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별 책읽기/2학년

임정진, 혹부리 영감, 비룡소

ddolappa72 2025. 3. 15. 00:08

 
누구나 저마다의 혹을 달고 있다

호리병박보다 더 큰 혹을 달고 있는 영감이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멀리서도 잘 보일 만큼 무지무지 큰 혹을 덜렁거리는 두 혹부리의 겉모습은 매우 비슷했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아주 딴판이었습니다. "윗마을 혹부리는 심통만 부리니 심통 혹"이라 불렸지만, "아랫마을 혹부리는 노래를 잘하니 노래 혹"이라 불렸습니다. 같은 혹이었지만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던 것일까요?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일할 때 새참보다도 혹부리 영감의 흥겨운 노래를 더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에게 영감의 노래는 육체적 고통과 지루함을 달램으로써 노동의 능률을 높이고 노동의 피로를 덜어주는 신비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랫마을 혹부리의 혹은 그의 뛰어난 가창력의 원천으로 인식되어 '노래 혹'으로 불렸습니다.

반면에 윗마을 혹부리는 사람들과 도통 어울릴 줄 몰랐습니다. 일손이 모자라다는 어르신의 말씀은 들은 척 만 척했고, 놀러 가야해서 바쁘다며 마을 사람들을 휙휙 밀치고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윗마을 혹부리의 혹에는 심통만 그득하다며 수군댔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숨기고 싶지만 결코 감출 수 없는 단점이나 결핍을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습니다. 혹부리 영감의 혹은 그런 치부의 상징물입니다. 게다가 단박에 눈에 띄일 정도로 커다란 혹을 달고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윗마을 혹부리와 아랫마을 혹부리는 그런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보여 줍니다. 

윗마을 혹부리는 아마도 자신의 혹 때문에 평생 사람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고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 속에 열등감, 패배의식, 수치심 등이 차곡차곡 쌓이며 그는 점차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키워 나갔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사람들에게 심통을 부리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을 것입니다. 그의 심술은 사실 자신의 마음 속 고통과 외로움의 표출이었을 뿐입니다.

그와 달리 아랫마을 혹부리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음악을 통해 승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열등감에 발목이 잡히는 대신 그것을 예술을 통해 아름답게 극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혹은 사람들과의 친교를 가로막고 자신의 재능을 억제는 장벽이 아니라 그런 장벽을 뛰어넘는 자극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카라바조의 <바쿠스>. 바쿠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음악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혹부리 영감 설화에서 음악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 육체적 고통을 잊고 위로를 받습니다. 노동의 리듬과 일치하는 노래의 박자는 일을 더욱 흥겹게 만들어 줍니다. 그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함께 일을 하며 일체감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아랫마을 혹부리는 비록 다른 사람들과 다른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소외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노래는 무서움과 공포를 떨쳐 버리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노래 혹부리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내어서 무엇하나 /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그는 노래를 통해 외모에 대한 차별을 이겨냈듯 자신을 엄습한 공포를 노래로써 무찌릅니다. 노래는 그의 낙관적이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가 도깨비들로부터 혹을 떼이고 무수한 보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노래 덕택입니다. 원체 흥이 많았던 그는 도깨비들의 잔치에 자연스럽게 참여했고, 신명나는 노래로 그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도깨비들이 자신들의 보물과 그의 혹을 교환한 것은 그들이 어리석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원래 흥이 많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지만 타고난 음치였던 도깨비들에게 그의 뛰어난 노래 실력은 아무리 많은 금은보화를 주더라도 꼭 손에 넣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다만 계산에 서투르고 의심할 줄 몰랐던 도깨비들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혹에서 나온다고 착각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도깨비들의 축제 마당은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구현된 구원의 장소였습니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바탕에 흐르는 격렬한 삶의 충동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명명했고, 이러한 충동은 음악으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디오니소스적 도취 속에서 도깨비들과 혹부리 영감은 인간과 비인간을 넘어선 혼연일체의 경험을 나누고, 분리와 결핍의 고통을 잊고 생명의 충일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혹부리 영감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치유받고 온전한 주체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달리 욕심 많은 윗마을 혹부리는 도깨비들에게 계산적으로 접근했고, 의도적으로 그들을 속이려 들었고, 그로 인해 혹을 떼러 갔다가 오히려 혹을 붙이게 되는 처참한 결말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 예술을 통해 승화되지 못한 콤플렉스는 도리어 그를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혹부리 영감 설화를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은 이 설화에서 노래가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간과한 해석입니다. 노동의 고통을 위로하고, 삶의 슬픔을 견디게 만들고, 나아가 흩어진 개인들을 하나로 모아서 삶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만드는 음악의 힘을 믿고 삶을 긍정했던 혹부리 영감은 바로 그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로키'는 북유럽 신화의 대표적인 트릭스터이다.



인생을 축제처럼 살아가라

비룡소 버전의 혹부리 영감 이야기는 마음씨 착한 혹부리 영감은 복을 받고, 심술궂은 혹부리 영감은 벌을 받는 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 후일담을 추가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심통 혹부리가 쌍혹부리가 되어 홧병으로 드러눕자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죽도 떠먹이며 위로를 합니다. 심지어 "여보게, 일어나서 심술을 부리고 다녀야지. 이거야 원, 온 동네가 심심해서 살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혹을 뗀 영감도 쌍혹부리 영감의 소문을 듣고 미안해 하며 그 집에 몰래몰래 쌀을 갖다 주곤 합니다. 그러자 쌍혹부리도 그 동안 동네 사람들을 괴롭힌 것이 조금, 아주 조금, 살짝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개작하며 첨가한 후일담이 마음에 듭니다. 비록 심술이나 부리던 악인이었지만 그가 당한 불행을 고소해 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위로하며 품어주려는 동네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씀씀이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아마 그들은 쌍혹부리의 천성도 원래부터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혹이라는 콤플렉스를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해 그리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심통을 한편으로는 괘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연민의 감정을 갖고 안쓰럽게 바라보았을 것 같습니다. 
 
이 설화의 중요한 등장인물인 도깨비는 일종의 트릭스터(trickster)입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신화에서 유래한 인물 유형으로 선과 악의 이중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남을 속이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장난꾸러기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바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노래 혹부리의 혹을 노래 주머니로 오해한 모습이나 심술 혹부리에게 혹을 하나 더 붙이는 모습은 도깨비의 이런 이중적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도깨비의 이런 이중성은 혹부리 영감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착한 노래 혹부리와 악한 심술 혹부리는 어쩌면 분리된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인물이 가질 수 있는 이중적 면모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슬기롭게 극복하면 더 나은 사람으로 상승할 수도 있지만, 콤플레스의 노예가 되어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면 끝없는 구렁텅이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 혹부리와 심술 혹부리는 한 인물이 각각의 선택을 했을 때 맞이할 수 있는 최선의 경우와 최악의 경우에 대한 예시입니다.

이 책의 미덕은 설령 최악의 선택을 했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후일담에 남겨 두었다는 점입니다. 비록 뉘우침이 느리고 더디더라도 심술 혹부리가 더 나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여지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혹을 뗀 영감이 전과 다름없이 늘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살아갔던 것처럼 하루하루를 마치 축제처럼 살아가라는 메시지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을 축체로, 축제를 일상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되어 신나게 먹고 마시며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노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