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시 수업

시인은 왜 그 섬에 가고 싶어 했을까?

ddolappa72 2024. 9. 7. 11:48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시 '섬' 전문)

 


시인은 왜 그 섬에 가고 싶어 했을까?

아이들에게 정현종 시인의 시 '섬'을 읽고 화자는 왜 섬에 가고 싶다고 했는지 말해 보라고 합니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화자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가고 싶다는 뜻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저 친구와 반대로 해석했는데요. 섬은 육지에서 떨어진 고립된 곳이니까 섬에 가고 싶다는 것은 화자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요." 과연 이 두 학생의 해석 중 어떤 해석이 더 그럴 듯해 보이나요?

정현종의 시 '섬'은 단 두 줄짜리에 불과하지만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난해한 시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위치한 섬은 사람들을 연결시켜 줄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장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화자가 사람들 사이에 놓인 섬에 가고 싶은 이유가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소통을 단절하고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인지 선뜻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 시를 아이들과 읽어보자고 결정한 것은 아무리 짧은 시라도 그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라는 취지였습니다. 제 예상대로 아이들은 서로 상반되는 해석을 놓고 옥신각신했습니다.


섬은 핸드폰을 표현한 것이다?!

이 때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의견을 말합니다. "선생님, 제 생각에 이 시에서 섬은 핸드폰과 비슷한 것 같아요. 핸드폰도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지만, 자꾸 걸려오는 핸드폰 때문에 귀찮아서 조용한 곳에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거든요. 어쩌면 시인도 유명한 분이니까 자꾸 전화가 걸려와서 귀찮으니까 섬에 가고 싶다고 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 학생의 대답을 듣는 순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제 온몸이 전율했습니다. 섬과 핸드폰을 연결해서 이 시를 이해하다니요! 게다가 그 학생의 대답은 앞의 두 학생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힌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일단 그 학생에게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고 칭찬을 해줍니다. 실제로 워키토키 장난감을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자 아이들은 장난감을 하나씩 손에 들고 서로 멀리 떨어져서 장치의 성능을 시험해 보았다는 일화도 소개합니다. 이 사례는 핸드폰이나 인터넷과 같은 통신 장치의 발전이 인간 사회에 어떤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 사람에게는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서 사교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은밀한 비밀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냐고 아이들한테 반문합니다. 그러니까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모순된 두 측면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정현종의 시는 모순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표현한 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광장'과 '밀실'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훈도 인간에게는 '광장'과 '밀실'이 둘 다 필요하다고 했었습니다. '광장'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며 서로 토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장소를 뜻합니다. 반면 '밀실'은 개인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사적인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이 둘이 동시에 있어야만 사회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광장'만 있고 '밀실'은 없다면 어떨까요? 개인의 사생활은 없고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해야 한다면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또 만약 '밀실'만 있고 '광장'은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일 때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인데 '밀실'에 갇힌 존재는 섬에 고립된 로빈슨 크로스처럼 외롭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훈은 '광장'은 없고 '밀실'만 있는 남한도 거부하고, '광장'만 있고 '밀실'은 없는 북한도 거부하고, '제3국'을 선택했던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최인훈이 소설을 통해 길게 풀어낸 생각을 정현종 시인이 단 두 줄의 시로 압축해서 표현해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또한 시인의 시를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에 적용시켜 이해한 저 여학생은 어떤가요? 시 읽기는 곧 우리의 삶 읽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여학생은 너무나 훌륭히 보여주고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