 글의 모두에 문제를 삼은 신데렐라 유형은 사실 17세기 경 프랑스의 샤를 페로가 민담을 채록한 후 가필과 수정을 거쳐 만들어낸 버전인 '상드리옹'과 이것을 수용해 변형시킨 디즈니 버전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미크미크족이 창작한 신데렐라 이야기인 '보이지 않는 사람'은 유럽 문화의 경박함과 여성의 수동성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 구분됩니다. 이것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신데렐라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정신분석적 해석은 이 이야기가 '어린이가 인격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과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제시하는 텍스트'로 이해합니다.(브루노 베텔하임 / 김옥순, 주옥 번역, 옛이야기의 매력 1, 2, 시공주니어) 신화적 해석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층이 모든 레벨 사이에 존재하는 중개기능을 온 힘을 다해서 발견하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나카자와 신이지/김옥희,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동아시아) 역사적 해석은 이 이야기가 '유라시아 대륙 공통의 문화 기반'이었으며 '오랜 세월 유연하게 모습과 내용을 바꾸어가며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을 담아내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고 주장합니다.(주경철.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산처럼)
따라서 신데렐라 이야기를 우리 시대와 맞지 않은 이야기로 치부하고 무조건 거부하는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로 끊임없이 재해석해서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데렐라는 왜 왕자와 결혼을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신데렐라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고학년 아이들에게 적합합니다. 그래야 원전과의 비교를 통해 달라진 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전제 하에 아이들이 알고 있는 신데렐라와 무엇이 다른 지 말해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장 먼저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지 않은 것이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왜 이 책의 신데렐라는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신데렐라가 결혼을 한 것과 혼자서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행복할 지 물어봅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에서 왕자는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무도회를 열고, 잃어버린 신발에 꼭 맞는 여성을 아내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이 책의 네버마인드 왕자는 단순히 여흥을 위해 댄스파티를 열고 구 두 한 짝을 놓고 가 버린 손님한테 미안해서 구도를 찾아줍니다. 그러다 보니 구두의 주인을 찾는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에 빠질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신데렐라 역시 딱히 왕자를 만나서 결혼하기 위해 궁전 무도회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그와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조차 케이크 가게를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꿈을 말했을 뿐입니다. 왕자 역시 갑갑한 궁전 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가끔은 자신이 왕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합니다. 신데렐라와 왕자에게 '집'은 그들을 구속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그곳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결혼을 해서 '집'을 꾸리는 대신 '친구'로 지내기로 합니다.
동화나 신화 속에서 '결혼'은 '서로 대립하는 힘들 간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동화가 흔히 결혼으로 끝맺음하는 까닭은 초반에 제기된 부조화 혹은 결손의 상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솔닛은 이런 신화적 상징을 제거한 대신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왕자는 신데렐라를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신데렐라 역시 왕자를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혼 이전에 공감, 존중, 우정, 유대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아이들도 신데렐라의 꿈이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니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을 합니다. 왕자와도 친구로 지내다가 결혼을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합니다. 왕자보다 더 멋진 남자가 신데렐라 앞에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나요.
신데렐라는 왜 '해방자'가 되었나
이 책에서 신데렐라는 마법 능력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해방자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이 책에서 '해방자'가 무슨 뜻으로 사용된 것 같냐고 묻습니다. 아이들은 신데렐라가 사람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굶주린 아이들한테 밥도 주고 재워주는 등 착한 일을 하는 것을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 맞는 설명이긴 한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신데렐라를 함부로 대했던 의붓 언니들이 찾아와서 사과했을 때 신데렐라는 왜 그녀들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었을지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잠시 곰곰히 생각을 하더니, 만약 신데렐라가 언니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길을 지나가다 만나면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고, 그래서 언니들을 편하게 만나기 위해 용서해준 것 같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의붓 언니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신데렐라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신데렐라는 언니들의 사과를 받아줌으로써 그녀들을 죄책감에서 해방시켰고, 본인 역시 그녀들에 대한 증오와 미움을 벗어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해방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해방자라면 우리 또한 해방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누구든 힘든 사람을 도우면 대모 요정이 될 수 있고, 또 누구든 "다른 사람 것을 가져와야 해."하고 욕심을 부리면 못된 새어머니처럼 될 수 도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대모 요정이 되기도 하고, 또 못된 새어머니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다치지 않는 쥐덫을 놓고, 말구종으로 변신시키기 전에 도마뱀의 의사를 존중하고, 또 평소 노동을 많이 해서 언니들보다 큰 발을 가지고 있는 신데렐라가 꽤나 마음에 드는 눈치입니다. 그림 형제의 원작 속 신데렐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왕자와 결혼을 해서 별 재미가 없었는데, 솔닛의 신데렐라는 자기들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좋았다고 말해줘서 저 역시 한순간 대모 요정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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