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4학년

마저리 윌리엄즈/김완균 번역, 벨벳 토끼 인형, 별천지

ddolappa72 2024. 7. 7. 17:37

 

자유를 찾아나선 토끼의 모험

 

경험과 독서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 책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한테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물로 받은 장난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은 '가지고 있는 장난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인가요?' 그러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인형, 로보트, 비행기 등 자신들이 아끼는 애장품들을 소개하곤 합니다. 그 중에는 아기 시절부터 사용해온 담요 같은 물건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참으로 각양각색의 물건들과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보다 쉽게 이야기 속 소년과 토끼 인형의 관계에 감정이입할 수 있게 됩니다. 책 속의 세계가 아이들이 알고 있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고 친숙하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관심도와 집중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과 관계된 주제로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수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이들의 개별적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독서와 경험 간의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을 지닙니다. 아이들은 경험을 배경지식으로 삼아 낯선 책의 세계를 탐독해 나갑니다. 그리고 책읽기를 통해 습득한 지식과 경험은 다시 아이들이 일상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혼란스러운 경험들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인식틀을 형성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책 읽기는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유리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독서 수업에서 어린 독자들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에 관한 것이 주가 되기보다는 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되묻는 일입니다. 텍스트란 숲으로 경험이 부족한 독서가들을 인솔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방식대로 숲길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잘 리드하는 것입니다.


소년은 왜 토끼 인형을 살아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책에서 소년은 장난감 토끼 인형을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런 행동이 어린 시절에 국한된 별난 기행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한 양상이라면 어떨까요? 인간이 인간이 아닌 사물이나 동식물을 마치 인간처럼 대하는 태도가 인간의 오래된 본능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일본의 신화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오래 전 인류는 '비인간' 사물들과 '대칭적 관계'를 맺어왔지만, 오늘날에는 그 관계가 파괴되어 환경 파괴나 착취 등 전지구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인간과 사물들 간의 대칭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나카자와 신이치/김옥희 번역, 대칭성 인류학, 동아시아) 그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들은 자연에 생명과 신성이 깃들었다고 믿고 자연 역시 인간과 대등한 인격을 지닌 것으로 대했다면, 과학 기술과 합리성이 증가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죽은 사물이자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단으로만 간주하게 되면서 지구 전체의 생명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화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지만, 저는 어린이들이 장난감과 맺는 관계 속에서도 유사한 답변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린이들은 장난감과 무목적적이고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에게 기대하는 것은 순수한 놀이와 즐거움이지 돈이나 권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년이 토끼 인형을 살아 있다고 여기는 것도 그가 인형과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존재론적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입니다. 소년이 토끼 인형과 맺는 관계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아니라 나카자와 신이치가 말한 '대칭성'의 관계입니다.

피그말리온 신화나 '프랑켄슈타인', '피노키오' 등의 수많은 고전들에서 수많은 살아 있는 비인간 사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로봇 기술과 인공지능이 발달한 요즘 살아 움직이는 비인간 사물들의 숫자는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  'A.I', '바이센테니얼맨', '토이 스토리', '허', '메간' 등이 대표적입니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아이들이 장난감과 맺는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짜'란 무엇인가요?

마저리 윌리엄즈의 이 책은 토끼 인형이 '진짜'가 되어간다는 점에서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와 매우 유사합니다. 하지만 피노키오가 어른들이 기대하는 모범적인 소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면, 마저리 윌리엄즈는 '진짜'라는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탐사하는 과정을 통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가) 자동 장난감들은 최신 기술로 꾸며져 있어서 자신들이야말로 진짜라며 잘난 척을 했습니다.

(나) “어떤 아이가 너를 오래오래 사랑해 준다면, 그것도 그냥 가지고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해 준다면, 그러면 넌 진짜가 되는 거야.”

(다) “내 토끼 이리 줘! 그리고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얘는 인형이 아니야. 진짜라고!”

(라) “소년에게는 진짜였지. 그 애는 널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진짜가 되는 거야.”

