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중1

허균, 홍길동전

ddolappa72 2025. 4. 20. 09:55

 
<홍길동전>의 저자는 누가인가

'홍길동'은 공문서의 견본용 이름으로 널리 사용될 만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이름입니다. 이 이름의 주인공은 조선 광해군 때 활동했던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에서 유래한다고  배웠습니다. '홍길동'이란 이름이 이토록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를 딛고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원한 '의적'이었다는 사실도 포함될 것입니다. 영국의 '로빈 후드'나 중국의 '수호지' 같이 부패한 정치 권력과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도둑' 이야기는 백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서 언제나 큰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홍길동전'의 주인공은 허구의 창작물이 아니라 역사적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그는 1500년(연산군 6년) 무렵 충청도 일대에서 활동한 도적으로 그 악명은 그가 체포되어 처형된 후에도 인구에 회자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그가 체포된지 88년이 지난 1588년(선조 21년)에 쓰여진 <선조실록>에도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그는 조선 시대에 '도둑계의 전설'로 인식되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30여종의 <홍길동전> 이본들은 모두 19세기 이후의 작품들로 허균이 썼다는 '한글본 홍길동전'의 실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허균이 정말 한글로 '홍길동전'을 쓴 것인지도 모호합니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 주장한 최초의 연구자는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조선문학 담당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1878~1967)입니다. 그는 1927년 조선 중기문인 이식(1584~1647)의 <택당집>에 실린 ‘허균은 또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전에 비겼다는 구절을 들어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그의 경성제대 제자들을 중심으로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택당집>에서 언급한 허균의 <홍길동전>이 한글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허균이 '최초의 한글소설'을 썼다는 주장은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기사, 홀연히 나타난 또다른 홍길동…, 홍길동전은 대체 누구의 작품인가)

보다 급진적으로 이윤석 교수는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한뼘책방)는 책에서 <홍길동전>은 허균이 아니라 1800년 무렵 어느 평민 작가가 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소설의 발전 단계상 중국 소설을 번역하다가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형식의 한글 소설이 창작되기 때문에 '홍길동전'은 허균의 시대에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상으로 허균이 죽은 후 70년이 지나서야 등장한 숙종 때 도적 장길산이나 대동법 시행 후 대동미나 대동포의 출납을 맡아본 관청인 선혜청과 선혜낭청이 작품에 등장한 것 역시 허균의 시대와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이라는 교과서적 지식은 잠시 기억에서 지워두고, 작품 자체를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간 고전이라는 명성에 짓눌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길동은 왜 '호부호형'을 하고 싶어 했나

길동의 불만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리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 하였는데 이는 나를 두고 말함인가? 아무리 하찮은 사람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는데, 나만 홀로 그러하지 못하는구나. 내 인생은 어찌하여 이리도 기박한가?" 양반 아버지인 홍재상과 하녀 춘섬 사이에서 태어난 길동은 서얼이라는 신분의 벽 때문에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가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고 신기한 도술을 자유자재로 부릴 만큼 재주가 뛰어나도 적자와 서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사회 구조에서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그 동안 길동은 왜 '호부호형'을 하지 못했는가 하는 문제에 주목해서 조선 시대의 서얼차별과 처첩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습니다. 그럴 경우 길동은 사회적 불평등에 저항한 선구적 인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길동이 서얼을 차별하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딱히 명확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길동은 자신의 처지는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양반의 첩으로 살아야 하는 어머니의 처지에 대해서는 어떤 동정이나 고민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율도국의 왕이 되어 왕비를 셋이나 두는 것은 자신이 항의했던 적서차별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는 자기 모순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 왜 길동은 그토록 호부호형을 하고 싶었는가 물어보아야 합니다. 

(가) 하지만 대장부가 어찌 구차하게 근본에 얽매여 후회를 하겠습니까? 이 몸이 당당하게 조선국 병조판서 대장인을 차고 상장군이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산중에 들어가 세상 영욕을 모르는 채 지내고자 합니다.

