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2학년

그림 형제/고우리 번역, 브레멘 음악대

ddolappa72 2025. 3. 29. 23:35
(실린곳 : 그림 형제/고우리 번역, 황금 열쇠, 상상박물관)

 
동화 혹은 메르헨

나폴레옹이 독일 지역을 침량해 점령하자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민족적 저항 의식이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나폴레옹으로부터 굴욕을 당한 이유가 국가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독일 민족을 통일시키기 위해 게르만 민족의 역사, 신화, 전설, 민담 등을 열정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야콥과 빌헬름이란 이름을 지닌 그림 가문의 두 형제는 기꺼이 이런 흐름에 동참해서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민간 설화를 모아서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메르헨>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동화'로 알고 있는 독일어 '메르헨(Märchen)'은 옛이야기, 민담, 전래 동화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림 형제가 수집한 원래 이야기들은 독일 민족의 풍습, 역사, 언어, 생활상 들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좋은 자료이지만 어린이용 읽을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림 형제들은 아이들 교육에 걸맞게 순화시켜 책으로 묶었고, 이것이 오늘날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진 것입니다.(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김서정 번역, 그림 메르헨, 문학과지성사) 그러니까 그림 형제의 메르헨은 우리에게 예전부터 내려오던 '전래 동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안데르센의 동화는 '메르헨'이란 장르가 갖고 있던 환상적 요소를 수용해서 작가 개인의 세계관을 담아낸 '창작 동화(Kunstmärchen)'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메르헨'이 우리에게 '동화'로 소개되어 지금껏 읽히는 이유는 단순히 사람이 개구리나 고슴도치가 된다든가, 난쟁이나 마녀나 요정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신기한 요소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전래된 옛이야기 안에는 여전히 귀 기울일 만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다층적 면모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기에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들한테 읽히는 동화가 인간의 어떤 측면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첨언을 하자면, 그림 형제의 동화나 안데르센의 동화가 전세계인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해당 국가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것을 활용해 2차, 3차 창작물을 만들어서 꾸준히 명백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요즘 한국의 아이들이 전래동화를 잘 읽지 않고, 대신 창작 동화나 서양의 판타지 문학 등을 즐겨 읽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하는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한국의 전래 동화나 초창기 창작 동화를 발굴해서 교재에 반영하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역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창비아동문고에서 나온 한국 전래동화 시리즈나 보급판으로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서정오 선생님의 옛이야기 보따리 시리즈를 가정에 비치해 두고 자녀들과 함께 읽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형 야콥 그림과 동생 빌헬름 그림의 초상


동물들은 왜 쫓겨 났는가

유명한 동화 '브레멘의 음악대'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하나 같이 주인으로부터 쓸모없다는 판정을 받고 버려졌습니다. 평생 방앗간에서 일을 하던 당나귀는 늙고 힘이 빠지자 주인이 여물을 아끼려고 했습니다. 기운이 빠져 더 이상 사냥에 나갈 수 없던 사냥개는 때려 죽이려고 하는 주인으로부터 달아났습니다. 늙어서 이빨이 뭉툭해져서 쥐를 잡는 대신 난롯가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고양이는 주인 여자가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자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날마다 목청이 터지도록 시간을 알려준 수탉은 손님용 수프 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집을 탈출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었음직한 사건은 16세기 전반기 독일 전역을 휩쓴 독일 농민전쟁입니다. 중세 봉건사회에서 농민은 세속권력(영주, 제후, 관리)와 종교권력(교황, 수도원)을 동시에 먹여 살린 유일한 생산 계층이었습니다. 이 두 권력은 농민들로부터 세금, 관세, 십일조 등의 명목을 붙여 무자비하게 착취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의 공포가 유렵 대륙을 휩쓸고 간 후 농민 계층이 짊어져야 할 부담은 더욱 늘어났고, 더욱 활발해진 경제 활동으로 인해 봉건 체제의 급격한 붕귀가 가속화되자 농민들은 최소한의 보호막 구실을 하던 공동체로부터 강제로 내쫓겨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알자스, 작센, 튀링겐, 슈바벤에 이어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억눌리고 숨죽여 왔던 농민들이 대거 봉기를 읽으킨 사건이 독일 농민전쟁입니다.(최우성, 동화경제사,인물과사상사)

