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중1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사피엔스21

ddolappa72 2025. 4. 13. 19:11

 
김첨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1924)은 일제 강점기 하층민의 비극적 삶을 탁월한 기법으로 묘사해서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한국의 대표적 단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인력거꾼 김첨지라고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는 '나이 많은 남자를 낮춰 부르는 호칭'인 첨지라 불릴 뿐 그의 실명이 알려진 바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김첨지는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조선의 민초들을 대표하는 인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아야 했던 그 인물에게 정당한 이름과 구체적 얼굴을 되찾아주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김첨지는 동소문(현재의 혜화문) 근처에 있는 집에 딸린 행랑채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집에서 나온 그가 "문안에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렸다고 한 것으로 봐서 그 당시 서울의 빈민촌 중 동소문과 가장 가까운 낙산 이화마을에 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화마을은 일제 강점기 빈민들이 움막을 짓고 살던 곳으로 '토막촌'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기사, [서토불이]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따라가기) 그가 인력거를 끌고 지나가는 전차 정류장, 동광학교, 남대문정거장, 인사동 등은 모두 근대화되어 가던 도시적 공간들인 반면, 그가 거주하던 장소는 이런 근대화로부터 소외되고 주변화된 공간일 뿐입니다.

그에게는 병든 아내와 3살배기 아들 개똥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달포 전부터 병으로 드러누운 아내에게 '오라질 년'이라고 욕설을 내뱉고 뺨을 때릴 만큼 폭력적이고 거친 사람입니다. 그리고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를 갖고 있을 만큼 무지몽매합니다. 이런 폭력과 무지는 시대로부터 소외된 하층민들의 전형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 달리 김첨지는 아내와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는 뺨을 맞은 병든 아내의 우는 모습을 보고 뒤돌아 자신의 눈시울도 뜨근해지는 남자입니다. 그는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보채는 아내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못 사주는 처지를 시원치 않아 합니다. 투박하고 거친 표현과 달리 아내를 아끼고 걱정하는 속마음을 눈치채고 있어야 인력거일을 하며 돈을 벌수록 불안해 하는 그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인력거꾼의 모습



왜 주인공은 인력거꾼이었을까

그 날 아침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을 매정하게 뿌리치며 집을 나올 때도 김첨지의 속마음은 요동쳤습니다. 아내 곁에 머물고 싶기도 했지만 돈을 벌어야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설렁탕 국물을 사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많은 손님 덕택에 돈이 쌓일수록 그는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손님을 태우고 이동하면서도 수시로 "울 듯한 아내의 얼굴"과 "엉엉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이 환영처럼 출몰합니다. 인력거를 몰고 자기 집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다리는 오히려 무거워졌습니다. 김첨지의 이런 불안한 심리는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고약한 운명에 대한 예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혹여나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현진건의 탁월한 심리 묘사는 텍스트에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어 독자들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김첨지의 심리적 불안감과 더불어 그의 육체적 피로감도 주목해야 합니다. 남대문정거장까지 손님을 태워다 주고 난 후 김첨지는 “노동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괴치 않고 괴로운 것인 줄 절절히 느끼었다. 정거장을 떠나가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라고 묘사됩니다. 그는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 인력거로 무려 15km 가량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 날 변변한 끼니조차 제때 먹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질퍽거리는 도로와 싸늘한 날씨에 맞서기 위해 그는 어떤 신발을 신고 또 어떤 외투를 입고 있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거의 맨몸으로 세상과 싸우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인력거꾼이라는 직업은 당시에 이미 사양직종이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인이 서울에 들여온 인력거는 오랫동안 서울의 교통수단 역할을 했지만, 1920년대에 이미 전차가 서울 시대 대중교통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925년 처음으로 택시회사가 설립되고, 1928년에 버스사업이 인가되면서 인력거는 거의 소멸 직전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기사, 인력거꾼 사라졌지만.. 四大門 안엔 고단한 '김첨지의 삶' 여전)

게다가 당시 인력거 요금은 단거리의 경우 5정보(약 500m)에 15전, 장거리는 1리(약 4km)에 60전이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변변지 않은 수입에 민족적 차별 역시 심해서 일본인 인력거꾼이 수익의 30%가량을 사납금으로 냈던 것에 비해 조선인은 40%를 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인력거꾼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김첨지가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쌀이 무서워 전차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져서 인력거를 세워 놓고 형세를 관망했던 것은 그가 조합에 가입하지 않고 불법으로 인력거 운행을 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현진건이 이런 인력거꾼을 주인공을 내세운 건 그들이 "몸뚱이 하나에 의지해 살아가던 당대의 민초들을 대표하는 직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만큼 생존의 극한에 내몰린 식민지 하층민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직업도 없었을 것입니다.
 

2014년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개막작으로 발표된 애니메이션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장면



왜 그날따라 하루 종일 비가 왔을까

소설의 첫머리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 오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작가는 왜 날씨를 이렇게 설정한 것일까요?

(가)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나) 흐리고 비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하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하다.

(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사실 김첨지가 이 날 유달리 손님을 많이 태울 수 있는 행운을 누린 것은 '얼다가 만 비'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정거장에서 내린 손님들은 질척거리는 도로를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불편해서 인력거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동시에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우울하고 슬프게 연출하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특히 궂은 비가 '의연히(전과 다름없이)' 내린다는 마지막 문장은 작은 행운의 연속으로 김첨지가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동시에 하늘마저 그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비극적 운명으로부터 빗겨갈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로운 비애감에 젖게 합니다.

사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겪어야만 하는 비극의 모든 원인은 돈에 있습니다. 그래서 김첨지는 집에 곧바로 가지 않고 들른 선술집 벽에 돈을 집어던지며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라며 욕설을 퍼붓습니다. 작가는 그 장면에서 "정당한 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김첨지가 그토록 원한 것이지만 결국 김첨지를 참혹한 불행에 빠뜨린 원인이 바로 그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 전체의 아이러니는 바로 돈의 이런 양면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첨지는 아내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한 후에야 자신에게 '운수 좋은 날'이 사실은 '아내가 죽은 운수 나쁜 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돈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 믿는 태도는 언어를 표현된 그대로 믿는 것만큼이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언어가 진실과 거짓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양가적 매체이듯 돈 역시 구원과 몰락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돈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비극적 아이러니의 속성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