이 책에서는 유독 '진짜'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데, 그 중 몇 가지의 사례들입니다. 자동 장난감들은 벨벳 천으로 만들어진 토끼 앞에서 '진짜'라고 잘난 척을 합니다. 그런데 태엽이나 모터로 움직이는 최신식 장난감들은 무슨 의도로 자신들이 '진짜'라고 말한 것일까요? 아이들은 헝겊 인형과 달리 움직이기 때문에 '진짜'라고 말했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또 최신 장난감들은 값비싸기 때문이라거나 자동차나 기차 같은 실제 물건들과 비슷하게 만들어 졌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유추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단어의 의미가 사전에 나온 대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단어가 사용되는 문맥과 말하는 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가죽 말 인형이 토끼 인형에게 하는 말인 (나)에서 사용되는 '진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말 인형이 토끼를 위로해주기 위해 '진짜'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하면서도, 오래 가지고 놀다 보면 정이 들어서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책을 읽을 때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맥 속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 보는 일은 '미숙한 독자'를 '숙달된 독자'로 성장시키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요정은 왜 토끼 인형을 '진짜' 토끼로 만들어 주었을까요?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질문하지만 가장 대답하기 곤란해 하는 문제는 요정이 왜 토끼 인형을 진짜로 만들어 주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가장 손쉬운 답변은 토끼 인형이 불쌍해서라는 대답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불쌍한지 다시 묻고 아이들은 성홍열 때문에 아이의 품을 떠나 쓰레기통에 버려진 토끼 인형이 불쌍하다고 대답하고, 그럼 버려진 인형들은 모두 요정이 나타나 진짜로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인지 되물으면 아이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이런 경우 요정이 토끼 인형 앞에 나타난 상황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라고 제안합니다. 책 읽기는 교사가 학생에게 정답을 확정해서 말해주는 수업이 아니라 함께 가능한 답을 찾아 궁리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는 수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읽다 보면 조금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토끼 인형은 이미 소년에게 '진짜'라고 인정을 받았지만 정원 한 구석에 버려진 채 불태워지길 기다리는 상태입니다. 만약 소년의 인정으로 토끼 인형이 '진짜'가 되었다면 가죽 말 인형의 예언처럼 토끼 인형은 만족한 채 행복한 죽음을 맞이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토끼 인형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요정이 나타나기 전 토끼 인형은 정원에 뛰놀던 살아 있던 토끼들과 만났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토끼 인형은 자신의 뒷다리가 실로 묶여 있어 함께 뛰놀지 못한다는 신체적 한계를 자각하게 됩니다. 또한 소년의 사랑만으로 '진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토끼 인형의 믿음 역시 성홍열로 버려지게 됨으로써 철저하게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때 토끼 인형이 흘린 '진짜' 눈물이 땅에 떨어지고, 떨어진 눈물방울에서 꽃이 피어나고, 피어난 그 꽃송이 안에서 요정이 나타난 것입니다. 

토끼 인형이 버려지기까지의 상황을 꼼꼼히 읽으면 왜 요정이 그를 '진짜'로 만들어 주었는가를 유추해볼 수 있게 됩니다. 토끼 인형은 살아 있는 토끼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아직 완벽한 '진짜'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비록 소년에게 '진짜'라고 인정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년의 시선에서만 그런 것이고 하녀의 시선에서 토끼 인형은 태워버려야 할 불결한 털뭉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소년의 사랑을 통해서만 '진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토끼 인형에게 소년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은 더 이상 '진짜'가 될 방법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관계 단절에서 오는 절망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요정을 불러낸 것은 아닐까요? 심지어 요정은 토끼 인형이 흘린 '진짜 눈물'에서 나온 존재라는 사실은 그가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진짜'가 된 것이고 요정은 그저 그 사실을 사후승인한 것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토끼 인형은 왜 '진짜'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이들은 토끼 인형이 '진짜'가 되고 싶었던 이유를 다양하게 찾아냅니다. 먼저 소년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그랬다고도 하고, 살아 있는 토끼들과 놀고 싶어서라고도 하고, 또 모든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싶어서라고도 합니다. 아이들이 찾아낸 다양한 이유들은 '진짜'가 되고 싶었던 토끼 인형의 욕망이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버려지고 망각되기 싫어서 소년의 사랑을 원했던 토끼는 차츰 소년의 품을 벗어나 자유롭게 되기 위해 '진짜'가 되고 싶은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즉 이 책은 토끼 인형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소년과 토끼 인형이 맺고 있던 관계는 부모님과 아이가 맺고 있는 관계로 대치해서 읽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부모님의 품을 떠나서 자유롭게 모험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토끼 인형이 소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어졌듯 아이 역시 부모들에게 선물로 주어졌을 뿐 결코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자신의 토끼 인형을 알아보지 못한 까닭을 '진짜' 토끼로 변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소년은 토끼 인형을 '진짜'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토끼 인형이 소년의 소유물이었을 때만 허락된 호칭일지 모릅니다. 소년은 자신의 통제력이 발휘되는 영역 내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서만 '진짜'로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을 지녔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향권을 벗어나 자유롭게 된 토끼 인형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설령 살아 있는 토끼가 자신이 예전에 갖고 있던 토끼 인형과 닮았다 하더라도 '인형' 토끼와 '살아 있는' 토끼를 존재론적으로 등치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이야기는 토끼의 성장만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병에서 회복된 소년 역시 토끼 '인형'을 살아 있다고 여기지 않을 만큼 성숙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끼 인형이 소년의 품을 벗어나 자유의 땅으로 나아간 것처럼 소년 역시 장난감을 갖고 놀던 유년의 세계를 떠나 성인의 세계로 성큼 한 발을 내디딘 것이지요. 동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슬픈 분위기는 어쩌면 이 책이 성숙의 조건을 익숙한 세계와의 결별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의 세계와 매일 이별하며 '진짜'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로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언젠가는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