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은 까닭은 단순히 친부의 정이 그리워서가 아닙니다. 그는 홍재상을 아버지라 부름으로써 자신이 그의 정당한 아들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정상적인 관계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길동이 입신양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동은 홍재상이 호부호형을 허락했지만 집을 떠났습니다. 아들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길동의 욕망은 애초부터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길동의 활빈당 활동조차 그가 순수한 목적으로 백성들을 위한 목적을 지닌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는 활빈당 활동을 시작하면서도 '큰 이름을 남겨 후세에 전하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붙잡으려는 임금에게 병조판서의 지위를 내린다면 순순히 잡히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탐관오리들에 대한 처벌과 백성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그 대신 길동은 임금에게 입신양명을 꿈꾸었던 자신의 최종 목표인 병조판서 자리를 요구했습니다. 즉 길동의 활빈당 활동은 임금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해서 주목하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그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최종 목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호부호형에 대한 길동의 집착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배후에 있는 왕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가부장적 사회 질서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분상승에 대한 강한 욕망이 길동이 가정에서 사회로 인도하고 그리고 다시 율도국 건설로 이끌어나갔던 것입니다. 길동이 아버지의 묘를 굳이 율도국으로 옮긴 것 역시 효심의 표현으로 볼 수 없습니다. 길동은 아버지를 선왕으로 추존하면서 왕으로서 정당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능력'과 '신분' 간의 차이로 정체성 문제를 겪던 길동은 왕의 지위에 오르게 되면서 개인적 욕망의 궁극적 성취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홍길동전>은 사회 개혁적 외관을 띠고 있지만 신분상승의 욕구를 체제 순응적으로 실현시킨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고전 소설 <전우치전>에 기반해 제작된 영화 '전우치'(2009)의 포스터



<홍길동전>을 어떻게 현재화할 수 있을까

'의로운 도적'은 일종의 언어 모순입니다. '타인의 재산을 훔치는 행위'와 '의로움'은 서로 배척되는 가치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절도행위도 압제적인 공권력이나 외세의 부당한 지배와 같은 압도적인 악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의롭게 보일 수도 있을 뿐입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부당한 적에 대항하는 적은 영웅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대에는 탐관오리 못지 않게 백성들을 괴롭혔던 도적도 의적으로 둔갑해서 회자되기도 합니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도 그러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로빈 후드, 수호전, 아르센 뤼팽 같은 낭만화된 도적 이야기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 것은 역으로 여전히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정의로운 세상이 되었다면 의적 역시 청산되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문서의 견본용 이름으로 '홍길동'이 널리 사용된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홍길동전>에는 여전히 현대 대중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멜로 드라마에서 흔히 발견되는 출생의 비밀, 슈퍼 히어로의 초능력을 연상시키는 도술, 차별 철폐와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 권력자를 도술로 희롱하는 코믹한 요소 등. 고전 소설 <전우치전>에 기반해 영화 <전우치>(2009)가 제작된 것처럼 <홍길동전>에서 현재화시킬 만한 요소를 찾아보는 것은 학생들이 고전을 보다 가깝게 받아들이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영웅 소설의 구조를 이용해 현대적인 영웅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홍길동전>을 현재화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조동일 교수는 <홍길동전>에서 발견되는 영웅 소설의 구조를 "고귀한 혈통, 비정상적 출생, 탁월한 능력, 시련, 조력자의 도움, 고난 극복, 행복한 결말"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 서사 구조에 따라 영화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을 분석해 보면 대략 잘 들어맞는다는 점에서 유용한 창작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조지프 캠벨이 19단계로 제안한 '신화 속 영웅의 여정'과 그것을 다시 12단계로 축소시킨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서사모형이 신화 분석과 스토리텔링에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들보다 더 간략하게 압축된 고전소설의 영웅 서사 구조는 학생들이 보다 쉽게 응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홍길동전>을 비롯한 고전 교육은 과거처럼 교과서적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쳐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축적된 연구 성과를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학생들이 고전적 텍스트를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업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모델 개발은 <홍길동전>이 '완결된 텍스트'가 아니라 독자가 개입해서 '다시 쓸 수 있는 텍스트'라고 인식하는데서 출발합니다. 학생들이 고전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빈틈과 여백을 비판적으로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하고, 각자가 가진 상상력과 지식을 동원해서 그러한 공백을 채워넣고 변형시키도록 함으로써 고전은 새롭게 재탄생될 수 있습니다. 고전을 어떻게 현재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어떤 대답을 내놓가에 따라 21세기 고전 교육의 승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