억울하게 박해 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저 먼 나라의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한국의 동화 작가 루리는 그림 형제의 동화를 패러디해 오늘날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약자들의 초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운전사에서 해고된 당나귀, 식당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려진 바둑이, 실명한 한 쪽 눈 때문에 편의점에서 해고당한 고양이, 골목에서 불법 노점상을 하다가 쫓겨난 꼬꼬댁이 그들입니다.(루리,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비룡소) 이처럼 좋은 이야기에는 보편적으로 수용할 만한 요소가 들어 있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에게 이런 복잡한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차라리 그보다는 집에서 도망칠 때 동물들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그리고 집에 나와 혼자였던 동물들이 서로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가) 도망칠 때의 기분 : 우울하다, 앞이 깜깜하다, 어이없다, 슬프다, 배신자다, 짜증난다, 내 앞엔 죽음뿐, 화가 난다, 앞이 깜깜하다

(나)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기분 : 운이 좋다, 설렌다, 신난다, 즐겁다, 희망차다, 자신감 핵폭탄이 터진다, 내 앞엔 행복뿐

위에는 실제 수업에서 아이들이 표현한 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동물들에 갑정이입해서 주인들이 너무나 잔인하고 비정하다고 비난하는 한편, 다른 동물들과의 만남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이런 정서적 반응을 다양하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많이 알수록 아이들의 감정 표현이 정확해지고 풍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도둑들을 몰아낼 수 있었나

네 마리 동물들은 하루 밤을 묵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도둑들이 오두막 안에서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당나귀는 먹을 것으로 뒤덮인 식탁을 보며 "그건 바로 우리를 위한 건데."라고 말을 합니다. 당나귀는 왜 도둑들의 음식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그의 발언은 그들이 먹는 음식이 자신들에 의해 생산되고, 요리되고, 차려진 것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숲은 동물들이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고, 도둑들 역시 전에 만난 적이 없는 낯선 사람들 아닌가요? 게다가 동물들은 어떻게 한눈에 그들이 도둑이라는 것을 알아챘을까요?

동화에서 숲은 무의식이 반영된 공간으로 현실의 원칙이 전도되고 욕망의 원칙이 우선하는 곳입니다. 동물들로 상징되는 당대의 가난한 농민들은 자신들이 빈곤한 원인이 영주나 성직자 등 권력자들에 의해 착취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을 도둑과 다름없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감히 발설하기 어려운 이런 인식 덕택에 동물들은 숲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도둑들로부터 강제로 약탈당한 자신들의 재산을 재탈환할 모험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그림 형제의 숲에는 혁명적 에너지가 충만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늙고 왜소한 동물들은 어떻게 힘세고 건장한 도둑들을 내쫓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 각자는 힘도 볼품도 없었지만 서로의 어깨 위에 올라선 그들은 거인의 형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들이 연합하고 하나로 뭉침으로써 그들은 도둑들을 물리치고 오두막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대밖에 없다는 것을 동화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독일 브레멘 시청 앞에 세워진 브레멘 음악대 동상



그들은 브레멘에 도착했을까

동물들이 이르고자 했던 목적지였던 브레멘은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로 13세기 함부르크와 더불어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일찍부터 상업과 국제무역이 번성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브레멘은 이미 중세 말기부터 봉건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도시로 지정받으며 완전한 자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브레멘 주교는 브레멘으로 도망쳐 온 농노들에게 신변의 자유를 인정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브레멘으로부터 '도시의 공기는 당신을 자유롭게 만든다(Stadtluft macht frei.)'는 독일 속담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브레멘은 착취당하고 학대받던 늙은 동물들이 주인들로부터 도망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유토피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죽는 것보다 나은 뭔가"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이 숲속에 있던 도둑들의 오두막을 탈취한 뒤 그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그들은 숲을 빠져나와 자유와 안전이 약속된 브레멘으로 가서 도시의 음악대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오두막이란 작은 성취에 만족하고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을까요? 

실제 역사에서 독일의 농민전쟁은 30여만 명의 농민들이 봉기했지만 형편없이 빈약한 무장상태와 귀족들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10만여 명의 농민들이 학살당하며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농민전쟁에서 모티브를 취한 브레멘의 음악대는 어떤 진실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공식적 역사가 승리자들의 편에서 기록된 역사라면,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민담은 패자들의 편에서 기억된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좌절된 그들의 꿈과 열망을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브레멘의 음악대'는 현실을 딛고 일어서게 할 각성제로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수면제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