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개인적 노력으로 극복할 문제인가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가 대형 로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가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박은빈 배우의 뛰어난 역기력과 흥미로운 스토리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자폐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폐로 판정받은 아동이 우영우처럼 천재로 태어나 변호사로 활동하게 될 확률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우리 사회가 그 드라마에 열광했던 이유는 '젊고 예쁜 천재'라는 빛나는 보석에 '자폐 장애'라는 인간미가 덧칠해져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문득 국민학교 때 배웠던 헬렌 켈러가 떠올랐습니다. 생후 19개월 때 앓은 뇌척수막염으로 시력과 청력을 한꺼번에 모두 잃고 시청각장애인이 된 헬렌 켈러는 앤 설리번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언어능력도 회복하고,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5개국어를 습득하고, 이후 활발한 봉사활동과 장애인 인권 운동에 앞장선 인물입니다. 그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는 '헬렌 켈러 같은 장애인도 노력하면 성공하는데 사대육신 멀쩡한 너희들이 노력하면 못 할 게 뭐 있냐?'며 저희들의 학구열을 자극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그 말씀은 당시 저희들에게 묘한 반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럼 왜 선생님은 기껏 국민학교 선생님밖에 못 되신 건가요? 노력을 안 하신 건가요?'
그런데 지금의 시점에서 헬렌 켈러의 일화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고난 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항상 개인의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만일 헬렌 켈러의 집안이 부유하지 않았고 부모가 교육에 열의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과연 헬렌 켈러는 개인적 노력만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장애가 노력을 통해 극복 가능한 일인가요? 그 말은 누구나 노력을 하면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대학에서 청각장애아교육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특수학교 교사로 일해온 일본의 동화작가 오카 슈조가 쓴 <우리 누나>는 장애 아동들의 평범한 일상을 수채화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린 그의 동화들은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는 밥 알갱이들처럼 독자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로 안내합니다. 무엇보다 장애의 불행을 강조해서 억지로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시혜적 태도를 강요하지 않다는 점이 큰 미덕인 책입니다.
장애를 지닌 가족이 있다면
동화 '우리 누나'에 등장하는 쇼이치는 학교에서 자기 형제에 대한 글쓰기 과제를 받고 어떻게 써야 할 지 망설입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누나 히로는 17세나 되었지만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고작 쓸 줄 아는 건 자기 이름 정도입니다. 3학년 때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누나를 보고 "못난이, 뚱보, 바보. 세 가지 다 갖췄대."라는 말을 듣고 더 이상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쇼이치는 누나가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엄마와 달리 누나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왜 쇼이치는 그런 누나라도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지 토론해 봅니다. 학생들은 누나 히로가 동생에게 친절하고 재미있게 해주는 것 같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누나가 가족들을 참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복지사업소에 다니는 누나가 첫 월급으로 가족들을 레스토랑으로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받은 월급이 고작 3천 엔이어서 식비를 제대로 계산할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당시에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장애인은 정상적인 사람들에 비해 적게 월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회사에서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것을 기피하는 데다 그들의 노동을 낮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같은 노동을 했다면 같은 월급을 주는 것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가족들과 식당에서 돌아온 쇼이치가 왜 글쓰기 숙제를 시작할 수 있었는지 물어 봅니다. 아이들은 쇼이치가 처음으로 받은 월급으로 가족들을 식당에 초대한 누나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을 것이라 말합니다. 장애인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은 이처럼 그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자긍심을 높이고 살아갈 가치를 되찾아 주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숨기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으로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가는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상처를 끌어안기
심한 정신 장애아인 히사에는 6학년이 되었는데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말은커녕 상대방이 하는 말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형편없는 히사에지만 엄마는 히사에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느 날 히사에 엄마는 딸을 목욕시키던 도중 몸 여기저기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외출할 때마다 히사에를 돌봐주는 모리다 아줌마는 기미코라는 3학년 여자 애가 놀러왔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동화 '멍'에서 아이들은 기미코라는 애가 히사에를 때린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았는데도 왜 잠자코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한 학생이 그 이유는 히사에 엄마가 기미코가 친구들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대답합니다. 그런데 기미코도 불쌍한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과 그런 기미코가 자신의 딸을 구타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아이들에게 기미코 이전에 누가 히사에를 찾아와서 함께 놀았을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때서야 아이들은 기미코가 딸의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에 엄마가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미코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자신보다 약한 히사에에게 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엄마가 기미코의 행동을 묵인했던 이유는 기미코가 본성은 착한 아이이고 히사에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사에의 몸에 멍이 하나 생기는 날, 기미코의 몸에도 멍이 한 생겼겠지. 기미코의 몸에서 멍이 사라지는 날, 히사에의 몸에서도 멍이 사라질 거야.'라고 말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자기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의 무서움을 종종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장애를 가진 엄마일수록 아이에 대한 보호 본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히사에 엄마는 다른 아이의 아픔조차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딸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지혜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기미코의 엄마가 자신의 딸이 히사에 같은 장애 아동과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이쪽의 반응이 훨씬 더 궁금해 집니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학교를 다닌다면
동화 '잇자국'은 세 명의 악동들이 장애 아동을 괴롭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술 취한 듯 비틀거리며 걷는 어린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곤 그 아이한테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장난을 치게 됩니다. 몇 번이나 집요하게 장난을 치며 괴롭히던 중 시게루가 그 아이에게 허벅지가 심하게 물려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무엇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님들 몰래 군것질을 한 일, 자신들이 먼저 다리 걸어 넘어뜨리기 내기를 한 일, 무엇보다 장애아이를 그 셋이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일이 떠오릅니다. 이 세 명의 친구들은 과연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했을까요?
거.짓.말. 그들은 철저하게 거짓말로 일관했습니다. 부모님한테도 자신들한테 불리한 얘기는 거의 생략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애아이와 특수학교 선생님 앞에서도 그 아이가 먼저 잘못했다고 우겼습니다. 그들의 온몸을 꿰뚫는 듯한 그 아이의 분노한 시선과 억울하다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울음소리를 그들은 끝내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잇자국은 그들의 마음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고 다리를 저는 사람만 보면 도망치게 되는 버릇을 평생 형벌로 간직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그 세 친구는 왜 장애아동을 괴롭혔을지, 그리고 그들이 거짓말을 했을 때 그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이와 연관해서 최근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학교 폭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는 학교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러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해 줍니다. 둘 다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했을지도 생각해 봅니다. 만약 그 순간 그들이 솔직하게 잘못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당장에는 엄청난 꾸중을 듣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죄책감과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겁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오카 슈조의 동화 <우리 누나>에는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섞여서 지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제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장애인 한 명을 직접 만나세요. 장애인을 아는 데는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만나보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기사, <사람들> '우리 누나' 작가 오카 슈조) 주말에 아이들과 장애시설에 방문해서 그들과 친구가 되도록 한다면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은 조금 더 너그럽고 따뜻해지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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