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조리한 현실과 싸우는 무기고로서 환상의 세계
'혀를 사 왔지'의 주인공 시원은 일 년에 한번, 삼 일간 열리는 '무엇이든 시장'에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회색 고양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웃고 있는 눈썹이나 원숭이 꼬리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꼬리를 팔고 있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 시원이는 어린 당나귀에게서 혀를 사기로 결정합니다. 왜 하필 혀를 샀느냐고요? 그에게는 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펼쳐지는 이런 기괴하고 낯선 광경에 잠시 당황하게 됩니다. 달리나 마그리트와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나 봤을 법한 이질적이고 당황스런 상상의 세계를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에서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면 동화의 세계만큼 초현실적인 상상력이 강력하게 요청되는 곳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집안의 물건들이 하나둘씩 돼지로 변해가다 마침내 아빠와 아이들조차 돼지로 변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 <돼지책>은 얼마나 초현실적인가요?
그런데 어른들의 기우와 달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보면 대부분 동화 속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키가 작은 아이는 뼈를 사서 지금보다 키가 커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장난끼 많은 아이는 원숭이 꼬리를 사서 달게 되면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며 즐거워 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든 시장'은 아이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결핍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욕망의 전시장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주인공 시원이는 왜 하필 혀를 산 것일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다 해 주었어. 어릴 때는 웃거나 울기만 해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지. 나이가 들어서는 인상을 쓰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모든 게 가능했고. 글을 일찍 읽고 쓸 줄 알았기 때문에도 혀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지. 또 아빠처럼 잔소리할 때나 쓸 거라면 차라리 내겐 혀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시원이의 부모는 아이가 말하기도 전에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줍니다. 그런 부모가 아이에게 건내는 말은 오직 성적 향상을 위한 잔소리뿐입니다. 그래서 시원이는 말할 필요가 없는 아이, 즉 혀가 없는 아이가 된 것입니다. 작가는 한창 종알거릴 나이의 아이한테서 혀를 거세한 현실이 더 부조리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그런 억압적이고 잔혹한 현실에 맞서 싸울 무기를 갖추기 위해 환상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작가 송미경에게 환상의 세계는 현실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도망쳐서 휴식할 수 있는 도피처가 아니라 그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무기고인 셈입니다.

내 진짜 엄마 아빠는 어딘가에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거나 그들이 자신의 기대와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설령 그들이 친부모라 하더라도, 자신의 진짜 엄마 아빠는 어딘가에 따로 있을 거라 상상하곤 합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의 가짜 부모와 어딘가 있을 상상 속 진짜 부모를 분리함으로써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상의 결과 많은 동화에서 친엄마는 못된 계모의 모습으로 변장해서 등장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못되게 구는 저 사람은 도저히 친엄마로 볼 수 없고, 진짜 엄마는 이미 죽었거나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고 상상하는 편이 현실의 모순을 견디는 편리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동화 '나를 데리러 온 고양이 부부'에서는 자신의 진짜 엄마 아빠는 고양이라고 상상하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어느 날 학교에 지각을 한 지은이 앞에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가 나타나 자신들이 진짜 부모이고 이제 그녀를 데리러 왔다고 말합니다. 지은이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지금 키워주시는 부모와 자신이 얼굴 생김 빼곤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고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해 왔기에 고양이 부부를 집으로 데려가기로 합니다.
고양이 부부와 함께 지내며 지은이는 점차 '내가 정말 고양이 부부의 아이는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쿠키를 먹는 고양이 부부를 보면서 '그들이 진짜 나의 부모일 거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고, 자신의 몸엔 털도 없고, 꼬리도 없지만, '우린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결국 고양이 부부를 따라 집을 나선 지은이는 어느새 고양이와 같은 몸놀림을 지닌 존재로 변신합니다. "나는 쓰고 있던 모자도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담장으로 뛰어 올랐다. 내 몸은 날렵하고 부드러웠다."
지은이의 엄마는 끊임없이 아이를 닦달하고, '당장'하라며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무엇이든 느긋하게 하는 것이 좋은 지은이는 항상 불안해 합니다. 고양이 부부는 지은이의 그런 불안한 마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끊임없이 '서두를 것 없다'고 말해줍니다. 그런 느긋함과 여유로움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지은이는 고양이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가 주변 환경의 강압을 견디지 못하고 크고 징그러운 벌레로 변신했다면, 지은이는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닦달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체리듬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날렵하고 느긋한 고양이로 변하게 됩니다. 지은이의 변신은 주체적 삶을 살겠다는 도발적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다름'을 긍정하는 차이의 세계
작가 송미경의 동화집 <돌 씹어 먹는 아이>에서 가장 초현실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표제작인 '돌 씹어 먹는 아이'입니다. 시골 강가 동네에서 아주 평범한 아이로 태어난 주인공 연수는 돌을 씹어 먹는다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돌을 삼킬 수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돌을 맛있어 하고 심지어 돌을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수는 사회적 금기로 인해 돌을 씹어 먹는 것을 '아주 나쁜 짓'이자 '병'이라고 생각하고 괴로워 합니다.
여름 방학 때 산으로 여행을 떠난 연수는 그곳에서 자신처럼 돌을 씹어 먹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특별히 잘못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게 됩니다. "무엇을 먹으면 어때. 무럭무럭 자라서 신나게 뛰어다니렴."
이 동화의 반전은 연수가 가족들 앞에 자신의 비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입니다. 알고 보니 아빠는 은밀하게 흙을 퍼 먹고 있었고, 엄마는 못이나 볼트 같은 것을 먹었고, 누나는 지우개를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이상한 것을 먹는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서로에게 침묵해왔던 것입니다. 서로의 은밀한 취향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서야 그들은 가족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린 그러고 보니 모두 비슷하구나. 뭐든 남들과 조금 다른 것들을 즐겨 먹어 왔어."
작가 송미경에게 가족은 어떤 집단보다 동질성을 강조하는 집단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사회의 어떤 집단보다 더 강력하게 가족 구성원들에게 같아야 한다는 계율이 적용되는 장소입니다. 그 결과 구성원 개인들의 차이나 다름이 용납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가족은 모두가 고통받는 비인간적 장소로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 곳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작가는 '진리는 전체다'라는 헤겔의 명제가 강력하게 적용되는 우리 사회의 가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문을 던지고, 그 대신 솔직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너그럽게 서로의 다름을 긍정하고 인정할 때 우리 사회 전체가 인간적인 온기가 감도는 따뜻한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송미경 작가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문체와 독창적 상상력은 한국의 척박한 아동 문학계에서 유독 도드라져 보입니다. 사회적 금기와 상상력의 벽을 허무는 이런 실험적 작품들이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하고,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야 우리 사회 전체의 창의력도 한층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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