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슈는 어떻게 훌륭한 첼로 연주자가 되었나
고슈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샛별 음악단'에 소속된 첼로 연주자입니다. 그런데 실력이 동료 연주자들 가운데 가장 형편없었기 때문에 늘 지휘자한테 꾸지람을 듣기 일쑤입니다. 다들 곧 있을 마을 음악회에서 연주할 베토벤 교향곡 6번 연습에 한창입니다. 지휘자는 사사건건 고슈의 연주에 트집을 잡습니다. 고슈의 첼로 연주는 박자와 음정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다 못한 지휘자는 마침내 그에게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고슈, 자넨 정말 문제야! 표정이 아예 없어. 분노고 기쁨이고 하나도 표현하지 못하잖아! 게다가 다른 악기와 호흡이 전혀 안 맞는단 말일세. 항상 자네 혼자 신발끈을 질질 끌며 뒤꽁무니를 따라오는 것 같다구." 고슈는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그 날 이후 고슈가 혼자 살고 있는 물방앗간으로 매일 밤 동물들이 찾아 옵니다. 첫 손님인 고양이는 고슈의 텃밭에서 설익은 토마토를 잔뜩 따 들고 나타나서 슈만의 <트로미메라이> 연주를 부탁합니다. 꾹꾹 눌러 둔 울화통이 폭발한 고슈는 폭풍 같은 기세로 <인도의 호랑이 사냥>을 연주해서 고양이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고슈는 곤히 잠 들 수 있었습니다. 고슈는 음악을 통해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지,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로 뻐꾸기가 방문합니다. 뻐꾸기는 도레미파를 정확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가르쳐 달라 합니다. 그러나 고슈가 손이 아플 정도로 반복해서 첼로를 연주해도 뻐꾸기는 계속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처음에는 짜증을 내던 고슈도 점차 새의 음이 진짜 도레미파하고 똑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뻐꾸기 덕택에 고슈는 음악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철저하게 익혀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세 번째로 작은북을 연주하는 아기 너구리가 찾아와 고슈의 첼로 소리에 맞춰서 합주를 해보고 싶다고 부탁합니다. 고슈가 연주를 하면 아기 너구리가 나무때기로 첼로의 아래 부분을 통통 두드리는 방식으로 합주를 하면서 고슈는 점차 함께 연주하는 것의 즐거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들쥐가 병든 아기 쥐를 데리고 나타나 첼로 연주로 병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의 보잘것 없는 연주가 동물들의 병을 낫게 해 준다는 말에 고슈는 음악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에 대한 헌사로서 <첼로 켜는 고슈>
이 동화를 쓴 일본의 아동 문학가 미야자와 겐지는 유명한 SF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 영감을 준 동화 <은하철도의 밤>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첼로 켜는 고슈>에서 서툰 첼로 연주자 고슈가 동물들과의 신비로운 만남을 통해 점차 훌륭한 연주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연과의 교감이 진정한 예술로 이끈다는 주제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좋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주제는 고슈와 동물들이 만나는 부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화 전체에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은 동화의 처음과 끝에 반복해서 등장하고, 그 사이에 고슈가 동물들을 만나는 이야기가 끼여 있습니다. 고슈가 동물들을 통해 단지 첼로 연주 기술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연주하고자 했던 베토벤의 음악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시골 생활에 대한 회상(Pastoral-Sinfonie oder Erinnerungen an das Landleben)'을 뜻하는 전원 교향곡은 베토벤이 자연을 거닐며 얻은 느낌을 음악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한 편지에서 이 곡을 작곡했던 상황을 다음처럼 적고 있습니다. “숲 속을 거닐 때, 나무들을 지날 때, 풀을 밟으며 그리고 돌멩이들을 밟으며 걸어갈 때 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숲, 나무, 돌멩이는 우리가 원하는 울림을 전해줍니다.”
평생 자연 속에서 살며 자연을 사랑했던 겐지에게 베토벤의 음악은 자신이 동경하던 예술의 결정체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에 대한 헌사로 전원 교향곡의 주제와 형식을 변형시켜 이 동화를 창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전 교향곡의 4악장 형식을 따르지 않고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원 교향곡처럼 겐지의 <첼로 켜는 고슈>는 베토벤의 6번 교향곡과 4마리 동물들과의 만남에서 연주되는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의 소리들이 음악이나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 역시 유사합니다. 평생 독신으로 고독하게 살며 병마와 싸우며 예술을 창작했던 점도 두 예술가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겐지의 이 동화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에 대한 일종의 헌사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화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원교향곡은 물론이고 동화에 언급되고 있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äumerei)'나 '인도의 호랑이 사냥'과 같은 곡들도 찾아서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화에서 음악 듣기, 음악에서 그림 떠올리기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읽다 보면 마치 책 저 너머로부터 희미하게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듣고 너무나 괴로워서 눈과 이마에서 불꽃을 팍팍 튀기고, 견디다 못해 문에 몸을 쿵쿵 부딪히던 <인도의 호랑이 사냥>이란 곡은 어떤 음악이었을까요? 또 병에 걸린 아기 들쥐에게 고슈가 들려주던 첼로의 연주는 어떤 분위기의 음악이었을까요? 1982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첼로 켜는 고슈>에 사용된 음악을 가져와 이 곡이 어떤 동물에게 어울리는지 물어보면 아이들이 책과 음악을 연결시켜 상상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음악을 들려주고 연상된 이미지를 활용해 글을 써 보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전원교향곡은 베토벤의 자연의 소리들에 반향된 자신의 내면 풍경을 음악적으로 그려낸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향곡에서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 폭풍우 치는 소리, 뻐꾸기 소리 등은 실제 자연의 소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작곡가 자신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무엇을 떠올렸을까요? 이 음악이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풍경을 떠올려도 괜찮고, 이 음악이 어울리는 상황을 떠올리게 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음악을 듣고 자유롭게 어떤 이미지든 연상하도록 해서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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